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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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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팔리는 우표 인기 비결은

문 대통령부터 카카오 라이언 우표까지… 수집 인구 9만4천 명
등록 2020-01-18 06:31 수정 2020-05-07 00:58
우정사업본부 우표디자인실 유지형씨가 정부세종청사 사무실에서 우표를 디자인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우표디자인실 유지형씨가 정부세종청사 사무실에서 우표를 디자인하고 있다.

‘민족의 대명절’ 설이다. 해가 바뀌면 우리는 새해 인사를 한다. 당신은 가족과 친구, 지인에게 어떤 수단으로 새해 인사를 나눴나. 당신에겐 연말에 카드를 사 정성스럽게 글을 적은 뒤, 봉투에 우표를 붙여 연하장을 부친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가. 출근길, 점심 먹으러 가는 길, 퇴근길 거리에서 우체통이 어디 있는지 기억하는가. 신용카드 명세서, 자동차세 고지서, 각종 홍보 전단 등 우편함을 채운 우편물 가운데 우표가 붙은 우편물을 본 적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낸 때는 언제인가. 지금 우표 가격이 얼마인지 알고 있는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는 일은 드물어졌다. 편지를 쓰는 대신 음성·영상 통화를 하고, 스마트폰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 새해 인사 역시 그럴듯한 사진 파일과 이모티콘을 첨부해 보내는 경우가 많다. 각종 고지서나 명세서 역시 전자우편 등으로 받고, 우편으로 받는다 하더라도 요금 별납·후납이 대부분이어서 우표를 붙인 우편물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럼에도 우정사업본부(이하 우본)는 매년 기념우표를 전지(우표 10~20장이 연달아 붙은 묶음 시트) 기준 4만 장 남짓씩 20여 차례 발행한다. 이 기념우표의 98%가 모두 판매된다. 사용되지는 않지만, 발행 때마다 ‘완판’되는 우표.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액면가보다 원가 더 비싸기도

우표는 어디에서 누가 만들까? 정부세종청사 우본 6층에는 ‘우표디자인실’이 있다. 겉보기에 여느 사무실과 다를 바 없는 이 공간에서 경력 1년차부터 25년차까지 5~7급 공무원 디자이너 6명이 한국에서 발행되는 대부분의 우표를 디자인한다. 여기서 디자인한 우표는 한국조폐공사나 프랑스·네덜란드·뉴질랜드에 있는 우표 제조회사에서 인쇄된다. 인쇄 과정에도 은분이나 금박, 홀로그램 등 다양한 기술이 사용되는데 액면가보다 원가가 더 비싼 우표도 있다고 한다.

2019년에는 23번에 걸쳐 모두 82종의 기념우표가 나왔다. 크기·모양·색깔만큼이나 우표가 기념하는 주제도 다양했다.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역사 속 태극기, 여성독립운동가 등 역사부터, 한국의 과학, 현미경으로 본 세상, 해양보호생물 같은 과학, 한국영화 100주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 문화에 이르기까지 백과사전 같다. 우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발행국의 모든 분야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발행된 목록만 봐도 이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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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애국심의 해였잖아요. 처음 우표 발행 계획이 나왔을 때 부담이 많이 됐는데, 발행된 독립운동 관련 우표가 매진돼서 보람이 있었죠.” 대학에서 한국화를, 대학원에서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우표 디자이너가 된 신재용 우표디자인실장의 말이다. 우표 발행 계획은 전년도 6월께 나온다. 그때부터 기획에 착수해 디자인에 들어간다. 어떤 우표는 2주 만에 완성되지만 디자인에만 두 달 넘게 걸리는 우표도 있다. 우표 디자인은 컴퓨터나 텔레비전, 스마트폰 같은 영상매체는 물론이거니와 책·잡지·신문 같은 인쇄매체 디자인과도 차원이 다르다. 몇㎝ 안 되는 작은 공간에 기념해야 할 주제나 사건을 압축해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자료 조사가 특히 어렵다고 한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종합적으로 자문한다. 신 실장이 가장 좋아하는 우표는 2015년 나온 ‘밤하늘 별자리 이야기’다. 우표첩으로 나오기도 했던 이 우표는 천체를 연상시키는 원형으로 디자인됐다.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12개 별자리, 사계절을 대표하는 별자리 등 낱장 16장이 세트다.

신 실장은 “한국천문연구원 도움도 받고 천문동호인들도 만나가며 자료 조사를 했어요. 우표첩에 들어가는 설명 문구에 대해 자문한 전문가들의 견해가 달라 많이 애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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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못 구하는 ‘프로야구’ 우표

기념우표엔 늘 ‘기념해야 하는’ 소재만 담기는 게 아니다. 2019년엔 라이언·어피치 등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도 우표에 등장했다. 모두 10종이 나온 이 우표는 통상 발행량(전지 기준 4만 장)에 견줘 두 배 넘는 10만 장을 발행했으나, 일주일도 안 돼 매진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뽀로로(2011), 뿌까(2012), 로보카 폴리(2013), 라바(2014)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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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실장은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훌륭한 캐릭터를 알리고 싶은 욕심이 컸다. 처음에는 뽀로로로 우표를 만들자고 의견을 냈다가 너무 가볍다거나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탈락당했는데, 인기를 끄니까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캐릭터 우표의 매진 행렬은 우표수집가뿐만 아니라 캐릭터 마니아가 가세한 덕분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2016년 한국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모자와 마스코트로 디자인한 ‘한국 프로야구’ 우표도 당시 발행량이 부족해 없어서 못 구하는 우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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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념우표의 소재는 누가 정할까? 우본 훈령인 ‘대한민국 우표 규정’을 보면, 기념우표 발행 대상은 국제·국가 행사나, 정부 제정 기념일, 역사적으로 기념할 가치가 있는 인물과 사건, 국내외 홍보가 필요한 자연·과학기술·문화, 국위선양·국제평화에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되는 인물 등이다. 원칙적으로 생존 인물은 기념우표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취임한 대통령이나 국위선양·국제평화에 이바지한 인물 등은 예외가 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대표적 예다.

이런 소재들 가운데 20명으로 구성된 우표위원회 위원들이 최종 결정을 한다. 위원들은 사회·문화·역사·과학 등의 대학교수나 학술기관 협회·임원, 우표 수집 취미 단체에서 5년 이상 종사한 사람들 가운데 선정한다. 정당의 당원이거나 당원 신분을 상실한 지 3년이 안 된 사람, 공직선거 (예비)후보자는 위원이 될 수 없다. 위원회 명단은 공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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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김정은 우표 정쟁 도마 위에

문재인 대통령이란 인물은 우표‘계’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7년 8월17일 발행된 문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니템’으로 일컬어 ‘구매 대란’을 야기했다. 취임 기념우표는 우표첩과 함께 발행됐는데, 추가 발행 요청이 쇄도해 우표첩을 이례적으로 추가 발행했다. 해당 우표첩은 현재 우표 수집 시장에서 처음 판매가의 거의 두세 배에 거래된다. 초판 발행분이 추가 발행분보다 비싸다. 2018년 9월12일 발행된 남북 정상회담 기념우표는 정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해당 우표에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얼굴이 함께 등장했는데, 201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현직 대통령의 얼굴이 취임 기념우표를 제외하고 등장한 것이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었다는 이유로 야당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우본은 ‘대한민국 우표 규정’을 개정해 기념우표 발행 심의 관련 규정을 강화했다.

우편법은 우표를 “우편요금의 선납과 우표 수집 취미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발행하는 증표”로 규정한다. 우본 자료를 보면, 2001년 50억 통에 육박했던 일반통상우편물은 2018년 33억여 통으로 급감했다. 우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줄다보니, 우체통도 2001년 3만8662개(인구 1만 명당 8.1개)에서 2018년 1만2553개(인구 1만 명당 2.4개)로 줄었다. 우 편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요금 별납·후납이나 ‘요금 선납’ 라벨(스티커)을 붙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2018년 기준 전체 일반통상우편물 가운데 우표를 붙인 우편물은 2482만 통으로 0.7%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표 수집을 취미로 삼는 인구(우취인구) 역시 2001년 15만1천 명에서 2018년 9만4천 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2017년 8만8천 명이던 것이 2018년 반등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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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 발행일 새벽 200명 줄 서

중학생 때부터 우표를 모아온 엄원용(71) 한국우취연합 서울지부장은 “아직도 우표가 발행되는 날 새벽에 중앙우체국을 가면 우표를 사려는 사람이 많게는 200명까지 줄을 선다. 재산적 가치보다도 자신의 마음 공부와 수양을 위해 우표를 모으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했다. 우표 수집 동호회에서 거의 막내에 해당한다는 직장인 김성훈(37)씨는 “예쁜 우표를 모은다”고 했다. “1986년 나온 ‘하나 낳아 알뜰살뜰’이라는 문구가 적힌 ‘가족계획’ 우표를 가장 좋아한다. 우표는 발행 당시 정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손톱 크기로 응축돼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우표 말고도 모을 만한 예쁜 게 있지만, 피겨(피규어)를 모은다고 역사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윤계찬 우본 우편사업과장은 “우표는 사용량이 갈수록 줄어들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우표 수집 취미 문화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해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우표를 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 우표디자인실 디자이너들이 발행된 우표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우표디자인실 디자이너들이 발행된 우표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우표 모아볼까?


취미우표 통신판매가 편리


현재 우표의 액면가는 380원(25g 이하 우편물 우편요금)이다. 우표는 우체국이나 인터넷우체국(www.epost.go.kr)에서 살 수 있다. 낱장으로 사기보다 전지나 소형 시트, 우표첩이나 책 형태로 사는 것이 소장 가치가 높다. 우본은 ‘취미우표 통신판매’를 운영한다. 계좌에 돈을 입금해놓으면 우표가 발행될 때마다 배송해준다. 우표책은 우표 소개글이 국·영문으로 함께 담겨 있어 외국인 선물용으로도 좋다. 우표 수집 정보를 알고 싶다면, 우본이 운영하는 한국우표포털서비스(stamp.epost.go.kr)나 한국우취연합(www.woopyo.net) 누리집이 유용하다. 이곳에서 소장 우표가 매매되기도 한다. 오프라인 우표상은 서울 회현지하상가에 밀집해 있다.
세종=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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