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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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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 포기? 천만에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인터뷰…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한 일”
등록 2019-02-16 05:29 수정 2020-05-02 19:29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승화 기자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박승화 기자

그는 대뜸 책부터 내밀었다. “여기에 소득주도성장이 잘 정리돼 있어요.” 잿빛이 도는 .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의 정의, 필요성, 주요 정책을 설명한 책이었다.

그제야 기자의 명함을 받은 그가 인사말을 건넸다. “최저임금 기사 잘 봤어요. 고민을 많이 했던데요.” 2월 초 나온 제1248호 ‘최저임금, 2019년판 완벽 가이드’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의 주요 방법론인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관한 기사들도 꼼꼼히 챙겨보고 있는 듯했다. 2월11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홍장표 전 경제수석은 “현직에 있을 땐 시간 부족으로 (구체적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챙기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나와서 보니까 넓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며 웃었다.

문재인 정부서 ‘소득주도성장’ 사라졌다는 우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날마다 소득주도성장특위 사무실로 출근한다. 부산에 있는 부경대에서 강의하는 금요일에만 사무실을 비운다. 지난해 6월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물러난 뒤 3개월간 뛰어다니며 직접 꼴을 만든 위원회다.

그는 임금을 받지 않고 일한다. 민간 자문기구의 위원장이라 관행상 ‘무급’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를 이곳에 붙들었다. 학자 시절, 그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할 방법론으로 ‘임금 인상→가처분소득 증대→소비 증가→생산·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임금주도성장 연구에 매달렸다. 2012년에 이어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대기업·수출 중심의 낡은 성장론을 대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임금주도성장을 확대한 소득주도성장을 설계했다. 청와대를 나올 때 그에게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더욱 구체화하고, 중장기적 밑그림을 탄탄하게 그리라는 (대통령) 특명”(당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어진 이유다.

그러나 그가 특명을 받고서 “초스피드하게, 정신없이 달려오는” 동안 문재인 정부에선 정작 소득주도성장이 사라졌다. 2019년 대통령 신년사에서도, 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혁신성장, 포용적 성장, 경제 활력 제고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를 포함한 기업인을 만나 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당부하고, 이런 경제 행보를 노영민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은 사실 친기업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 얘기가 잘 안 들려요.

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 한 번 언급 됐잖아요. (웃음) 내용은 많이 담겼어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3축인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중에서 지금까지는 소득주도성장 방침이 제일 먼저 나왔거든요. 2017년에 기본 골격이 갖춰진 뒤 과세, 예산에 세팅(구체화)돼서 이미 추진되고 있어요. 그런데 양대 축인 혁신성장은 상대적으로 그동안 규제 혁신 대회를 했는데도 구체적 성과가 안 나온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정부가 추가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혁신성장을 훨씬 더 강조하는 표현을 하는 거 아닌가 이해하고 있어요. 

진보 성향의 학자들은 정부가 방향을 틀었다고 보던데요.

정책 기조가 바뀔 수 있겠어요? 다만 2018년 하반기 경제지표를 보면 경기가 완만한 하강을 넘어 침체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4개의 큰 파고가 덮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잖아요. 우리 경제의 지향점이 하나는 소비고, 또 하나는 투자예요. 그중 소득주도성장은 소비에, 혁신성장은 투자에 관심을 두거든요. 그런데 한 축(투자)이 거의 작동을 안 하는 상황에서 계속 외바퀴(소비)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이런 경기 진단을 (정부가) 무시할 수 없잖아요.

소비와 투자는 원래 양쪽 바퀴

그는 단호했다. 차분하게, 충분히 경기를 진단하고 경제정책을 설명하다가도 ‘정책 노선 선회’ 가능성을 묻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해 6월 그의 후임으로 정통 관료 출신인 윤종원 경제수석이 내정된 데 이어, 12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이후 ‘우클릭’ ‘과거로 회귀’를 우려하는 정책이 나오고 있지만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가계소득 증가·지출 부담 경감·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3대 소득주도성장 정책 46개가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추진 중이라는 근거를 댔다.

20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없이 시행하기로 한 것은 분명히 달라진 정책 기조 아닌가요.

그건 약간의 반성 같은 거예요. 2017년, 2018년 우리가 SOC를 굉장히 많이 감축했어요. 그 돈으로 복지와 일자리 같은 사람에 대한 투자를 많이 했죠. 그런데 줄여도 너무 많이 줄였어요. 실제로 가장 큰 고민이 임시·일용직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거였어요. 내부에서 반성이 있었죠. 그래서 (청와대에 있을 때) 2019년 예산을 짜면서 예년 평균 5조원이던 SOC 예산을 8조7천억원으로 늘렸어요. 도서관, 체육시설, 공공임대주택 개·보수 이런 생활 SOC로요. 그게 소규모다보니 부산·울산·경남이나 군산 등 지역에선 ‘그 정도 가지고 되겠느냐’는 불만이 꽤 있었나 봐요.

문제가 없다는 건가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은 했어요. 예타 면제 방식으로 하는 게 맞나. 예타 제도를 손봐서 추진하는 게 맞을 텐데…. 하지만 정부는 좀더 이른 시일 안에 하는 방법을 찾았겠죠. 지역 사업은 예타에 올라가면 (경제성이 낮아서) 무조건 떨어지니까요.

2018년 건설 투자가 20년 만에 가장 많이 줄긴 했죠. 그게 성장률도 낮췄고요.

굉장히 안 좋았죠. 우리 정부가 집값 안정화 때문에 아파트 건설도 꽉 막아놨잖아요. 그래서 사실 그쪽에 활로가 없는 상황이에요. (그때도)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포용적 성장’은 경제정책 3축의 상위 개념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3년차를 맞아 소득주도성장을 대신해 전면에 등장한 표현이 ‘포용국가’다.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등 경제정책 3축에 돌봄·배움·노후 대책 같은 사회정책까지 아우르는 국가 비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경제적 불평등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포용적 성장’과 맥을 함께한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소득주도성장은 소비를 늘리는 새로운 성장 담론인데, 포용적 성장은 민간 투자에 기대는 기존 성장론이라는 비판도 나와요.

그렇게 해석하고 싶은 분들이 있겠죠. (일부 언론과 야당이) 2018년에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간에 자꾸 대립 구조를 만들었잖아요. 전혀 사실이 아닌데요. 이런 대립 구도를 정리하기 위해서 상위에 (포용적 성장을) 덧씌운 거예요. 포용적 성장은 넓은 의미에서 경제정책 3축을 아우르는 레토릭(수사)인 거죠.  

‘문재인 정부=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 1만원’ 프레임을 깨기 위한 노력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소득주도성장이 수요 사이드(측면)를 강조하지만 공급 사이드 없이 어떻게 성장론이 되나요? 소득주도성장에서 수요 사이드는 가계소득을 늘리는 거고, 공급 사이드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거죠. 이게 있어야 혁신성장이 되는 거고요. 그렇게 해서 포용적 성장이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또 포용국가는 어떻게 나왔느냐 하면, 그간 사회정책(사회보험, 실업 구제, 노인 정책, 환경 정책 등)이 소외돼왔다는 말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통합해서 포용국가라는 비전이 지난해 9월에 나온 거예요.

그러면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도 포용국가위원회로 바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 또 난리 나지 않겠어요?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했다’는 말이 나왔겠죠. (웃음)

그만큼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프레임을 강하게 느꼈군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에) 제일 먼저 나왔을 뿐이에요. 물론 아주 중요한 정책이죠. 절차상 다른 사안들은 국회에서 법 개정이 필요한데, 이건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서 결정만 하면 되니까요. 사실 당시 최임위에서 2018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나왔을 때 우리 정책실에선 걱정이 정말 많았어요. 시장에선 13~14%를 생각했거든요. 자영업, 영세 중소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되리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일자리 안정자금 같은 대책을 내놓은 거예요. 처음에는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성장의 대명사처럼 될 거라고 예상도 못했어요.

최저임금 탓 일자리 대폭 감소 주장은 ‘소설’

보수 언론과 야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결정된 ‘최저임금 16.4% 인상’을 앞세워 ‘소득주도성장 때리기’에 열중했다. 일종의 ‘기선 제압’이었다. 이후 일부 악화된 고용·소득분배 지표가 나올 때마다 당시 소득주도성장론을 주도한 장하성 정책실장과 홍장표 수석의 경질도 주장했다. 그 여파로 홍 수석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저임금 인상의 성과도 있죠.

소득주도성장으로 (가계소득을 늘려 소비와 생산이 촉진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거라고 기대했거든요. 그중 수요 사이드의 중요 축이 가계소득을 늘리는 거예요. 절반의 성공은 했다고 생각해요. 근로 가구의 (평균) 소득이 늘었잖아요. 노동시장 내에서 임금 불평등을 완화하는 뚜렷한 효과를 확인한 거죠. 그게 바탕이 돼서 지난해 국내 소비가 크게 늘었고요. 우리가 2018년 2.7% 성장률을 달성할 때 기여도 1등이 소비였거든요. (최저임금 효과로 봐주는 게) 객관적 평가죠.

전체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이 줄긴 했어요.

가장 뼈아픈 대목이에요. 송구하게 생각해요. 지난해 5월 처음으로 소득분배가 오히려 악화됐다는 통계가 나왔어요. 특히 소득 하위 가구의 절대 소득이 감소한 부분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어요. 예측하지 못했거든요. 지금까지도 그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과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결론은, 우리가 초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불평등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거예요.

최저임금으로도 일할 능력이 없거나 기회를 얻지 못한 소득 하위 가구의 불평등 문제는 해결이 안 되는 거군요.

그래서 지난해 7월에 두 가지를 했어요. 하나가 기초연금을 추가로 올리고, 근로장려세제를 대폭 확대했죠. 올해 그 성적표를 기다리고 있고요.

지난해 일자리 증가폭도 많이 줄었어요.

일부 언론의 말대로 (2018년) 최저임금이 인상되자마자 바로 1분기에 일자리가 대폭 줄었다고 한다면, 그건 소설이에요. 과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얼마나 줄었을까요. 우리는 3만~5만 명 정도로 보고 있어요. 임시·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에 집중적으로요. (2017년에 견줘 취업자 증가폭이 줄어든 규모인) 22만 명 전부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주장은 말이 안 돼요.

실업급여·실업부조 빨리 확대했으면

최저임금 인상을 제외하고 아동수당, 기초연금 확대, 실업급여 확대 등 다른 정책에서도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나타나고 있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포용복지연구단장이 1월 특위 토론회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실업급여·기초보장급여와 같은 사회 수혜금은 소득 하위 1분위(0~20%)보다 소득 2~4분위(20~80%)가 오히려 더 많이 받았다. 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가 굉장히 넓은 상황에서 보편 복지인 아동수당과 실업급여는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지급되고 있어서다.

소득주도성장을 제대로 해보기 전인데, 일부 설문조사에서는 여당 지지층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을 시장 요구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응답이 높게 나와요.

프레임 때문이죠. 오히려 더 빨리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게 많아요. 올해 실업이 가장 큰 걱정이에요. 자영업자가 휴·폐업하면 갈 곳이 없거든요. 실업급여를 더 확대하고 한국형 실업부조를 도입하는 것이 내년, 내후년으로 계획이 잡혔는데 특위에서 계속 앞당기자고 제안하고 있어요. 2022년 최종 완결되는 부양의무자 폐지도 마찬가지고요.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청와대를 일찍 나온 게 아쉽지는 않나요.

(위원회 일도) 역할 분담이라고 생각 해요.

가장 아쉬운 점은 뭔가요.

작년 (청년 일자리) 추경(추가경정)예산이 아쉽죠. 3조8천억원 규모의 미니 추경이었어요. 너무 약하게 했어요. 당시엔 초과세수(25조원)가 이렇게 많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보고받지 못했거든요. 추경 준비를 3월부터 하니까 기획재정부도 초과세수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거죠.

그의 우려대로 ‘2019년 실업 대란’은 현실화됐다. 1월 실업자는 122만4천 명으로 1년 전보다 20만4천 명 늘었다. 2000년 이후 19년 만에 최대 수치다. 실업률 역시 4.5%로 9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인터뷰 이틀 뒤인 2월13일 통계청의 발표다.

문 대통령 고민은 ‘두 마리 토끼 잡기’청와대를 나온 뒤 문 대통령과 통화하거나 만나나요.

나와 있으니까 자주는 못 뵙고요, 가끔 부르시면 가야죠.

가끔 찾으세요.

부르실 때가 있죠.

지금 문 대통령의 가장 큰 고민이 뭘까요.

양쪽을 다 해결하고 싶으신 거예요. 경제 활력도 높이고, 그와 동시에 개혁 과제도 수행해야겠고.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 와중에 재벌 개혁 과제는 법 개정을 해야 하니까 여소야대 국면에, 그것도 총선을 앞두고 얼마나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개혁 정부를 표방하는데,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같은 경제민주화에서 성과가 없긴 해요.

국민의 기대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법 개정 사안이 아닌 것에선 성과가 있었어요. 롯데그룹처럼 골치 아픈 순환출자 문제가 많이 해소됐어요. 또 아주 오래된 논의인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행동 지침)도 유심히 봐주셔야 해요. 국민연금이 (총수가 불법행위로 주주가치를 훼손한) 한진칼에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잖아요. 나머지, 일감 몰아주기 금지나 감사 분리선임제와 관련된 법안은 부처 조율이 다 끝나서 2월에 심의하게 돼 있는데, 지금 여야 사이에 논의가 안 되고 있어요.

새 경제팀에 조언한다면요.

절대 빈곤에 빠진 분들에게 ‘함께 간다’는 시그널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청년들. 지난해 청년 일자리 대책을 주로 내놨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다 해낼 수 있을 까요.

그런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 내에서 과거 10년간 해온 정책 방향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잖아요. 이것이 옳은 길임을 국민에게 확신시키는 거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라는 걸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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