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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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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대가 이끄는 국가를 설계하라

[단독 인터뷰] 민주정부의 경제개혁 이끌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과 과제
등록 2017-05-23 08:15 수정 2020-05-02 19:28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적폐 청산이 큰 박수를 받고 있다. 대통령 취임사와 5·18 기념사는 큰 감동을 주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피우진 예비역 중령의 국가보훈처장 임명에 박수가 쏟아지고, 문재인 대통령의 진솔한 소통 행보가 국민의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은 민주정부 10년의 경제개혁을 이끌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만났다. 문재인 정부가 안아야 할 시대정신과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 굉장한 희망을 갖고 있다”면서 정책 공약 이행을 서두르지 말고 제로베이스에서 재점검할 것을 조언했다. 과거식으로 치러진 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에 매달리지 말라고 했다.

박정희 시대 재무부 사무관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한 그는 관과 민간기업, 로펌, 연구소 등을 두루 경험했다. 김대중 정부에선 ‘미스터 구조조정’으로 불리며 금융감독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했으며, 참여정부에선 경제부총리를 했다. 지난해에는 ‘여시재’라는 민간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올 3월 정책 대담집 를 펴냈다. 5월17일 서울 적선동 개인사무실에서 2시간여 인터뷰를 했다.

“이념과 계파주의를 떠나 함께 고민하는 마당”

지난해 싱크탱크 ‘여시재’를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현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한다. 아마 그 현실이 시대정신일 게다. 여시재는 싱크탱크보다 ‘솔루션탱크’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현실 문제에서 미래를 지향하며 구체적인 솔루션을 찾아나가자는 거다. 그래서 동북아·주거·양극화 같은 현안을 다루며 그것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갈 사람을 키우는 데 역점을 둔다. 이념과 계파주의와 인맥을 떠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는 마당을 만들어가려 한다. 그런 경험이 축적돼야 우리 사회도 수평적 관계 설정이 가능해지고 대화가 가능해지지 않겠나.

사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실 문제는 작은 차이에서 비롯된다. 대화로 타협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각자 이기느냐 지느냐는 게임으로 가버리니, 작은 차이가 큰 논쟁이 되고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제약된 현실 조건에서 최적의 선택을 찾아나갈 수 있는 시스템, 그걸 구성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공유하고 축적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두 차례 민주정부에서 중책을 맡았다. ‘미스터 구조개혁’이란 영광도 얻었지만 굴절도 겪었다. 민주정부 10년의 개혁을 돌아보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탈출을 너무 서둘렀다. “개혁이 지겹다” 하는 ‘개혁피로증후군’도 퍼져나갔다. 더 이상 개혁하지 않으려 했고, 결국 미완의 개혁으로 끝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는 탄핵 사태 뒤 너무 많은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개혁 어젠다가 100개가 넘었다. 우선순위가 불투명해지고 전선이 넓어졌다. 개혁은 양날의 칼이고,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위기에 봉착한다. 굉장히 치밀해야 하고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와 추진 세력의 공감대 없이는 어렵다. 크고 작은 반대 세력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이 모자랐다. 결과적으로 정치인이 관료에 의지하고 개혁하자고 들어갔던 사람들은 도중하차했다. 김대중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현상유지의 폭군’인 관료적 속성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때와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문재인 정부는 경험도 역량도 축적돼 있다.

굉장한 희망을 갖고 있다. 진심으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반반이다. 대중의 요구가 아주 높다는 것은 좋은 조건이다. 옛날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걸 바로 느끼고 현실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 경험도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기대한다. 반대로 참여정부에서 좌절됐던 개혁을 이번에는 꼭 해내야겠다, 10년의 축적 과정이 있었으니 단기간에 해결해야겠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그런 점은 우려된다.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대중이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과거의 방법과 이념에 매몰되지 말고 시대정신을 잘 읽는 데서 출발했으면 좋겠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고 주문하고 싶다.

“제로베이스에서 새롭게 공약을 짜야 한다”

일반적으로 개혁은 초기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100일 안에 결론 내야 한다는 식이다.

박근혜 정부는 완벽하게 1960년대 박정희 체제로 복원했다.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해서 꼬박 9년 이상을 국민이 참았다. 10년 차에 더 이상 못 참겠다고 터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이 편안해졌다. 옛 체제를 끝내고 새 체제를 끌고 왔다는 느긋함이 있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국민이 기다려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책무는, 정치와 정책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촛불에 담긴 시대정신이 뭐라고 생각하나.

‘대중성의 회복’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 지도자와 지지 세력, 정부 관료와 업자, 그렇게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구분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진보적 접근이다, 큰 정부다, 작은 정부다 같은 이분법적 구분도 과거의 개념이다. 촛불시민의 목소리는 뭔가. 플레이어와 관객 간의 괴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우리가 객석에서 무대로 뛰어올라가야겠다. 너희도 객석으로 내려오라는 것이다. 관객과 플레이어가 함께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대중성이 전면에 나서는 시대가 이미 왔다. ‘에어비앤비’와 ‘우버’ 같은 공유경제도 그런 변화를 잘 보여준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함께 접점을 찾아나간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그런 시대정신을 잘 담았다고 보나.

아쉽게도 이번 대통령선거 과정이 과거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 플레이어들은 객석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촛불에서 터져나온 목소리를 표면적으로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과거식 선거운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제로베이스에서 공약을 새롭게 짜야 한다. 급하게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공약을 만들었다고, 국민한테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지 않나. 국민은 그런 용기를 많이 질책하지 않을 것이다. 대척점에 있는 보수 세력도 다 무너진 터다. 복원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혹여 국회에서 좀 시끄럽더라도 국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통령은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활용해 국민과 직접 열린 소통에 나서면 좋겠다. 그렇게 여유를 갖고, 새 시대를 열어가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집을 전면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문재인 정부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촛불에 담긴 변화의 열망을 (정치와 정책) 무대 위에서 잘 보여주고, 시민 관객과 잘 교감해나가야 한다.

“일자리 질과 지속가능성을 깊이 생각해야”

새 시대에 맞는 정책이란.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또 새롭게 진화하는 연예계를 배워야 한다. 정치권은 훨씬 변화에 뒤처져 있다. 연예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은 대중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대중의 공통된 수요와 성향을 반영하는 정책 콘텐츠를 마련해야 한다. 40대인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와 나눈 대담집 에서 그런 내용을 담으려 했다. 미래를 끌어나갈 젊은 사람들의 활동 공간이 없다는 게 가장 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세 가지에 짓눌려 있더라. 세습사회에 짓눌려 기득권 시장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주택과 사교육비에 짓눌려 있다. 젊은 사람들을 풀어줘서 자유롭게 재즈와 팝뮤직을 만들고, 그런 활동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81만 개 공공부문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핵심 공약은 어떻게 생각하나.

한숨을 죽였으면 한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일자리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일단 만들어놓으면 돌이키기도 어렵고 재정 부담도 크다. 당장 필요한 사회적 일자리는 만들어나가더라도, 복잡한 문제점을 충분히 열어놓고 논의해 정책을 진화시켜야 한다.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데 너무 매달려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일자리 만들기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뭔가.

대량생산과 저비용으로 세계화를 추진해온 우리의 산업화 모델은 이미 고용 양극화의 덫에 걸렸다. 재정과 투자를 동원해 소비력을 일으키는 과거 방식 또한 한계에 부닥쳤다. 앞서간 나라들을 살펴보자. 미국은 사회안전망 아래 있는 사람들한테 근로장려금(EITC) 등을 보조하고, 유럽에서는 기본소득을 주자는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식이나 유럽식이나 시장가격과 적정소득의 차액을 메워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선 오래전부터 다양한 직불금으로 농가소득을 지원해왔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은 학생수당을 지원하고, 독일은 무상교육을 도입했다. 각자 현실에 바탕을 두고 모자라는 소득을 보태주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만 이런 것을 생소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돌아보고 정책 대전환을 해야 한다.

정부는 사회적 지출을 어떻게 유효한 방법으로 할 것이냐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유치원·보육원 같은 공급자에게 지원하는 식은 문제가 많다. 수요자의 선택권이 없고, 서비스의 관료화가 일어난다. 엄마에게 직접 바우처를 지급해 유치원 선택권을 주면 유치원들 사이에 더 나은 서비스를 값싸게 공급하려는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 데서 시장이 생기고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정부는 대중과 교감하면서 장기적 접근을 해야 한다. 큰 틀의 환경과 인권,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쪽에 집중해야 한다.

“선거법을 개정해 다당제 기반 만들어야”

시장 만능론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바뀐 시대에 맞는 정부의 역할을 찾으라는 것이다. 우리 경제를 근본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려고 할 때 정부의 역할은 어느 정도여야 하고 민간의 창의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 업그레이드의 의미는 무엇이고, 업그레이드 과정은 누가 책임지고 진행할 것인가. 아마도 우리 경제가 바뀌려면 국민들의 삶이 먼저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참으로 할 일이 많다. 다행히 우리 헌법이 이 문제에 대해선 굉장히 잘돼 있다. 제119조 1항에선 개인과 기업의 창의 자유 보장을, 2항에선 그걸로 인한 부작용을 정부가 막아라 했다. 제34조에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주고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에 최선을 다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식 사회안전망으로 가도 좋고 유럽식 복지를 추구해도 좋고, 두 개를 섞어도 좋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기본 정신은 놔두고 정부가 박정희 시대에서 내려온 ‘렌트 배분권’을 유지하는 데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인허가권을 쥔 정부가 설계주의적 접근과 국가주의적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와 사회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 대우그룹 해체를 이끌었다. 재벌 개혁이 경제 개혁의 핵심 아닌가.

재벌 개혁은 이젠 큰 의미가 없다. 재벌 체제는 오래 못 간다. 3∼4세대의 지분이 줄어들고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면서 다시 과거 형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점점 전문경영인 의존 체제로 가는데, 기업가정신은 약하고 전문경영인 집단도 관료화돼 있다. 스스로도 한계를 분명히 느끼고 있다. 상법의 소액주주권이나 징벌적 과징금 체제를 도입하는 것 같은 개선의 여지는 있으나, 공정거래법을 제대로 적용하고 정치적으로 봐주지 않는 것만 제대로 해도 재벌 체제는 오래가지 못한다. 서산에 지는 해인데 거기에 각 세워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 없지 않은가. 그보다는 자라나는 새싹이 밟히지 않고 잘 커가도록 하는 데 정부가 힘을 쏟으면 좋겠다.

노무현 정부 때 사회적 갈등을 풀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참여정부 때 우군이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화물연대 파업 때 가장 힘들었다. 정치권과 재벌, 관료 같은 큰 기득권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작은 기득권에 집착하고 있다. 작은 차이가 큰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그걸 풀어가는 사회적 갈등 프로세스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지가 새 시대의 중요한 과제다. 개인적으로는 배심원제도를 선호한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100명이 당사자의 주장을 다 들은 다음 해결 방안을 찾아나가는 식이다. 참여적 접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작은 것에서 성공 사례를 하나하나 만들어나가야 한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경북 경주 핵폐기장처럼 주민들이 지는 부담을 돈으로 해결하는 경제적 접근도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크게는 선거법을 개정해 다당제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헌법은 별 문제 없다. 그 정신만 잘 살려 운영하면 된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자기 대표를 국회에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한 표가 사표 없이 모두 유효하도록 해야 한다. 전체 표의 절반 이상이 사표가 되는 현실은 비정상적이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참고해 우리 식에 맞는 선거법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젊은이들이 진화를 이끌어나가는 운동을”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주도권이 30~40대로 내려가야 한다고 강조하더라.

젊은 사람이 자기 운명을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오래전부터의 소신이다. 미래에 가장 많이 영향받을 세대가 국가의 운명을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프랑스는 39살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이 됐고,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도 40대 초반에 당선됐다. 원로우대주의는 파벌주의를 낳는다. 젊은 세대를 파벌 추종자로 만들어 수직사회를 유지하고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막는다. 해방 뒤 우리 사회는 30~40대가 이끌었고, 박정희 때도 40대, 전두환 초기도 40대였다. 늙은 지도층이 이어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노태우 이후다.

젊은이들이 제 목소리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 주도로 만들 것이 아니라 젊은이가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선거법 개정 운동을 벌이고, 갈등 해소 프로그램을 실험하고, 교육 개혁을 하는 데 젊은이가 참여하는 시민사회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투쟁하고 반대하는 참여가 아니라 진화를 이끌어나가는 운동에 참여하는 젊은이를 보고 싶다. 그것이 관객이 무대에 뛰어 올라가는 일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사진 류우종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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