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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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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해체? 법을 바꾸자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으로 여야 정치권에서 봇물 터진 ‘전경련 해체’ 주장

경제학자가 말하는 전경련 ‘제대로’ 해체하는 법
등록 2016-10-12 08:13 수정 2020-05-02 19:28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961년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극우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자금을 지원해 물의를 빚더니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짙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800억원의 기업 출연금을 모아준 사실도 드러났다.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은 물론 여당 안에서도 “정경 유착 통로를 막아야 한다”는 해체론이 들끓는다. 은 개혁 성향 경제학자로서 재벌 개혁 정책을 연구해온 전성인 홍익대 교수의 글을 싣는다. _편집자
올해로 설립 56년째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정경유착 의혹에 휩싸이면서 존폐 기로에 섰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올해로 설립 56년째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정경유착 의혹에 휩싸이면서 존폐 기로에 섰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대선 시즌이 바야흐로 막을 올리려 하고 있다. 이때가 되면 이른바 잠룡들은 자신에게 경제적 색깔을 입히기에 여념이 없다. 대개 이런 행동은 전형적 공식을 따른다. 경제민주화 이슈를 강조하는 정치인은 재래시장을 찾는다. 공약도 거기서 발표한다. 사진도 거기서 찍는다. 반면 친기업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정치인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찾는다. 열심히 사진 찍고 나서, 거기서 (또는 조금 민망하면 다른 곳에 가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과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한다.

전경련은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정치권과 거래하는 역할. 그리고 그 역할을 꽤나 열심히 해왔다. 주로 재벌·대기업으로 구성된 회원사로부터 돈을 걷어 정치권에 전달하고, 그 반대급부로 재벌·대기업의 핵심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곳이다. 좋게 말하면 로비요, 나쁘게 말하면 정경 유착이다.

서로는 서로에 대해 핵전쟁 시나리오에서나 나올 법한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반격’ 수단을 가지고 있다. 정치권은 언제나 재벌 총수를 잡아들이고 또 잡아들인 재벌 총수를 사면해줄 수 있는 생사여탈권을 갖고, 전경련은 그동안 있었던 각종 정치자금(또는 통치자금) 납부 내역과 앞으로 이 자금을 제공할 저금통장을 갖고 있다. 선거로 죽고 사는 정치인에게 저금통장은 거부하기 힘든 당근이다.

정치권·재벌 양쪽 다 손봐야

통상적 시기에 양자는 잘 ‘유착’한다. 전경련은 열심히 돈 걷어서 전달해주고 때로는 정권이 관심을 가진 사업에 호응도 해준다. 정치권은 열심히 규제완화 명목으로 재벌의 소원 수리를 해준다. 대선 공약인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상법 개정안은 재벌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 한 방에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고, 그 대신 ‘원샷법’(기업활력제고법) 제정에는 장관까지 앞장서서 국회의원들을 압박한다. (정말 원샷법이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신의 한 수라면 원샷법 이후에도 갈팡질팡하는 대우조선해양이나 한진해운 사태는 뭐란 말인가?) 롯데가 군사비행장을 변경하면서까지 제2롯데월드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정치권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불협화음이 나오고 종종 둘 다 다치기도 한다. ‘차떼기’ 문제가 터졌을 때는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로 내몰렸고, 일해재단 관련 5공 청문회 때는 정주영 현대 회장이 국회에 서기도 했다. 이번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사태의 경우 아직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이대로 이 문제가 끝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정경유착의 폐해를 청산할 때가 되었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정경유착에 의한 사회의 부패는 참을 수 없는 악취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경유착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차단해야 한다. 정치권과 재벌 중 어느 한쪽만 손볼 경우 살아남은 다른 쪽은 필히 새로운 방식으로 과거의 균형을 회복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을 투명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재벌과 대기업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수단도 제거해야 한다.

최근 아무도 우리 사회에서 실제 도입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기적이다. 이것으로 정치권은 어느 정도 투명성의 바람을 맞이하게 되었다. (국회의원이 3·5·10만원 트리오에서 예외라고 해서 부정한 청탁을 받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니까.) 이제 남은 것은 재벌과 대기업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제한하는 부분이다. 그 핵심에 바로 전경련이 있다. 그래서 전경련을 개편하거나 해체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되지만…
재단법인 미르의 김형수 이사장(앞줄 왼쪽 세 번째)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27일 서울 강남구 학동로 건물 앞에서 출범식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경련은 회원사인 대기업들로부터 486억원을 모금해 미르재단에 줬다. 전경련 누리집 갈무리

재단법인 미르의 김형수 이사장(앞줄 왼쪽 세 번째)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27일 서울 강남구 학동로 건물 앞에서 출범식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경련은 회원사인 대기업들로부터 486억원을 모금해 미르재단에 줬다. 전경련 누리집 갈무리

여기까지 얘기가 나오면 바로 나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데 왜 외부에서 남의 단체에 이래라저래라 참견인가?’라는 것이다. 헌법에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말은 맞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비록 농민 백남기씨는 집회에 참여한 뒤 ‘병사’를 하더라도 결사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결국 헌법도 제대로 읽지 않고 “전경련 해체하라”고 주장해봤자 전경련은 코웃음도 치지 않는다. 물론 사태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회의 자유가 제한받듯이 결사의 자유 역시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보자. 갑질로 신음하는 을들이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고 공동으로 갑질에 대응하기 위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결사, 즉 단체를 만들면 이는 아마 불법이 될 것이다. 아니, 헌법에 버젓이 결사의 자유가 허용돼 있는데 왜 불법이란 말인가?

헌법에는 다른 조항도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번개처럼 받아서 공정거래법 제19조 1항은 “부당한 공동행위의 금지”라고 하여 “사업자는 계약·협정·결의 기타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것을 합의(이하 “부당한 공동행위”라 한다)하거나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행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을들의 ‘결사’는 (국회가 별도로 입법적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한) 대부분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하여 좌초된다.

그럼 갑 중의 갑인 재벌들의 모임인 전경련은 어떠한가? 한 번도 이 조항에 걸려서 움츠러든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재벌들의 부당한 공동행위’ 금지 규정 필요

전경련이 비록 재벌들의 이해관계를 옹호하고 그 과정에서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우리나라에 특유한 공정거래법상의 입법 취지에 반하는 일들을 하지만 그 추상성의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규제완화를 겉으로 내세우면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제도를 헛것으로 만들기 위해 단체까지 만들어 공동행위를 하는 것은 분명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입법 취지에 반하는 행동이지만, 그것을 앞의 제19조로 규율하기에는 무리다. 제19조는 당초 특정 분야의 시장을 전제로 그 안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담합을 규제하기 위한 매우 ‘좁은’ 조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시장 안에 있는 조무래기 을들이 생존권을 위해 단체를 만드는 것은 때려잡을 수 있어도, 여러 시장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에 대해 이 조항을 적용하는 데에는 개념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재벌들의 부당한 공동행위를 통제하려면 공정거래법 내용 중 정확하게 경제력 집중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부분을 가지고 일을 도모해야 한다. 그것이 ‘기업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집중의 억제’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가진 공정거래법 제3장이다. 이 안에 기업결합 제한, 지주회사 행위 제한, 상호 출자 및 순환출자 금지, 계열사 채무보증 금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탈법행위 금지, 시정조치, 과징금, 이행강제금 등 무시무시한 조항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재벌들의 부당한 공동행위 금지”라는 부분은 없다. 그래서 전경련은 무사한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전경련을 통제하거나 해체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에 재벌들의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넣으면 된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법 제3장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 및 그 특수관계인은 계약·협정·결의 기타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 및 그 특수관계인과 공동으로 경제력 집중을 강화하거나 경제력 집중의 완화를 방지하기 위해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것을 합의(이하 “부당한 공동행위”라 한다)하거나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행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금지 행위의 유형에는 “차원 높은 정치적 행위”가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부금·성금·회비·후원금 등 그 명칭과 상관없이 행정부·국회·법원의 구성원에게 직접 또는 간접으로 금품이나 경제적 이익(이하 “경제적 이익 등”이라 함)을 제공하거나 이들의 요구에 의해 타인에게 경제적 이익 등을 제공하는 행위”나 “언론매체에 광고 게재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경제적 이익 등을 제공하는 행위” 등을 포함시키면 된다.

이러면 현재 전경련이 하는 일 중에서 상당 부분의 정치적 행위는 걸러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치권에 돈 걷어 주고, 미르재단 만들어 주고 광고로 언론 통제하는 것 중 상당 부분은 불가능해진다. (물론 재벌 총수들이 청와대에 초청받아서 삼계탕이나 칼국수를 대접받으면서 상법 개정에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이런 것은 그야말로 사회의 상식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

밑그림 바꾸지 않으면 ‘제2의 전경련’ 생긴다

이렇다면 짐짓 이 제안을 오해한 척하면서 “그럼 우리는 사회공헌 활동도 하지 말고, 광고도 하지 말란 말이냐?” 하고 볼멘소리를 하는 재벌도 있을 수 있다. 다 해도 좋다. 다만 “부당한 공동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합의나 결사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이나 정치 활동 또는 대언론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단독으로 하는 것이야 자기 책임으로 하고 그에 따라 평가나 심판을 받으면 그뿐이다.

“전경련 해체하라”고 외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전경련 하나를 해체해도 밑그림을 바꾸지 않으면 또 다른 전경련이 나타날 것이다. 이번 기회에 밑그림 자체를 바꿔보자.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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