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메이드 인 차이나’ 자동차 쟁투 시대

2016 베이징모터쇼 르포… SUV 시장서 실력 키운 중국 자동차의 부상, 현대·기아차 ‘니로’ ‘아이오닉’ 친환경 기술로 대응
등록 2016-05-10 08:39 수정 2020-05-02 19:28
기아자동차의 ‘기아 엑스카’(Kia X-Car)가 ‘2016 베이징모터쇼’에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기아자동차의 ‘기아 엑스카’(Kia X-Car)가 ‘2016 베이징모터쇼’에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기아자동차의 새 소형 스포츠실용차(SUV) ‘니로’(NIRO)가 등장하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중국 기자가 카메라 플래시를 연달아 터뜨리기 시작했다. 자동차 1인 미디어인 그는 행사 전부터 일찍 자리를 잡고 “중국에서는 SUV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총괄 사장이 니로 옆에 서자, 그는 “슈라이어”라고 반색하며 뛰쳐나가 사진을 찍었다.

지난 4월25일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열린 모터쇼를 찾았다. 14회째를 맞는 베이징모터쇼는 모두 1179대의 차량이 출품됐다.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에서 열리는 모터쇼답게 전세계 자동차업체들이 몰려왔다. 유럽이나 서울 모터쇼에서는 보기 힘든 중국 현지 자동차회사들도 대규모 행사장을 차린다. 향후 자동차시장에서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될 ‘중국 자동차’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는 행사다. 중국인들의 관심도 집중돼 첫날 입장객이 주최 쪽 추산 6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대차와 기아차도 행사장을 마련했다. 중국은 현대·기아차의 주력 시장이다. 현대·기아차의 중국합작법인은 지난해 166만여 대를 팔았다. 중국 정부는 합작을 통해서만 외국 자동차회사가 진출할 수 있게 한다. 현대·기아차는 2002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뒤 일본 업체 등을 제치고 가파르게 성장했다.

중국 SUV 시장의 급팽창

기아차는 이날 오전 베이징모터쇼를 통해 중국 시장에 처음으로 니로를 소개했다. 니로는 지난 3월 국내에 출시된 차로, 기아차의 첫 하이브리드 전용 SUV 모델이다. 휘발유로 엔진을 돌리면서 배터리도 충전한 뒤, 저속 구간에선 전기모터로 차를 움직이니 연비가 좋다. 기아차는 언론발표회에서 경쟁 모델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니로가 연비나 힘이 더 좋다고 강조했다. 중국에는 올 하반기에 내놓을 예정이다. 구모델을 중국 시장에 내놨던 이전과 달리 신차가 거의 시차 없이 중국 소비자들과 만나는 셈이다.

그만큼 중국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SUV 시장의 경쟁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중국 SUV 시장 규모는 2013년 299만 대에서 지난해 621만 대로 수직 상승했다. 판매량이 2년 사이 두 배 넘게 늘었다.

심상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SUV 돌풍은 중국 소비 시장의 변화를 반영한다. 차량 교체 수요와 도시 세컨드카 구입이 증가하는 가운데, 생애 두 번째 차량 구매자의 50%가량이 SUV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분석했다.(‘부상하는 중국 중산층과 자동차시장’,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또 심 연구원은 “중국의 (상대적으로 발전이 늦은) 중서부나 농촌 지역의 도로면이 거칠고, 짐이나 농작물 등을 운반하는 경우가 많아 SUV의 넓은 공간이 선호된다. 이같은 시장 수요에 맞춰 중국 현지 자동차업체들이 중소형의 저가형 SUV를 집중 개발하면서 SUV 판매 급증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실제 베이징모터쇼는 중국 현지 업체들이 내놓은 SUV들의 각축장이었다. 중국에서 급부상하는 창청과 창안, 디이 자동차 등은 신형 SUV를 내놓고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 SUV 판매 1위를 기록한 하발(Haval) H6를 만드는 창청자동차는 이번 모터쇼에서 새로 H7을 선보였다. 전기자동차로 유명한 BYD도 여러 대의 SUV를 선보이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짝퉁 아닌 ‘메이드 인 차이나’ 자부심
지리자동차의 린지 부사장이 ‘메이드 인 차이나’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맨 위쪽). 중국 창청자동차의 신형 SUV ‘하발 H7’(왼쪽 아래). 베이징자동차의 자율주행차가 베이징모터쇼 야외에서 실제 주행하며 기술력을 선보였다(오른쪽 아래).

지리자동차의 린지 부사장이 ‘메이드 인 차이나’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맨 위쪽). 중국 창청자동차의 신형 SUV ‘하발 H7’(왼쪽 아래). 베이징자동차의 자율주행차가 베이징모터쇼 야외에서 실제 주행하며 기술력을 선보였다(오른쪽 아래).

오후에 열린 지리자동차의 언론발표회는 SUV에 대한 중국 업체의 자신감을 그대로 보여줬다. 지리자동차의 피터 호버리 디자인담당 부총재는 직접 무대에 올라 지리의 새 SUV 모델 GS를 소개하며 “중국의 자동차를 글로벌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우리는 지리의 고유한 개념을 존중한다. 중국의 것이란 점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로벌 카’를 만들 생각이 없다. 중국의 자동차를 글로벌하게 만들겠다.” 독일·미국·일본 등 선진 업체의 자동차를 베끼는 것에서 벗어나 고유의 자동차로 세계시장에 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지리의 린지 부사장도 ‘메이드 인 차이나’ 시대를 열겠다고 발표를 이었다. 일본·독일 등과 기술제휴로 생산기술을 습득한 뒤로 이제 소비자에게 중국산 자동차임을 숨기지 않겠다는 자신감의 표시다. 지리가 볼보와 포드의 디자인 책임자를 거친 유명한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호버리를 2011년 영입한 것은 이런 전략의 연장선상이다. 현대·기아차도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총괄 사장을 영입한 뒤 디자인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가 좋아지는 효과를 얻은 바 있다. 베이징모터쇼를 방문한 한국 기자들은 “(모방품 수준이던) 중국차의 디자인 수준이 달라진 게 놀라웠다”고 평가했다.

SUV 시장에서 중국 자동차업체는 가격경쟁력도 보여주고 있다. 창청의 ‘H6’과 창안의 ‘CS35’의 기본 가격은 10만위안(약 1800만원), 7만9천위안(1400만원)에 불과한 반면, 사양이 비슷한 현대의 ‘ix25’는 12만위안(약 2150만원) 선이다.

기술력은 자율주행차를 보여주는 선까지 높아졌다. 창안자동차는 모터쇼 개막을 앞두고 충칭에서 베이징까지 엿새 동안 2천km의 자율주행차 실험을 성공시켰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자동차는 아예 전람장 야외에 자율주행차를 체험할 수 있는 시연회장을 만들었다. 현장 신청을 거쳐 베이징자동차의 자율주행차를 직접 타봤다. 자율주행차는 시속 20km 정도의 낮은 속도로 정해진 구간을 돌았고, 횡단보도로 사람이 갑자기 건너자 차가 바로 멈추었다.

상품 경쟁력을 높인 중국 자동차의 부상은 세계시장에서 현대·기아차를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이를 보여줬다. 삼성전자 갤럭시의 판매량은 예전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화웨이와 샤오미 등 현지 업체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중국 스마트폰이 갤럭시를 대체했다. 화웨이와 샤오미는 내수에서 힘을 키운 뒤 삼성과 애플의 수출 시장까지 넘보는 형편이다.

[%%IMAGE4%%]가격보다 기술·브랜드가 승부처

현대차는 이에 대응해 앞선 기술력으로 승부하고 있다. 베이징모터쇼에서 현대차가 주로 소개한 것은 중국 시장에서 처음 공개한 하이브리드·전기차 전용 모델 ‘아이오닉’이었다. 아이오닉은 현대차가 의욕적으로 개발한 친환경 모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의 혁신적인 미래 기술을 생생하게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보급률이 여전히 낮은 중국 시장을 겨냥해 신형 베르나도 출시할 계획이다. ‘엔트리’(자동차 첫 구매)급 소형차인 베르나는 자동차를 사고 싶어 하는 중국인들을 목표로 한다. 2010년 첫 출시 뒤 중국에서 107만 대가 팔렸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소비 촉진을 위해 베르나 같은 1.6ℓ급 이하 자동차의 취득세를 감면해주는 것도 판매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현대차는 중국 창저우에 짓고 있는 4공장에서 신형 베르나를 생산할 예정이다. 커가는 중국 SUV 시장에 투입할 소형 SUV 신차가 현대차에서 보이지 않은 아쉬움은 있었다.

현대차는 올해 새 소형차와 친환경차 출시를 통해 중국 현지 업체의 공세로 줄어든 2015년 판매량(-4.9%)을 만회할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는 3월 기준 15만591대를 판매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6.8%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미 지난 3월 신형 아반떼와 신형 스포티지(KX5)를 출시해 판매 반등에도 나서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 미국 GM 등 기존 외국 회사와의 경쟁에 이어, 창안·창청 등 현지 자동차업체의 부상까지 현대·기아차의 쟁투가 중국에서 불붙고 있다.

북경현대  3공장  르포


최신  시설과  낮은  임금…세계시장  노리는  경쟁력


4월26일 중국 베이징 중심지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30분을 달려 북경현대 3공장을 방문했다. 북경현대는 현대차와 베이징자동차가 절반씩 투자해 만든 회사다. 3공장은 2012년 생산을 시작한 최신 공장으로 현대자동차의 중국 시장을 겨냥한 주요 거점이다.
공장 소개를 받은 뒤 골프장 카트 같은 차량에 타고 공장 내부를 둘러봤다. 최신 공장답게 내부는 깨끗했다. 차체 철판을 찍어내는 프레스 공장의 설비는 현대로템에서 만들었다. 차체 공장에서 용접 등을 맡은 400여 대의 로봇은 현대중공업에서 수입했다. 3공장 설비의 70% 이상은 한국산이다. 그동안 한국이 중국에서 얻은 대규모 흑자는 이처럼 중국 내수시장 확대와 함께 생산설비를 수출한 부분이 크다.
조립을 맡은 의장 공장에서 중국인 노동자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낯선 한국 기자단의 방문에 한 젊은 중국 노동자는 긴장한 듯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얼굴이 빨개진 노동자 등 3공장 생산직의 평균나이는 23살이다. 베이징 지역 고등학교 출신이다. 북경현대 3공장 관계자는 “이곳 노동자들의 인건비는 평균 7750위안(약 130만원)”이라고 설명했다.
공장문을 연 지 4년밖에 안 돼 젊은 노동자들이 주축인 이곳은 높은 노동강도와 자동화 공정을 통해 한국에 있는 공장보다 더 높은 효율을 낸다. 류부열 3공장장은 “차량 한 대가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HPV)은 15.8시간으로, 30시간인 한국의 절반 수준”이라고 했다. 중국 공장에선 생산 물량이 부족할 때 점심시간에도 일한다. 울산 공장에선 밤샘노동을 없앤 주간 2교대제로 일하지만, 중국 공장에선 여전히 밤샘노동을 하는 맞교대로 일하고 있다.
생산라인은 시장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여러 모델을 함께 만들 수 있는 ‘혼류’ 체제다. 김봉인 북경현대 생산본부장은 “생산 일주일 전인 화요일에 주문받아 그다음 주 월요일에 주문량에 맞춰 생산해 유연한 작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첨단화된 중국 자동차 공장의 모습, 한국이 이전엔 설비와 부품을 팔아넘기던 공장이었다면 이제는 중국이 자동차를 세계로 수출하는 공장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보았다.


글·사진 베이징(중국)=이완 기자 wani@hani.co.kr

※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