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방송 - 통신 균형 1조원에 흔들리나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속내는? 통신사들, 이종 플랫폼 확보 전면화
등록 2016-03-22 08:43 수정 2020-05-02 19:28
3월10일 서울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이용자 권리 보장을 위한 시민실천행동’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3월10일 서울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이용자 권리 보장을 위한 시민실천행동’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0월30일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하 SKT)이 종합유선방송(이하 케이블TV)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시장은 ‘경악’했다. 방통 융합이 시대적 추세고, 인수·합병이 이해관계 문제일 뿐이라 하더라도 두 회사의 합병은 상상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추론과 전망은 엇갈렸다.

이후 5개월여, 합병은 아직 진행 중이다. 정부는 ‘승인’을 미루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승인 심사를 거쳐 미래창조과학부가 결정하는데, 공정위는 장고를 거듭하며 사실상 사상 최장기간 심사 중이다. 현실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1위 사업자 간의 합병, 그리고 기록을 경신해가는 합병 승인 심사까지. 왜 두 기업의 결합은 순탄치 않을까.

방송·통신 시장은 이미 오래전, 성숙을 넘어 과공급 상태로 접어들었다. 전국 가구 수가 약 1814만 가구인데, 유료방송 가입자는 이미 2783만 명에 달한다(2013년 기준).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역시 총 가구 수에 육박해 있다. SKT, KT, LG유플러스가 ‘5:3:2’의 구도로 안정적으로 시장을 분할, 장악하는 통신시장 역시 가입자가 5800만 명(2014년 기준)을 넘어 인구수에 한참 앞선다. 방송·통신 시장 모두 수요가 이미 고착됐단 얘기다. 한계적인 시장이다.

방송시장의 경우 2014년 케이블 방송의 매출액이 1.4% 감소하며 유료 방송시장이 생긴 이래 사상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동통신사의 매출 비율 역시 하락 추세다. SKT의 경우, 여전히 수조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두고는 있지만 2003년 기록한 3조4421억원의 영업이익을 정점으로 현재 2조원대까지 영업이익이 하락했다.

방송통신 시장, 과공급 상태

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기존 시장에서 남의 것을 빼앗아오거나, 시장을 더 확대하는 것이다. 이동통신 3사는 지난 십수 년간 ‘5:3:2’의 구도를 타개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여왔다. 천문학적 보조금을 살포하고, 상대의 유사 행위는 끊임없이 매도하며, 진흙탕을 함께 뒹굴며 뺏고 빼앗았지만, 시장 분할 구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경제학 용어로 설명하면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상대의 반응에 대한 최적화된 반응에 따른 균형)이다. 나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이익을 억제하는 것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일종의 ‘나쁜 균형’이다.

줄곧 1위 사업자였던 SKT는 요금을 주도하는 1위 프리미엄을 누리며, 필요할 때는 언제든 상대방의 가입자를 뺏어오는 ‘보조금 경쟁’을 통해 이동통신 시장의 지배력을 유지해왔다. 그사이 이동통신 시장은 두 번의 결정적 변곡점을 지나왔다. 유선과 무선이 결합된 상품의 판매와 3G에서 4G로의 이동이다.

결과를 먼저 말하면, 유·무선 결합 판매에서 전통적으로 유선에 강했던 KT가 위성방송까지 등에 업으며 IPTV 시장 1위 사업자가 되었지만 시장의 구도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4G로의 전환 역시 LG유플러스가 초반 공세를 펼쳤지만 결국 원점으로 수렴됐다. 결국 이동통신 시장 안에서는 남의 가입자를 뺏어오는 경쟁으로는 더 이상 영업이익을 개선하기 어려워졌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다. 시장 자체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미 사활적이었다. 복수의 상품을 묶는 ‘결합상품’ 판매는 통신과 방송의 경계를 실체적으로 해체했다. 이동통신(모바일)과 유선 인터넷을 묶고, 여기에 다시 전화를 결합시켜 아예 공짜로 줘버린다. 방송은 통신의 하위 범주가 됐고, 이젠 미끼 상품으로 전락했다. 현재 전체 유료방송 가구의 약 43%가 방송통신 결합상품에 묶여 있다.

결합상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이 싸진다는 체감 효능이 있다. 하지만 ‘노예계약’이라 불리는 약정기간 동안 또박또박 월정액을 납부해야 한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선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캐시 카우’(Cash Cow)가 창출됐다.

반면 결합할 수 없는 사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결합 판매되는 IPTV의 등장 이후 케이블TV 산업은 끊임없는 하락세다. ‘규모의 경제’에서 밀린 필연적 쇠락이었다. CJ와 태광 등 케이블TV 시장을 이끌어온 기업들이 지역 사업자들을 인수하는 것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케이블TV의 존재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지역성’의 약화를 수반했다. 통신의 침공을 자구책으로 막으려다 플랫폼의 존재 근거를 잃어간 셈이다.

물론 반전의 시도도 있었다. CJ헬로비전은 알뜰폰 시장에 적극 진출하며 결합상품의 구색을 갖추려는 노력을 했다. 케이블TV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제4이동통신 진출을 모색하는 계획도 일정 단계까지 논의됐다.

1위 케이블TV 사업자의 ‘퇴각’
2월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전문가 토론회. 연합뉴스

2월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전문가 토론회. 연합뉴스

CJ가 제4이동통신에 진출할 거란 소문도 돌았다. CJ 역시 “검토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SKT의 CJ헬로비전 인수 발표가 있을 무렵, CJ는 지주사 산하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곤 제4이동통신 진출, 씨엔앰 인수 등을 포함한 공세적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제4이동통신 진출은 ‘3년간 최소 15조원 이상’의 자금이 투여돼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그룹 차원의 집중과 선택은 물론 ‘5:3:2’의 구도를 뚫기 위한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CJ는 알다시피 ‘오너 리스크’를 겪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협조를 끌어내는 것도, 기업의 명운을 건 투자를 하기에도 여의치 않다.

말하자면 CJ는 케이블 시장에서 최대한 버티느냐, 아니면 투자 규모를 달리해 더 큰 판으로 옮기느냐의 갈림길에 있었다. 그 틈새를 SKT가 파고들었다. CJ는 ‘콘텐츠 역량 강화’라는 알 듯 말 듯한 이유를 앞세워 애써 구축한 미디어 산업의 수직 계열화를 스스로 헐었다. CPND(Contents, Platform, Network, Device)에 걸쳐 있던 ‘미디어 기업’의 전선을 스스로 ‘콘텐츠’로 축소하며 이를 ‘선택과 집중’이라 설명했다. 다르게 설명하면, 1위 사업자의 ‘선제적 퇴각’이다.

정부의 승인 절차와 사업자 간 여론전이 치열해 보이지만, 물밑의 상황은 다르다. 이미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씨앤앰은 물론 재벌 계열의 현대HCN까지 팔린다는 소문이 횡행하다. KT와 LG유플러스는 겉으론 SKT를 맹비난하면서도 “적절한 가격이면 케이블사 인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힌다. 통합 방송법 제정으로 IPTV와 케이블TV 사이에 존재하던 규제가 허물어지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통신사들은 이종 플랫폼을 확보하는 시장 확대 전략을 전면화하고 있다.

이동통신사 “케이블TV 가입자 산 것”

이제 관심은 SKT가 새롭게 확보하게 될 CJ헬로비전의 420만 가입자를 대상으로 무엇을 할지다. SKT는 이미 2014년 내부 보고서를 통해 ‘신규 가입자 확보 중심의 보조금 경쟁이 끝났다’고 판단했다. 언론노조 김동원 정책국장은 이를 “50%에 달하는 이동통신 시장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네크워크-결합상품-멤버십-서비스’의 선순환 모델로 시장 자체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CJ헬로비전 인수 목적을 묻자 SKT 관계자 역시 “결국, 가입자를 산 것이다. 통신시장은 정체돼 있고 미디어 시장은 확대될 수 있다. 현재 소비자가 부담하는 유료방송 요금은 타이나 필리핀보다 싸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저가 요금제인 케이블 가입자의 ARPU(Average Revenue per User·가입자 1명이 내는 평균금액)가 오르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ARPU를 올릴까. 핵심은 역시 결합상품이다. 결합상품에서 이동통신과 방송이 결합된 비율은 아직 41.4%에 그친다. 방송과 유선 인터넷의 결합 비중이 더 높다. SKT는 새로 확보된 방송 가입자들의 휴대전화를 겨냥할 것이다. 방송을 ‘공짜’로 볼 수 있다는 미끼로 휴대전화를 팔 수 있는 안정적 대상자가 갑자기 400만 명 이상 확보되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유료방송 가입자 규모를 바탕으로 OTT(Over The Top·인터넷을 통해 보는 TV 서비스)와 O2O(Online to Offline·온라인에서 검색한 정보를 오프라인에서 소비하도록 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 서비스 같은 미래 전략도 시험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SKT 고객이 아닌 가입자들은 신규 서비스의 ‘테스트베드’(Test Bed)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SK브로드밴드는 얼마 전, ‘옥수수’라는 모바일 전용 플랫폼을 선보이며 고정형 TV 이후 계획을 밝혔다. 수익모델이 안정화되지 않았지만, 카카오가 택시에서 미용실까지 O2O 서비스를 통한 새로운 사업모델 탐색에 나선 것처럼, OTT와 O2O는 결국 통신기업이 가야 할 길이다. 기존 이동통신 가입자 2600만 명에 유선 가입자 750만 명을 보태게 된 SKT는 이제 압도적 가입자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도전을 할 수 있게 됐다.

반발 의식해 3200억원 투자 약속

SKT는 CJ헬로비전 인수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자 ‘콘텐츠펀드’ 조성 계획을 밝히고 인수·합병 1년차에 3200억원(출자 1500억원, 펀드 조성 1700억원)의 콘텐츠 투자 계획을 밝혔다. 반발하는 콘텐츠 사업자들을 달래기 위한 ‘당근’이다. 지상파 방송 사업자들은 겉으론 ‘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라’고 압박하지만 내심 돈의 배분을 쳐다본다. 지상파 방송도 “펀드는 성사가 불투명하다”는 것쯤은 안다. 관심은 1500억원 가운데 지상파 몫이 얼마냐다.

CJ헬로비전의 1년 영업이익이 1천억원쯤 된다. 인수회사의 1년치 영업이익을 내놓는 데 지상파 방송 등 콘텐츠 사업자들이 수긍한다면, 더 이상 ‘콘텐츠 사업자’들은 ‘플랫폼 사업자’에 대항할 여력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동통신을 장악한 SKT와 KT의 질주 속에, 지상파 방송이 별 볼일 없는 ‘N분의 1’의 사업자로 전락할 거란 뜻이다. SKT는 CJ헬로비전을 1조원에 인수했다. 이를 CJ헬로비전 가입자 수로 나눠보면 1인당 25만원꼴이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