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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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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에 드리워진 ‘승자의 저주’

공항서비스 외주화·희망퇴직 등 구조조정… 회사 부실로 몬 박삼구 회장은 경영권 다져
등록 2016-01-06 09:13 수정 2020-05-02 19:28
아시아나항공 A380 1호기가 2014년 3월26일 독일 함부르크 에어버스 도색공장에서 도색을 완료하고 격납고를 빠져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재무 부담에도 불구하고 A380 4기를 도입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시아나항공 A380 1호기가 2014년 3월26일 독일 함부르크 에어버스 도색공장에서 도색을 완료하고 격납고를 빠져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재무 부담에도 불구하고 A380 4기를 도입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색동옷을 입힌 대형 여객기 A380이 날아올랐다. A380의 착륙 또는 이륙 장면을 보면 눈을 떼기 힘들다. 날렵하기보다 뚱뚱한데도 하늘을 향해 사뿐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A380은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기다.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최대 하중 560t의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바퀴는 뒤쪽에 20개, 앞쪽에 2개를 달았다. 비행기 중에선 바퀴 수가 가장 많다.

싱가포르항공·루프트한자·에어프랑스 등이 앞다퉈 이 비행기를 도입했고, 아시아나항공도 2014년 이후 A380 4기를 들여왔다. 아시아나항공의 A380은 한번에 485명을 태워 인천공항에서 로스앤젤레스(LA)·뉴욕·홍콩을 향해 이륙한다.

자부심이 느껴질 만한데 신철우 아시아나항공노동조합 위원장은 씁쓸함을 감추지 않는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경영진과 회사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다.” 신철우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해 20년을 일했다.

2015년 12월29일 저녁 6시30분, 그는 경기도 김포에 있는 회사에 들어갔다가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신 위원장은 인사팀과 노무팀에서 회사의 경영 정상화 방안에 대해 들었다. 그는 위원장이지만 노조에서 전임자(현업에서 빠져 노조 일만 처리)로 일하지 않는다. 타임오프제(노동조합 노동자 수에 따라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정해 노조 활동을 하게 함)가 실시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4개 노조는 각각 반전임자 한 명씩 할당받았다. 신 위원장은 인천공항에서 승객 출도착 업무를 하면서 노조 일을 하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 997.4%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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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너머 신 위원장의 목소리에선 분통이 느껴졌다. “회사가 현재 위기라고 하면서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킨 근본적 이유인 2006년 대우건설 인수와 대한통운 인수에 대해 (경영진은) 말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부채비율(부채/자본금)이 200% 정도로 건실한 기업이었는데 2006년 이후 600%로 뛰었다. 지금 위기는 잘못된 인수 경영에 있었다. 그 부분이 중요하다.”

이날 오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금호산업 채권단에 경영권(지분율 50%+1주) 인수대금 7228억원을 완납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보유한 사실상 모회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빚으로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해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이후 닥친 세계적인 불경기는 그룹에 유동성 위기를 불러왔다.

박삼구 회장은 2009년 12월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의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겼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박삼구 회장이 자신의 재산을 출연한다는 조건을 달아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등의 경영권을 유지하게 해줬다. 산업은행 출신인 이성근 전 산은캐피탈 사장,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사외이사이며, 정영의 전 산업은행 총재는 아시아나항공 고문을 맡고 있다. 박삼구 회장은 6년 만인 2015년 다시 금호산업의 경영권을 되찾았다.

박삼구 회장의 복귀를 전후해 아시아나항공의 구조조정안이 흘러나왔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를 확정해 12월30일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국내·국외 지점 151곳을 106곳으로 축소 △예약·발권 부서와 국내 공항서비스 등 아웃소싱 △희망휴직 및 희망퇴직 운영 △임원 연봉 반납 △2017년 프리미엄이코노미석 도입 △발리 등 일부 노선 중단 등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없어지는 부서 직원들은 “재배치를 통해 고용 안정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15년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이익은 9월까지 172억원을 기록했다. 금융비용 등을 빼면 1634억원 순손실이 났다. 2015년 상반기에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은 중국 관광객을 줄이는 등 영업에 타격을 줬다. 매출 비중이 높은 일본·중국·동남아 노선에는 저가항공사들이 치고 들어왔다. 아시아나항공의 2013년 영업이익은 615억원 적자, 2014년에는 422억원 흑자였다. 항공기 84대를 가진 매출 5조원대의 기업으로서는 부진한 실적이 계속됐다.

계열사 지원에 현금 쓰고 투자는 밀려

한국신용평가는 2015년 12월18일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낮췄다. 한국신용평가는 “(A380) 항공기 투자로 재무 부담이 과중한 수준이고, 저가항공사와의 경쟁이 심화돼 수익성 개선이 어렵다”고 평가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997.4%(2015년 9월 기준)에 이른다. 부채비율이 높으면 회사가 돈을 벌어도 이자로 내는 비용이 많아 부담이 커진다.

아시아나항공 홍보팀 관계자는 경영 정상화 방안에 대해 “국내 저비용항공사의 약진, 외국 항공사의 좌석 공급 확대로 인해 경쟁이 심화됐다. 전세계적으로 항공사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다. 경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부채비율이 높으니 회사로서는 체중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위기의 본질은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우건설 인수로 시작된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그룹 전체 계열사에 부담을 줬다. 당시 부도 위기에 직면한 금호산업의 기업어음을 아시아나항공은 2009년 12월 790억원어치나 사서 현금을 지원했다. 금호산업은 박삼구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지배하는 데 핵심적인 회사였다.

결국 금호산업은 채권단 관리에 넘어갔다. 아시아나항공이 산 기업어음 790억원어치는 출자전환됐다. 금호산업으로부터 받아야 할 이자도 감면됐다. 경제개혁연대는 “2013년에도 아시아나항공이 금호산업에 대해서만 96억원의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해, 상표권 사용료를 가장한 계열사 부당 지원이 아닌지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으로서는 자신의 성장동력으로 써야 할 돈이 사라진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84대의 항공기도 그 기종이 다양해 정비·서비스 효율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리미엄급 항공사로 가기도, 저가항공사와 경쟁하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투자가 필요했다. 경제개혁연대의 채이배 회계사는 “아시아나항공이 자신의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재벌 총수가 소유한) 금호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자금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얼마나 부채가 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사용된 자금으로 인해 성장 가능성을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신용평가의 김용건 파트장도 “항공사들은 비행기 도입 때문에 부채비율이 대체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기업은 이익이 나면 자본 확충을 하고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적인 경영을 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의 현재 상황은 그룹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다시 빚지고 돌아온 최고 경영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술렁이고 있다.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아오면서 들인 인수대금 7228억원 가운데 5700억원가량은 은행 대출 등 외부 자금이다. 다시 빚으로 지은 집이 됐다. 아직 되찾아오지 못한 금호타이어를 인수하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등 계열사 자금을 동원할 가능성도 있다고 증권업계는 본다.

직원들은 10년 동안 임금을 4번이나 동결하는 등 회사의 짐을 나눠 졌다. 돌아온 것은 경영을 악화시킨 총수의 귀환과 구조조정이었다. 이 상황에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경영 혁신에 동참할 수 있을까. 직원들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이 회사를 위한 것인지, 돌아온 재벌 총수를 위한 것인지 혼란스럽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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