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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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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조선업 욕심이 빚은 대참사

국내 조선업계 천문학적 적자 기록… 선박 수주 줄면서 해양플랜트에 무모한 도전, “미친 것 같았다”
등록 2015-12-08 23:42 수정 2020-05-03 04:28

2012년 말 한 통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문제의 대우조선 수주 선박 내용’이라는 몇 장의 메모가 담겨 있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이 2010년에 수주한 ‘초대형 해양플랜트 설치선’ 건조 과정에서 5천억원의 손실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항공모함보다 큰 이 배는 수주 금액만 6억달러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수주 감소에도 불구하고 조선소들이 여전히 흑자를 내는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한 5천억원 적자는 눈에 띌 만한 뉴스였다.

결과적으로 기사를 쓰지 못했다. 조선소가 있는 경남 거제도에까지 내려가 대우조선해양 직원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지만, 처음 만드는 해양플랜트라 일부 어려움이 있어도 적자 폭은 크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조선업 담당 증권사 연구원들도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해양플랜트는 조선소의 새 먹거리로 부각될 때였다. 무엇보다 대우조선해양의 사업보고서나 공시 어디에도 이 프로젝트로 인한 대규모 적자가 보이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배는 2014년 건조를 끝내고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해양플랜트에 대해 잊고 있던 2015년, 대우조선해양은 2분기 실적으로 3조4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이전 1분기 실적도 적자가 나긴 했으나 430억원 수준이었는데, 올해 5월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바뀌자마자 갑자기 대규모 적자가 드러났다. 느닷없는 엄청난 적자에 대우조선해양 주식은 폭락했다. 회사 쪽은 해양플랜트를 건조하는 데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해양플랜트 사업은 왜 망가졌을까

적자를 낸 곳은 대우조선해양뿐만 아니었다.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바뀌기 전인 2014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이미 적자를 보고했다. 현대중공업의 적자는 지난해 무려 3조2490억원(영업이익 기준)이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분기 362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또다시 2분기에 1조548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부 해양플랜트로 인한 적자가 심각하다고 했다.

해양플랜트는 한때 한국 조선업의 새 먹거리로 여겨졌다. 해양플랜트는 바다에 매장된 석유·가스 등을 발굴·시추·생산하기 위한 장비와 설비 등을 뜻한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바다 위에 우뚝 솟아 불을 뿜는 대형 설비를 상상하면 된다. 최근엔 배처럼 움직이면서 석유를 뽑아내 정제까지 하는 바다 위 공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해양플랜트에 한국 조선소들이 도전하게 된 것은 2008년 세계적인 불황이 닥치면서부터다. 불황으로 물동량이 줄면서 해운사들은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 등 상선 발주를 줄였다. 상선 발주가 줄면 조선소들은 당장 2~3년 내에 일감이 없어진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소들은 해양플랜트로 눈을 돌렸다. 유가가 100달러 이상 높아지면서 글로벌 석유업체들은 바다에서 석유를 캐는 데 혈안이 되었다. 수억달러에 이르는 해양플랜트들이 발주됐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마치 황금을 캐는 듯했던 해양플랜트 사업은 왜 갑자기 망가졌을까.

조선업계 주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첫 번째 이유는 ‘과도한 자신감’이었다. 한국의 조선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개척한 산업이다. 정 전 회장이 유럽 선주를 찾아가 한국 화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고 당시 건설 중이던 울산 조선소에서 배를 짓겠다며 계약을 따낸 일화는 유명하다. ‘해봤어’라는 도전 정신은 한국 조선업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된 힘이기도 하다.

지나친 자신감과 경영진의 연임 욕심

조선소 경영진들도 똑같이 달려들었다. 상선을 만드는 조선에서 이렇게 성공했으니 해양플랜트도 도전해보자는 것이었다. 한 조선업체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2011년, 2012년은 미친 것 같았다. 당시 한 프로젝트에서 설계 변경으로 인한 추가 금액을 받아내고 이익까지 내며 성공하니까 사내에 자신감이 넘쳐났다. 해보면 된다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어려운 해양플랜트를 수주했다.”

실력 없는 자신감은 무리수였다. 기본 설계 등 해양플랜트 경험이 부족했던 한국 조선업체들은 플랜트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 유가가 높을 때 설계 변경 비용도 수용했던 글로벌 석유업체들은 유가가 떨어지자 차갑게 돌아섰다. 비용이 예상보다 눈더미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0~2012년 수주는 3~4년 뒤 대규모 적자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한국 조선회사들은 해양플랜트를 너무 쉽게 봤다. (해양플랜트에는) 전세계적으로 전문 기업들이 있다. 이 기업들은 엄청나게 오랫동안 도면을 그리고, 구매를 하고, 설치를 해본 전통 있는 회사다. 그런데 한국 조선회사들은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도기에 치러야 할 일종의 수업료 정도로 생각하고 손해를 감수하면서 몇 년 경험을 쌓으면 할 수 있을 것으로 쉽게 생각했다. 지나친 낙관에 지나친 자신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두 번째 이유로는 자신감에 사로잡힌 경영진들의 욕심이 꼽힌다. 덩치 큰 해양플랜트는 몇 개만 수주하면 매출이 큰 폭으로 상승한다. 3년 임기를 보장받는 경영진에게 매출이 수억달러에 이르는 해양플랜트는 실적을 쌓는 데 좋은 먹잇감이었다. 2년에서 5년까지 걸리는 해양플랜트 공사의 특성상 자신의 임기 중에 적자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연임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 이유는 너무 낮은 가격으로 수주해서가 아니라, (경영진이) 주문을 너무 많이 받아 조선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조선소는 독(dock)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일정을 짠다. 일정대로 배를 만들어야 약속된 기한에 선주에게 배를 줄 수 있는데, 어려운 해양플랜트 건조에 욕심을 내면서 뒤 스케줄까지 모두 차질을 빚은 것이다. 건조가 지연되면 보상금은 보상금대로 물고, 인력은 인력대로 더 투입해야 하니 예상했던 수익을 모두 까먹는 것이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상선 발주 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다가 2~3년 뒤 수만 명의 노동자를 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선박 수주가 끊긴 상황에서 계속 조선소를 돌려야 하는데, 당시 해양플랜트 수주를 안 하면 욕먹을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4조원짜리를 3조원이면 지어준다”

경영진이 매출 경쟁을 하다보니 저가 수주도 등장했다. “(한국 조선 회사들은) 실제 입찰 과정에서 무조건 경쟁사보다 5~10% 깎아준다고 제안서를 써대니 원가를 보전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조선회사들이 4조원짜리 해양플랜트를 3조원이면 지어준다고 저희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실정에 이르게 됐다.” ()

지난 9월 국회 국정감사에 대우조선해양 전·현직 경영진과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KDB산업은행 홍기택 회장이 출석했다. 국회의원들이 대우조선해양의 거대한 부실을 따져묻자 이들은 해양플랜트로 책임을 미뤘다. 손실을 예측할 수 없었고, 부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자신감과 욕심은 사라지고 모두 거대한 해양플랜트 뒤로 숨어버렸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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