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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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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서 ‘병살타 친 느낌’ 안 받으려면?

본격 시즌 앞두고 살펴본 야구장 편의시설과 숨은 명당…
관중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가격도 올라, KBO는 올해부터 주류 반입 막아
등록 2015-04-01 02:10 수정 2020-05-02 19:27

쇼핑 주문서 길고 긴 겨울은 강제 동면 기간이다. 야구팬들은 쑥과 마늘 대신 지나간 경기 ‘하이라이트’를 씹는다. 그러나 늘 그렇듯 봄은 온다. 선수도 팬도 잠에서 깬 야구, 어디서 봐야 할까.

주문 내역 한국 프로야구는 군사정권이 ‘볼거리’를 국민에게 주기 위해 리그를 만들었고, 지역연고제의 가능성을 알아본 대기업은 팬을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 구단을 창단했다. 초창기 프로야구에서 수익을 낼 필요는 없었다. 기업은 돈을 내는 대신 사람들이 ‘기업 이름’을 부르며 “팬이에요”라고 말하는 엄청난 이미지 효과를 얻었다.

리그가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난 프로야구는 여기서 한발 더 진화했다. 지난해 프로야구장을 찾은 관중은 모두 675만4619명이었다. 흥행 보증수표인 한국시리즈 등 포스트시즌 관객을 빼도 650만 명이 야구장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야구는 이제 돈이 된다. 올 시즌은 기대가 넘친다. 프로야구팀이 하나 더 리그에 들어왔다. 경기도 수원을 연고지로 한 KT 위즈가 올 시즌부터 1군 리그에 참여한다. 10개 구단 체제가 되면서 경기 수는 576경기에서 720경기로 늘었다. 그만큼 구단들이 야구라는 상품을 팔 기회가 많아진 셈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내심 800만 관중 돌파를 꿈꾼다.

프로야구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야구장을 새 단장 했다. 좌석을 새로 만들고 편의시설을 늘렸다. 팬들을 더 많이 끌기 위해 마케팅 차원에서 분석했다. 내야와 외야로만 구분됐던 좌석의 배치와 가격을 세분화했다. 야구장(수원)도 하나 더 늘어 경쟁도 치열하다. 야구장 구조와 복잡한 좌석 체계를 잘 모르고 표를 사면 비싼 돈 주고 ‘병살타 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야구 전문가와 함께 각 구단들이 선보인 경기장과 좌석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얘기를 나눴다.

구매 목록새로 개장한 수원 KT 위즈파크와 지하 라운지로 야구팬들에게 화제가 된 인천 SK 문학야구장을 미리 다녀왔다.

“포수 뒤편 좌석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송재우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해설위원은 수원 야구장에서 포수 뒤편 좌석이 흥미롭다고 했다. “홈베이스도 가까워 선수들이 하는 얘기도 들을 수 있고, 좌석 자체가 다른 구장보다 낮아 선수들 눈높이에서 경기를 볼 수 있네요.”

지난 3월25일, 1군 데뷔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막판훈련 중인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송재우 야구 해설위원(왼쪽)이 이완 기자와 야구장 시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지난 3월25일, 1군 데뷔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막판훈련 중인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송재우 야구 해설위원(왼쪽)이 이완 기자와 야구장 시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포수 뒤편 공간은 원래 관중의 것이 아니었다. 텔레비전 중계를 본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그곳은 경기 감독관실이나 VIP실, 기자실 등이 있었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움직임이나 타자가 휘두르는 방망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명당이지만 팬들은 이곳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선수들 수다도 들을 수 있는 관람석

그런데 수원 야구장은 이 자리에 관람석을 놓았다. 한 자리당 5만원이라 비싸지만 예매만 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입장권은 입장객이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나이가 많은지,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가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야구장이 ‘산업화’ 또는 ‘민주화’가 된 현장이라 하겠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문학야구장이 생긴 뒤 한국 야구장은 야구를 보는 것에서 즐기는 것으로 흐름이 바뀌었다”고 했다. 2015년 프로야구 개막을 사흘 앞둔 3월25일, 송재우 해설위원과 함께 수원 KT 위즈파크를 찾았다.

KT 위즈파크는 프로야구를 치르기 위해 수원시와 KT가 증축 공사에 337억원을 썼다. 수원시는 기존 야구장 바깥으로 기둥을 세워 3층과 4층을 만들고 스카이박스와 관중석을 설치했다. 기존 1만4천 석 구장에서 2만 석 구장으로 탈바꿈했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2000년대 현대가 썼을 때와는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감탄했다.

또 내야에 ‘익사이팅존’을 구성해 그라운드와 관중을 가깝게 만들었다. 선수들이 파울플라이를 잡을 수 있는 공간은 좁아졌지만 “메이저리그에도 파울존이 거의 없는 구장이 있다”고 송재우 위원은 설명했다. “한국 야구장은 대칭형으로 설계돼 개성적인 게 없어요. 관중석이라도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게 낫죠.”

외야의 색다른 공간도 눈에 띄었다. 전광판 옆에 큰 시설을 지어 맥주 등을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스포츠펍’을 만들었다. 스포츠펍에 들어가보니 경기를 보기엔 다소 먼 듯했지만 함께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야구를 즐기기에 충분해 보였다. 야구장에 함께 온 사람들 모두가 야구를 좋아하지 않을 때 유용한 공간이다.

부족한 점도 있었다. 관중석 뒤편 편의시설과 통로가 있는 공간이 좁았다. 송재우 위원은 “야구가 끝난 뒤 관중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거나 매점 줄이 길어지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래된 야구장을 리모델링했기 때문에 시설 개선에 한계가 있다. 김양희 스포츠기자는 “대전 구장도 기존 구장 위쪽으로 관중석을 만들어 더 넓어졌지만 안쪽 공간은 넓힐 수 없어 편의공간이 좁다”고 했다.

광주에선 K3석, 부산에선 C석

송 위원은 “야구장이 구단이 아닌 지자체 소유이기 때문에 그동안 구단이 많은 것을 바꾸기 어려웠다. 최근에는 지자체가 구단에 장기 임대를 해주거나 관리 위탁을 하고 있어 구단 투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국 야구장들은 관중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다. KIA 타이거즈는 광주시와 함께 야구장을 새로 지었고, 한화 이글스는 대전 구장을 증축해 현대화했다. 삼성 라이온즈도 내년 개장을 목표로 새로 야구장을 짓는 중이다. NC 다이노스는 낡은 마산 구장의 관중석을 대규모로 개·보수했다.

시설도 바뀌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관중석으로 공이 날아오는 것을 막는 그물을 초록색에서 검정색으로 교체했다. 시야가 환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광주 챔피언스필드는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처럼 관중의 이동 경로를 개방형 통로로 만들어 관중이 화장실이나 편의점에 가더라도 경기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KIA 타이거즈 관계자는 “K3석이 경기를 보기에 좋은데 사람들이 많이 안 찾는다”고 귀띔했다. 롯데 자이언츠 관계자도 “C석이 경기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시원한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고 추천했다.

가장 관중 친화적인 문학구장

전국 구장을 모두 다녀본 프로야구팀 관계자들은 이 가운데 인천 문학구장을 가장 관중 친화적인 야구장으로 꼽았다. 10개 구단 홍보팀 관계자에게 ‘자신의 야구장을 제외하고 고르라’고 물은 결과, 5명이 문학을 택했다. 3명은 광주 챔피언스필드에 표를 던졌다. 나머지 2명은 대전과 수원을 각각 지목했다.

한 프로야구단 관계자는 “문학은 잔디와 주변 경관 등의 색깔이 초록색으로 모여 야구 경기에 집중하기 좋다”고 평했다.

가장 기대가 되는 문학야구장을 확인하기 위해 수원야구장을 떠나 이동했다. 문학야구장은 경기장 밑 지하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어 접근성이 좋다.

문학야구장의 큰 변화도 수원처럼 포수 뒤 좌석과 외야 스포츠바의 설치에 집중됐다. 포수 뒤 좌석인 ‘라이브존’이 가장 눈길을 끄는데, 이 좌석의 장점은 지하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 300㎡ 크기의 라운지는 원래 전광판실과 상황실 등이 있던 자리를 허물고 만들었다. 이곳에 들어가면 관중의 눈높이가 경기장 흙의 높이와 비슷해진다. 눈높이가 낮아진 덕에 투수가 던지는 변화구가 어떻게 떨어지는지를 생동감 있게 볼 수 있다. 김성용 SK 와이번스 야구단 매니저는 “포수 뒤편 좌석이 다른 구장보다 높아서 이를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지하에 라운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SK 와이번스는 외야석을 모두 교체하면서 의자 사이의 간격을 넓혔다. 전체 좌석 수는 2만7600석에서 2만6천 석으로 줄었다. 외야 스포츠바는 따로 표를 사야 하는 KT 위즈파크와 달리 야구장 입장객 모두 이용할 수 있다.

두 야구장을 둘러본 결과, 국내 프로야구단들이 야구장의 좌석 판매를 세분화하고 고급화하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은 4층 중앙석 1열을 지정석으로 바꿨다. SK 와이번스 쪽은 이 좌석이 관람하기에 좋은 ‘숨은 명당’이라 넓은 새 의자로 교체하고 예매하기 편하게 일반석에서 지정석으로 바꿨다고 했다. 대신 입장료는 1천원이 올랐다. 좌석 가격 세분화는 전체 입장 수입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

내야에 테이블석, 외야에 바비큐존을 설치해 한 의자당 입장료를 높이는 것은 이미 고전적인 방식이다. 송재우 위원은 “미국의 경우 고급 박스석이 많은데 한국은 테이블석이 월등히 많다”고 했다. 국내 야구팬들이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는 경향도 있지만, 테이블석의 가격은 일반석의 2~3배에 이른다. 한 프로야구단 관계자는 “항상 만원 관중이 드는 것이 아니어서 일반석을 없애고 바비큐존 같은 비싼 좌석을 파는 게 구단 수입을 늘리는 효과가 크다”고 했다. 국내 야구장 입장료는 미국·일본에 견줘 낮은 편이지만, 이들 나라처럼 좋은 좌석과 나쁜 좌석의 가격 차이가 커지는 흐름은 따라가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역시 티켓값이 올라 더 이상 축구를 ‘노동자의 경기’로 보기 어려워졌지만, 야구는 축구보다 좌석에 따라 경기를 볼 수 있는 시야 차별이 더 크다.

맥주 반입 금지? 치맥 어떡하라고!

KBO는 올해부터 안전을 이유로 주류 및 캔·병의 야구장 반입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안전을 내세우긴 했지만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야구장에서 비싸게 파는 맥주만 사먹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KBO의 조처는 주류를 파는 야구장 내 스포츠바의 이용률을 높여 구단의 수익성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들고 오는 저렴한 먹거리 대신 관중들은 비좁은 좌석 통로를 오가며 야구장 내 편의점을 이용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새로 만든 KT 위즈파크의 포수 뒤 좌석도 테이블석으로 설치돼 지나다니기에 비좁았다.

수원·인천=글 이완 기자 wani@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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