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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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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 반지 선생님

반지로 인간의 행동 제어해 학습하는 기술 연구하는 사우랍 다타,
그의 관심은 기계와 인간의 균형
등록 2015-03-11 06:23 수정 2020-05-02 19:27

빈센트 반 고흐는 우리에게 천재 화가로 알려졌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는 좀 달랐나보다. 그는 일생을 열등감을 품고 살았다고 한다. 눈을 감기 전까지 그림을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할 정도로 당대에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탓이었을까. 고흐는 동료 화가 고갱의 화풍을 모사해보기도 하고, 풍경화를 벗어나 정물화로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27살에 요절한 천재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도 다르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천부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정규 미술 학습 과정을 밟지 않은데다 흑인이라는 열등감이 전 생애를 지배했다. 위대한 예술가는 종종 결핍을 먹고 자란다. 결핍은 끊임없이 예술가를 채찍질한다. 후대가 인정하는 천재성은 ‘하늘이 주신 재능’만으론 채워지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타고난 소질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결핍이 빚어낸 노력이 재능을 넘어설 순 없을까. 예컨대 매일같이 원을 그리는 연습을 한다면, 10년쯤 뒤엔 컴퍼스로 그린 것처럼 매끈한 원을 손으로 그릴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된다면 재능 따윈 우후훗 비웃어주리라.

사우랍 다타 홈페이지 http://ge.tt/1gespeB2

사우랍 다타 홈페이지 http://ge.tt/1gespeB2

사우랍 다타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요즘 반지에 꽂혀 있다. 그 반지가 조금 특별하다. 한마디로 ‘그림 그려주는 반지’다. ‘포스핑거’(Forced Finger·사진) 얘기다.

출발은 늘 그렇듯 호기심이었다. ‘사람 몸에 기술을 좀더 밀착시키면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걸 넘어 학습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사람 손을 조종해 피아노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게 하고, 반복 훈련을 거쳐 나중에는 로봇 없이도 피아노를 잘 치고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된다면? 마침 ‘웨어러블’이란 꼬리표를 달고 온갖 기기들이 앞다퉈 인체에 기술을 덕지덕지 붙일 때였다. 게다가 다타는 취미 수준을 넘어 직접 로봇을 만들어 쓰는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였다. 다타는 어린 시절 자기 손을 잡아 이끌며 알파벳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는 ‘그림 가르치는 로봇 팔’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런 기계를 직접 만들어보는 일 자체가 그에겐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다타는 ‘포스 햅틱 피드백’ 기술에 주목했다. 그는 터치 화면을 단 휴대전화에서 흔히 쓰는 촉각 기술을 응용해 기계로부터 정확한 위치와 일정한 힘을 전달받는 방식을 떠올렸다. 다타는 손가락에 센서를 달아 촉각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팔을 조종하는 로봇을 만들었다. 첫 시제품은 단순했다. 로봇 레버가 팔 움직임을 기억해뒀다 그대로 피아노의 특정 음을 치게 만들었다. 결과는 끔찍했다. 손가락은 건반 위에서 로봇처럼 춤을 췄다.

그는 접근 방식을 바꿨다. 기계와 인간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차근차근 연구해보기로 했다. 몇 가지 사실도 알아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가 온전히 통제하는 상황을 몹시 불편해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기계가 억지로 팔을 움직일 때마다 몸을 비틀어 손목과 팔이 좀더 편안한 자세로 바꿨다. 기계는 그때마다 실험 참가자의 팔 움직임을 기록했다. 기록이 쌓이면서 기계는 사람이 팔을 어떻게 움직일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 배우게 됐다. 이를 기반으로 기계는 사람이 좀더 편안함을 느끼도록 팔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기계 사이에 ‘타협’ 지점이 생긴 것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포스핑거는 지금까지 3개의 시제품으로 발전해왔다. 포스핑거는 지금도 연구 단계인 기기다. 그림 실력은 여전히 형편없다. 이 녀석 손을 잡는다고 그림맹이 갑자기 피카소가 될 것 같진 않다. 포스핑거가 던지는 의미는 다른 데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기계 의존도도 높아진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뇌가 판단할 일을 기계에 떠넘기는 경우도 적잖다. 자동차를 믿고 운전대를 맡겼는데, 위험한 순간 낭떠러지로 돌진한다면 큰일이다. 생사를 가를지도 모를 급박한 순간,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속절없이 기계에 맡겨서야 쓰겠는가.

사우랍 다타가 포스핑거를 만드는 진짜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 삶에서 기계와 인간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까. 그 ‘지침’을 마련해보려는 게 다타의 욕심이다. 그는 지금 도화지보다 더 넓은 공간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기자 asada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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