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나무에 ‘물’이 열렸습니다!

물 부족한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공기 중 물을 모을 수 있게 디자인한 탑 ‘와카워터’
등록 2015-01-23 08:37 수정 2020-05-02 19:27

아프리카 나미브사막에 사는 스테노카라 딱정벌레는 특별한 재주를 지녔다. 스테노카라의 겉날개엔 수분을 모으는 돌기가 나 있다. 메마른 사막에서 안개가 꼈다 걷히는 짧은 순간, 스테노카라는 양 날개를 활짝 펼친다. 안개 속 수분은 돌기에 맺혀 물방울이 된다. 물방울은 돌기 사이에 팬 홈을 따라 흘러내려 딱정벌레 입으로 들어간다.
나미브사막에 딱정벌레가 산다면, 에티오피아엔 ‘와카워터’가 자란다. 와카워터는 탑이다. 이 탑은 공기 중에 밴 습기를 모아 물을 만든다. 바깥은 대나무를 격자 모양으로 엮은 나선형 탑 모양이다. 탑 안쪽에는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만든 오렌지색 그물을 둥그렇게 둘러쳤고, 그물 아래엔 물받이 그릇을 달았다. 공기 중 수분은 이 그물망에 붙어 물방울로 맺히고 아래쪽 그릇에 모인다. 대나무 탑은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물을 가져가거나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울타리이자, 그물망 온도를 낮춰주는 냉장고 역할을 한다. 탑 허리춤엔 차양막을 쳤다. 마을 사람들은 따가운 햇빛을 피해 와카워터 발치에서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한다.

물이 부족한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 세워진 와카워터. 와카워터 제공

물이 부족한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 세워진 와카워터. 와카워터 제공

와카워터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아르투로 비토리가 이끄는 ‘아키텍처앤비전’팀이 만들었다. 이들은 2012년 에티오피아 북동부에 자리잡은 작은 고원 마을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달리, 마을은 메말라 있었다. 여성과 아이들은 매일 먼 길을 걸어 더러운 저수지에서 물을 길어왔다. 그 물엔 동물 배설물이나 기생충이 섞여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선 그해에만 어린아이 5만4천 명이 이런 물을 마시고 목숨을 잃었다.

연구팀은 에티오피아에 맑은 샘물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땅을 파서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건 처음부터 생각지도 않았다. 장비도 인력도 부족한 에티오피아에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었다. 고원지대라면 더욱 무리였다. 물기라도 만나려면 수백m는 족히 파야 했으니까. 연구팀은 땅을 파는 대신 공기에서 물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 물방울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를 심는 거야.’

작업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다. 높고 가벼우면서도 비바람에 견딜 수 있는 안정된 탑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숙제였다. 현지 환경을 고려하면 중장비 없이도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해야 했다. 최신 기술을 쓰거나 환경을 해친다면 현지에 보급하기 어렵다. 다행히 에티오피아 주민들은 일찍부터 과일이나 생선을 담기 위해 나무 줄기로 바구니를 짰다.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와카워터를 만드는 일은 이들에겐 일상이나 다름없는 친숙한 작업이었다.

2012년 첫선을 보인 와카워터는 10여 차례 진화 과정을 거치며 지금 모습에 이르렀다. 키 3m 정도였던 1세대 와카워터는 3년 만에 10m짜리 아름드리 나무로 자랐다. 뼈대는 골풀 대신 대나무로 만들었고, 탑 꼭대기엔 새를 쫓는 반짝이를 달았다. 둘레도 기존 2m에서 4m로 2배 늘었다.

이탈리아 연구실에서 실험했을 때 와카워터는 하루에 50~100ℓ의 물을 모았다. 와카워터에 고인 물은 그 자체로 세계보건기구(WHO) 식수 권장 기준에 적합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끓이거나 정수하는 과정을 한 번 더 거친다. 이렇게 모은 물은 식수로 쓰거나 농사용으로 저장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와카워터 탑 하나를 세우는 데 드는 비용은 1천달러(약 100만원) 정도다. 탑을 많이 만들수록 비용은 더 내려간다. 탑을 만드는 데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한번 지어놓으면 6~10년은 거뜬히 쓸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내다봤다.

연구팀은 일단 에티오피아의 일부 지역에 와카워터를 시범 설치해 연구를 진행한 뒤 건립 지역을 확대할 생각이다. 와카워터는 지역 환경이나 풍토에 맞춰 다양한 모양이나 크기로 제작된다. 연구팀은 에티오피아와 환경이 비슷한 다른 나라에도 파일럿 프로젝트를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와카워터는 와카나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와카나무는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자생하는 나무다. 20m는 너끈히 자란다. 와카나무 열매는 지역 주민과 동물의 식량이고, 넉넉한 나무 그늘은 아이와 노인들의 휴식처이자 마을회관이다. 와카나무는 곧 에티오피아 환경이요, 문화다. 와카워터엔 메마른 에티오피아 주민들의 삶에 풍요와 안식을 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투영돼 있다.

와카워터 연구팀은 올해 1월2일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킥스타터’에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모금은 10만달러를 목표로 2월11일까지 진행된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