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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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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대만? 꽃보다 혁신!

7월 열린 ‘2014 사회적 기업가 육성 프로젝트-사회적 기업 콘퍼런스’에 참가한
청년 사회적 기업가 서선미 대표의 참관기
등록 2014-08-17 04:33 수정 2020-05-02 19:27
도전은 국경을 초월한다.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청년 혁신가들의 고민도 아시아라는 공간을 관통하고 있다. 지난 7월3일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청년, 아시아의 미래를 열다’ 행사를 계기로 한국과 인도네시아·타이·일본·베트남·필리핀 등 아시아 청년 혁신가를 소개해온 이 이번에는 대만에서 움트는 청년 혁신가들의 꿈과 고민을 들여다봤다. 대만 노동부 초청으로 ‘2014 사회적 기업가 육성 프로젝트-사회적 기업 콘퍼런스’에 참가한 청년 사회적 기업가 서선미 플레이플래닛 대표의 참관기를 소개한다. _편집자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 이 우리나라를 넘어 대만 현지에서까지 큰 화제를 낳았다. 고령의 출연진들이 만든 재미난 에피소드도 인기 비결이었겠지만, 무엇보다 방송을 통해 이웃 나라 대만을 재발견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어쩌면 너무 가까워서 미처 알아채지 못한 매력은 그저 TV 속 멋진 풍경만은 아닐 듯하다. 과연 이웃 나라 대만 청년들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변화를 꿈꾸며, 새로운 시도를 위해 어떤 도전을 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지를 보면 말이다.

대만 사회적 기업 35곳이 활동

지난 7월19~22일 대만 타이베이·타이난에서 ‘2014 사회적 기업가 육성 프로젝트-사회적 기업 콘퍼런스’가 열렸다. 대만 노동부 주최로 열린 이번 포럼은 비즈니스를 통해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이들을 불러 경험을 나누는 자리다. 대만에서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3년 남짓 된다. 사회적 기업 활동을 확산하고자 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뛰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대만 정부는 한 해 동안 국제 포럼을 5차례 열고, 매번 여행·의료·교육 등 다양한 주제로 10명의 해외 사회적 기업가를 초청하고 있다. 아시아 혹은 세계 각국에서 참신하고 성공적인 사회 혁신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사례를 공유하고, 적극적인 국제 교류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 목표인 셈이다.

이번 행사도 대만 노동부를 중심으로 대학·비영리기관이 함께 주최하고, 사회적 기업가들과 사회적 기업에 관심 있는 대학생부터 지원 및 정책에 관여하는 공무원 등 모두 150여 명이 참가했다. 플레이플래닛도 대만 노동부의 초청을 받아 아시아 지속 가능 관광 프로젝트 사례와 공유경제 플랫폼에 기반한 새로운 여행의 방식을 대만 현지에 소개했다. 포럼의 열기는 현지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여행이 개인 그리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주제로 이어진 포럼은 타이베이·타이난 두 도시에서 실제 대만 사회적 기업 현장을 방문하는 ‘로컬투어’도 함께 진행됐다. 이를 통해 대만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의 고민과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대만에는 전국적으로 약 35개의 사회적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회사를 등록할 때 ‘사회적 기업’을 회사 이름에 붙인 경우지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지 않고 사회적 기업가의 정신을 실천하는 회사도 여러 곳 있다. 대만 현지에서는 아직은 일반 상법 회사의 사회적 기업보다는 비정부기구(NGO)가 주도하는 사회적 기업 프로젝트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NGO가 취약계층을 위한 청소·베이커리 등 직업훈련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긍정적 나비효과를’ 경험했다”

현장에서 만난 대만 청년 사회적 기업가들은 지역사회의 고민을 사업에 녹여내고 있었다. 대만 남부지방 도시인 타이난에서 골목길 투어를 안내하는 케이시의 경우도 그랬다. 타이난 토박이인 그는 관광객을 상대로 골목 곳곳을 설명하며 지역을 되살리고자 모인 지역 작가들의 벽화와 디자인 상품 등을 소개하는 워킹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대만의 수도였던 타이난은 항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지만,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조용한 동네로 변했다. 이곳에서는 대량생산·아웃소싱 없이 지역 작가들이 디자인하고 지역 어머니들의 봉제작업을 거친 지역의 특색을 담은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케이시는 단순히 관광기념품이 아니라 여행자와 지역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기 위한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었다.

타이난 지역에서 사라져가는 대만 전통 인형극을 보존하는 사업을 청년 사업가들이 진행하는 ‘타이난 전통 인형극단’도 인상적이었다. 대만 지역 곳곳에서 전통 인형극을 진행하지만, 타이난에서는 청년 사업가가 중심이 돼 이를 관광상품으로 집중 개발하고 있었다. 타이난 전통 인형극단 관계자는 “인형극을 남녀노소 함께 웃고 어울릴 수 있는 놀이이자 대만의 역사와 전통을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들려줄 수 있는 좋은 학습 도구로 발전시켜 다음 세대가 자랑스런 대만의 고유 문화로 여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타이베이에서 공정여행사 ‘일리’를 5년째 운영하고 있는 케빈의 이야기는 조금 특별했다. “첫 직장에서 만난 상사·동료들과 떠난 일본 자전거 여행이 세상을 보는 눈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가슴 설레는 일을 찾아나서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필리핀 자원봉사를 떠났고, “여행자의 작은 나눔의 실천이 지역과 지역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삶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긍정적 나비효과’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만에 돌아와 ‘볼런투어’(Voluntour·자원활동(Volunteer)+여행(Tourism)의 결합어로 ‘봉사여행’이라는 뜻) 전문 여행사를 설립했다. ‘일리’는 10대부터 대학생,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아시아 각지의 마을로 여행을 떠나 지역민들과 함께 마을 도서관, 학교 등 지역에 필요한 인프라를 설립하고 지역에 머물며 문화를 교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대만 청년 사회적 기업의 도전은 여행에만 그치지 않았다. 특히 대만 청년 사회혁신가들이 주목하는 화두는 ‘농촌 문제’였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만에서도 농촌마을의 고령화로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할 뿐 아니라, 지역 농산물이 값싼 수입 농산물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나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차를 많이 마시는 문화권이지만 실제 대만에서 방문한 차 농가의 현실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유기농 차 농법을 개발해 지역 농부들에게 전파해 생산을 돕고 있는 청년 사회적 기업 ‘블루맥파이’, 디자인을 가미해 농산품 마케팅·유통을 돕고 있는 ‘오로라’ 같은 사회적 기업도 ‘농촌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유기농법 전파하고 로컬여행 제시하고

대만 정부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고민하고 있다. 현재 대만에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제도인 사회적 기업 인건비 지급, 판로 개척 및 비즈니스 컨설팅 등을 지원하고 있었다. 사회적 기업의 민간투자기관으로는 ‘필로세’(Philose)의 활동이 대표적이었다. 사회적 기업 분야 벤처캐피털(VC)인 필로세는 사회 혁신 창출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지원을 하고 있다. 필로세가 투자한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지역 단체와 협업해 지역의 농부들에게 유기농법을 전파하고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유기농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돕고 마케팅과 유통 등을 담당하는 ‘오로라’(Aurora), 지역과 도시의 불균형적인 발전 해결책으로 ‘로컬여행’을 제시하고 청년들의 여행을 통한 지역 발전을 목표로 내건 여행사 ‘로컬펀’(Local Fun) 등이 있다.

필로세의 활동은 단순히 투자에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기업가를 배출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알리는 역할과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예비 기업가들을 위한 교육·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도 하고 있다. 필로세가 직접 운영하는 공정무역 커피숍 ‘커피 필로’(Coffee Philo)는 사회적 기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어울리고 각종 관련 이벤트를 여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단순히 사회적 기업 투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가가 탄생·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토양을 만드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었다.

아시아 국가 모두, 어쩌면 국가를 막론하고 ‘요즘 젊은 세대’가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은 도전에 대한 ‘두려움’ 또는 실패에 대한 ‘리스크’(Risk)일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을 꾸리는 것 자체가 어쩌면 하나의 도전과도 같은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지역사회와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 도전한다는 것은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는 소중한 도전일지 모른다. 대만 현지에서 한자리에 모인 100여 명의 청중과 나눈 대화에서는 사회적 기업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수익모델, 지역과의 소통 방법과 협업의 사례,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도전하는 사회적 기업가’(Unreasonable People)의 리더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 대화만으로도 국경을 넘어 이 시대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만 청년들의 에너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연대감, 재미난 협업으로 다시 태어나길

청년 사회혁신가의 첫 발걸음은 아직 미약하다. 이들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 아시아 지역 곳곳에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과 열정을 갖고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또 다른 동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가슴속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 ‘연대감’이 가까운 미래에 재미난 협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타이베이·타이난(대만)=글·사진 서선미 플레이플래닛(Play plane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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