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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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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회공헌에 팔 걷나

삼성·현대차·SK·LG·포스코·GS 등 13개 그룹 사회공헌 설문조사
작년보다 6.9% 상승, 경제민주화 여론에 지출 더 늘듯
등록 2012-04-11 07:34 수정 2020-05-02 19:26

“삼성은 국민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어려운 이웃,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동참해야 한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소외된 계층을 보살피는 사회공헌과 협력업체와의 공생·발전을 더욱 강화해 국가 경제와 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모범적인 기업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생활용품업계 1위인 유한킴벌리가 3월31일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의 일환으로 개최한 제29회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에 신혼부부 600쌍 등 모두 800여명이 산비탈에 나무를 심고 있다. 유한킴벌리 제공

» 생활용품업계 1위인 유한킴벌리가 3월31일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의 일환으로 개최한 제29회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에 신혼부부 600쌍 등 모두 800여명이 산비탈에 나무를 심고 있다. 유한킴벌리 제공

GS 지난해보다 44% 증가, CJ 29% 감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헌을 강조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올해 신년사 내용이다. 다른 주요 그룹의 총수들도 신년사에서 성과 극대화와 함께 사회공헌과 상생에 무게를 실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더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한국 사회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민주화, 재벌 개혁이 핵심 이슈로 등장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다.

국내 주요 그룹들이 이런 사회적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이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대상은 그동안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을 주도해온 삼성·현대차·SK·LG·포스코·GS·KT·한화·금호·CJ·이랜드·교보생명·YK 등 13개 그룹이다. 와 은 2005년 이후 (2011년은 제외) 매년 한 차례씩 사회공헌 실태조사를 벌여왔다. 설문조사는 2011년 사회공헌 지출액, 2012년 사회공헌 예산액, 주요 사회공헌 프로그램과 올해 새로 시작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 사회공헌 추진조직 현황, 이해관계자와의 대화, 사회책임경영 등 사회공헌과 사회책임경영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전까지는 정량적 내용 위주였다면 올해는 정성적 내용을 겸해 실태조사의 충실도를 높이려 한 것이 특징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을 제외한 12개 그룹의 2011년 사회공헌 지출은 모두 7252억원으로, 2010년의 6787억원에 비해 6.9% 증가했다(그림 참조). 이는 2010년의 증가율 7.4%보다 다소 낮아진 것이다. 재계 1위인 삼성은 2007년까지는 매년 4천억원이 넘는 사회공헌 지출을 해왔으나 2009년부터 비용 산출의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공헌 지출 내역을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사회공헌 지출이 가장 많은 그룹은 SK로 1600억원이었다. 그다음은 LG(1500억원), 현대차(1400억원), 포스코(697억원) 순이다(표1 참조). 사회공헌 지출이 2010년 대비 가장 많이 늘어난 그룹은 GS로, 증가율이 44.4%에 달했다. 지역사회 공헌 차원에서 1천억원을 들여 전남 여수의 문화예술공원 ‘예울마루’ 건립사업을 벌인 것이 영향을 끼쳤다. 예울마루는 여수세계박람회 개최에 맞춰 5월에 개관할 예정이다. 그다음은 금호아시아나(24.3%), 교보생명(21.3%), LG(15.4%) 순이다. 반면 사회공헌 지출이 가장 많이 줄어든 그룹은 CJ(-29.8%), 유한킴벌리(-27.1%) 등의 순서다. 유한킴벌리는 공장이전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 CJ그룹의 대표 사회공헌인 ‘CJ도너스캠프’는 공부방 아이들의 연극·뮤지컬·댄스·음악 등 문화예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스테이지 포 유’(Stage For You)를 3년째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공부방 아이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CJ 제공

» CJ그룹의 대표 사회공헌인 ‘CJ도너스캠프’는 공부방 아이들의 연극·뮤지컬·댄스·음악 등 문화예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스테이지 포 유’(Stage For You)를 3년째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공부방 아이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CJ 제공

현대 “분위기 고려 사회공헌 적극적 펼칠 것”

삼성과 교보생명을 제외한 11개 그룹의 2012년 사회공헌 예산은 747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1개 그룹의 지난해 사회공헌 지출에 비해 5.3% 많은 것이다. 교보생명은 3월 결산법인으로 2011년도 결산이 마무리되지 않아 2012년 예산이 아직 미확정 상태라서 분석 대상에서 제외됐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올해 사회공헌 예산 증가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SK·LG·포스코 등 사회공헌 지출이 많은 상위 그룹들이 올해 예산을 지난해 수준 정도라고 응답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2009∼2011년 3년간 사회공헌 지출의 평균 증가율은 6%였다. 하지만 실제 올해 사회공헌 지출은 예산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사회책임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총선과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는 사회적 분위기가 기업 사회공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이병훈 사회문화팀장은 “각 계열사들이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사회공헌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칠 것으로 보여 실제 지출은 예산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인성 삼성사회봉사단 상무도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최근의 사회 분위기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삼성의 사회공헌 지출이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룹별 올해 사회공헌 예산 증가율은 ‘순이익의 10% 사회환원’ 원칙을 천명하는 이랜드가 42.9%로 가장 높다. 이랜드는 해외사업 확장 추세에 맞춰 중국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회공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13.8%)와 CJ(10.1%)도 예산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사회공헌 지출은 절대규모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거둔 이익 중에서 얼마나 사회를 위해 쓰느냐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2010년 기준으로 현대차·SK·LG·포스코·GS·한화·KT·금호아시아나·CJ·유한킴벌리 등 주요 10개 그룹의 이익 대비 사회공헌 지출 비율은 평균 1.8%로 나타났다(표2 참조). 그룹별로는 유한킴벌리가 6.3%로 가장 높고 CJ(5.7%), SK(3.0%), LG(2.8%), 한화(2.0%) 순이다. 국내 기업들의 이익 대비 사회공헌 지출 비율은 미국 등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에 따르면 2010년 500대 기업의 평균 사회공헌 비용은 전년 대비 8.4% 증가했고, 경상이익 대비 사회공헌 지출은 3.2%를 기록했다.

주요 그룹들이 올해 새롭게 시작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들은 일자리 확충, 양극화 해소, 노인 문제, 환경, 다문화가정 지원 등 사회적 요구를 해결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병훈 현대차그룹 사회문화팀장은 “자활 의지가 있는 저소득층에게 차량 지원을 하는 ‘희망드림기프트카사업’과 사회적 기업을 통한 일자리 확충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도 친환경 사회적 기업에 운영비와 개발비 등을 지원하고, 사회적 기업 종사자를 위한 포럼과 워크숍을 병행해 사회적 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교보생명은 청년 일자리 및 리더십 프로그램 관련 사업을 검토 중이다.

삼성 “저소득층 학생 방과 후 학습 지원”

 

삼성은 학습 의지는 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중학생 1만5천 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강사를 활용해 방과 후 학습을 지원하는 ‘드림클래스’ 사회공헌사업을 3월부터 시작했다. 저소득층 공부방 어린이들이 다양한 문화·교육 체험을 할 수 있게 일반 기부자와 전국 공부방을 연결하는 ‘CJ도너스캠프’를 8년째 하고 있는 CJ는 올해부터는 대학생 영어교사 지원사업을 새로 시작한다. 저소득층 대학생을 상대로 영어강사 교육을 이수시킨 뒤 공부방 어린이들에게 주 3회 영어 교육을 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공익캠페인으로 유명한 유한킴벌리는 고령화 사회를 대비해 시니어를 위한 공익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사회에 좋은 것이 기업에도 좋은 것’이라는 ‘공유가치창출’(CSV) 개념을 바탕으로 고령화 문제를 푸는 데 기여하면서도 회사의 사업 기회와 장기적 이익 창출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사회적 기업 설립을 통한 시니어 취업 기회 확대, 시니어들의 공익활동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규복 사장은 “고령화의 가속화로 인해 은퇴 이후에도 일을 하고, 취미나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기업은 새로운 비즈니스로 더 넗은 영역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시니어 세대는 더 편리하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고 직접 경제활동에도 참여함으로써 고령화 문제에 슬기롭게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GS는 2011년부터 시작한 ‘그린에너지스쿨사업’을 더 확대해 기후변화와 올바른 에너지 사용을 주제로 한 환경교육 키트를 제작해 교육기관과 복지단체에 무상 지원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다문화가정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지원사업과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기로 했다. KT는 매일유업·하나투어·대명 등 13개 기업과 손잡고 저소득층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3일 일정의 ‘비전캠프’를 운영할 계획이다. KT는 이를 위해 경기도 양평의 폐교 한 곳을 리모델링해 ‘비전센터’를 건립 중인데 5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신혜정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 실업난, 자원 고갈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추세”라며 “앞으로 기업의 사회공헌은 단순한 기부에서 벗어나 정부, 비정부기구(NGO),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협력을 통해 사회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고, 보유한 자원과 기술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혁신이 강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J그룹의 대표 사회공헌인 ‘CJ도너스캠프’는 공부방 아이들의 연극·뮤지컬·댄스·음악 등 문화예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스테이지 포 유’(Stage For You)를 3년째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공부방 아이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CJ 제공

CJ그룹의 대표 사회공헌인 ‘CJ도너스캠프’는 공부방 아이들의 연극·뮤지컬·댄스·음악 등 문화예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스테이지 포 유’(Stage For You)를 3년째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공부방 아이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CJ 제공

 

평가 시스템 개선, 체계적 운영 등 숙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자 글로벌 사회공헌도 확대되고 있다. 포스코는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해외 사업장이 있는 지역사회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하고, GS는 한국국제협력단 및 굿네이버스와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해 캄보디아 구호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중국 내 보육시설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3월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첫 ‘색동놀이터’를 개원했다.

기업 임직원들의 자원봉사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6개 공익재단을 중심으로 장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유독 많은 LG그룹은 방과 후와 토요일 교육을 제공하는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임직원들의 재능나눔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SK는 글로벌 사회공헌과 임직원 자원봉사를 연계한 새로운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임직원 가족이 휴가와 연계해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에서 글로벌 자원봉사를 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크게 증가하고 기업들도 이에 부응해 사회공헌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 시스템은 개선할 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성과 평가 여부와 관련한 질문에 13개 그룹 모두 ‘평가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평가 방식과 관련해서는 외부 전문기관을 통한 체계적·객관적 평가보다는 내부 평가에 의존한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양용희 호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성과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기관과 성과측정 수단이 중요한데 국내 기업들의 경우 평가의 객관성·전문성에서 아직 미흡한 측면이 많다”며 “GS칼텍스가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사회공헌 프로그램 평가지표를 개발해 2011년 10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평가한 것은 진일보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그룹들의 사회공헌 전담 조직이 아직 주력 계열사에만 한정돼 있고, 나머지는 다른 업무와 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회공헌 활동의 체계적 운영과 관리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회공헌 담당 직원들의 평균 업무경력도 2~5년에 그쳐, 전문성을 쌓기에는 충분치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양용희 교수는 “사회공헌 전담 조직이 있는 그룹에서도 담당 임원이 자주 바뀌고, 심지어 사내에서 물먹은 사람들이 맡는 자리로 인식되는 기업들도 있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LG그룹이 지주회사인 (주)LG 산하에 부사장을 팀장으로 하는 CSR(기업사회책임)팀을 신설하고, 한화그룹이 올해 복지재단 설립에 나선 것은 사회공헌과 사회책임경영의 체계적 운영 필요성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 사회적 책임 공시제 도입 공약 

이는 기업의 사회공헌과 사회책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급증해 관련 활동이 기업의 평판은 물론 경영 성과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커지는 추세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한 예로 민주통합당은 총선 공약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 강화를 위해 사회적 책임 공시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반적인 재무정보 외에 회사의 지배구조, 비정규직 고용 개선 현황, 청년고용 및 일자리 창출 현황, 대주주와 임원의 회사 관련 처벌 현황, 각종 법규 위반에 따른 처벌(과징금·과태료·형사처벌) 등 기업의 사회책임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일정 규모 이상의 대규모 공공사업을 발주할 때 사회적 책임을 평가해 잘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강구하기로 했다.

곽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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