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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차기회장? “누가 대통령 사돈과 맞서리”

조석래 회장 비자금 수사 불구 연임 관측… 상의·무협 회장도 2월에 임기 끝나 ‘정치 외풍’
등록 2009-01-16 02:24 수정 2020-05-02 19:25

2월19일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총회가 열린다. 총회에서 32대 회장이 뽑힌다. 그동안 전경련 회장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선임됐다. 하지만 전경련회관이 1월 말 재건축에 들어가 이번에는 호텔에서 선임된다.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5개 경제단체장 가운데 전경련·대한상의·무역협회 단체장 임기가 다음달 끝난다. 재계에선 2월이 정치의 계절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거론되는 인사들 중 일부는 기업 비자금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어 ‘자격론’이 제기되고 있다.

전경련·대한상의·무역협회 회장 임기가 2월로 끝남에 따라 다음 회장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왼쪽부터 조석래 전경련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이희범 무역협회장. 한겨레 김경호·한겨레 자료·한겨레 자료(왼쪽부터)

전경련·대한상의·무역협회 회장 임기가 2월로 끝남에 따라 다음 회장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왼쪽부터 조석래 전경련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이희범 무역협회장. 한겨레 김경호·한겨레 자료·한겨레 자료(왼쪽부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전경련의 권위는 크게 추락했다. 참여정부 때는 기업들이 정부에 정책 건의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군사정부와 그 뒤 김영삼 정부와까지 이어진 밀월관계는 끝났다. 전경련 폐지론까지 나왔다. 1997년 외환위기 당사자란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달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경제단체들의 위상이 크게 강화됐다. 전경련이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이 당선 뒤 노동단체들을 제쳐두고 찾아간 곳이 바로 전경련이었다. 대선이 끝난 지 9일 만인 2007년 12월28일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전경련회관을 찾아 재계 총수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이 당선인을 맞기 위해 전경련회관에는 4대 그룹 회장 등 21명의 대기업 회장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 당선인과 재계 총수들은 서로 화답하며 ‘경제 살리기’를 합창했다. 전경련은 2008년 30대 그룹 투자계획이 89조9천억원으로 전년 실적보다 19.1%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윤호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발탁하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재계를 참여시키는 등 전경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선 앞두고 ‘사돈 편들기’ 논란

이런 가운데 전경련의 다음 회장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전경련 안팎에선 조석래 현 회장의 연임이 점쳐진다. 조 회장은 2007년 3월 전경련 회장으로 선임됐다. 선임 과정에서 재계는 내홍을 겪었다. 전경련은 2007년 2월27일 정기총회에서 조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려 했지만 1935년생인 조 회장에 대해 ‘70대 불가론’이 터져나왔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전경련의 개혁을 요구하며 부회장직을 사퇴했다. 재계 원로들도 70대 회장 불가론으로 반목을 빚었다. 회장 선출 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같은 우여곡절 끝에 조 회장은 신임 회장에 뽑혔다. 그의 회장 선임에는 화려한 혼맥과 인맥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재계의 후문이다. 조 회장은 이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큰아버지로, 이 대통령과는 사돈 관계가 된다.

조 회장은 2년 동안 회장직을 맡으면서 노조에 대한 쓴소리와 기업 규제 완화 제안으로 재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선을 앞두고 ‘사돈 편들기’라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조 회장은 2007년 7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차기 지도자는 세계 시장을 잘 알고 글로벌 경제를 이끌 수 있는 경제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옛날에 시골 땅 좀 샀다고 나중에 총리가 못 되기도 하는데 그런 식으로 다 들추면 국민 중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며 “외국인들은 ‘무리다. 그런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런 사람이 행정을 제대로 하겠느냐’는 말들을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7월 기자간담회에서 “전경련 회장은 하고 싶어 하는 것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역대 회장 중에 자의로 한 분은 거의 없고 전체적 총의에 의해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연임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재계에선 평가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지난해부터 추진해왔던 전경련회관 재건축이 계속 늦춰졌다. 설계도 때문이다. 애초 설계도에 대해 조 회장이 다시 만들라고 지시했다. 조 회장이 이번만 회장을 한다면 그렇게까지 했겠나. 차기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직까지 유지하면 칼 겨누겠나”

또 다른 임원은 “조 회장 말고 현재 거론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조 회장이 그동안 무리 없이 전경련을 잘 이끌어왔다. 재계의 목소리도 정부에 잘 전달했다. 여기에 대통령의 사돈 아니냐. 대통령 사돈과 누가 대적하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비자금 문제가 걸려 있어 재계 수장을 맡는 게 적절치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효성그룹 계열사인 효성건설에 대해 100억원대의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연임 여부의 막판 변수가 될 전망이다.

효성 비자금 사건 수사는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의 의뢰에 따른 것이다. 국가청렴위는 효성 내부자한테서 ‘효성그룹이 2000년께 일본 현지법인 수입부품 거래 과정에서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200억∼3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국가청렴위는 검찰에 효성의 구체적인 비자금 조성 수법과 그룹 내부 회계자료를 넘겼다. 비자금은 효성에 흡수 편입된 옛 효성물산의 일본 법인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은 외환위기 바로 뒤인 1998년 효성물산과 동양나일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 등을 효성으로 통합했다. 현재 효성은 22개 국외 지역에 상사 법인을 두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전경련회관 건물. 김정효 기자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전경련회관 건물. 김정효 기자

이번 사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내부 제보에서 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과거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과 현대차 비자금 사건도 내부 제보로 수사가 착수됐다. 이런 경우 검찰 수사의 성공률이 높다. 두 사건 모두 최태원 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국가기관인 국가청렴위에서 이번 사안을 검찰에 넘겼다는 점도 제보의 신뢰성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8일 광주·전남 지역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검찰이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자금은 없다”며 관련 혐의 일체를 부인했다.

재계의 한 임원은 “조 회장이 비자금 문제 때문이라도 전경련 회장을 계속하고 싶을 것이다. 정권 눈치를 보고 있는 검찰이 대통령 사돈 기업에 쉽게 칼을 겨누지 못하고 있지 않나. 여기에 전경련 회장직까지 계속 맡게 되면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 있겠나. 흐지부지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손경식 상의 회장도 CJ 비자금 부담

일부에선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나 김승연 한화 회장 등이 나선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대차와 한화그룹 쪽은 “경제위기로 기업 현안이 쌓여 있어 회장님이 해야 할 일이 많다. 전경련 수장을 맡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도 연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재계에선 보고 있다. 손 회장은 박용성 전 회장이 중도에 물러나면서 2005년 11월부터 대한상의를 이끌어왔다. 박 전 회장은 2000년 5월 대한상의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계획 있고 실천 없는 한국은 NAPO(No Action Plan Only) 공화국’ ‘대기업은 신음소리만 말고 용기 있게 나서라’ 등 정부 정책은 물론 기업들의 부정적인 점도 지적해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형제의 난’으로 비자금 사건이 불거져 낙마했다. 박용오 전 두산 회장이 동생인 박 전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양상이 됐다. 박 전 회장은 공식 직함만 60개가 넘는 마당발이었지만 가족 간의 재산권 분쟁으로 야기된 비자금 문제가 터지면서 대한상의 회장 등 국내의 대외 직함을 내놓았다.

손 회장의 정식 임기는 2006년부터 시작됐다. 2월이면 3년 임기를 마친다. 손 회장의 임기 중인 지난 2006년 상공회의소법이 개정되면서 연임을 한 차례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하지만 손 회장 역시 자신이 맡고 있는 회사에 비자금 문제가 터졌다. 손 회장은 ‘삼성가 장손’인 이재현 CJ 회장의 외삼촌으로, CJ그룹 공동회장직도 맡고 있다. CJ는 지난해 비자금을 둘러싸고 조직폭력배가 연관된 살인청부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다. 미국 유명 대학 경영학석사(MBA) 출신인 전 자금팀장이 이재현 회장의 개인자금을 관리하면서 전직 조폭에게 이를 맡겼다 떼인 사건이다. 사설 경마, 사채업 등에 투자해 자금을 불려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갔던 것인데, 그 뒤 다른 폭력배를 동원해 자금을 떼먹은 전직 조폭을 살해하려 했다. 자금 출처에 대해 CJ그룹 쪽은 선대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돈이라고 설명하지만 일각에서는 회사 돈을 빼돌려 조성한 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이희범 무협 회장은 개각이 변수

무역협회 회장은 개각이 변수다. 이희범 무역협회장은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회장은 2006년 자리에 올랐다. 이 회장은 상공부에서 무역·산업·통상 분야 행정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산업자원부 장관까지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15년 만에 기업인이 아닌 관료 출신이 회장에 올랐다. 이 회장은 업무 처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남덕우·구평회·김재철 전 회장 등 연임한 사례도 많아 연임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개각설이 나오면서 연임설은 사라졌다. 재계 안팎에선 이 회장이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후임으로 입각한다는 얘기가 새나온다. 이 회장의 별명은 ‘탱크’다. 강한 추진력이 장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업무 스타일이기도 하다. 이윤호 장관이 차기 무역협회장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재계에선 청와대의 선택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유창무 전 상근부회장이 수출보험공사 사장으로 발탁되면서 상근부회장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있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쫓겨났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1989년부터 2년 동안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맡았다. 차기 회장으로 관료 출신이 올 경우 재계 출신이 상근부회장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정순원 전 로템 부회장을 비롯한 몇몇 최고경영자(CEO) 출신 인사가 이미 터닦기 활동을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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