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5살 많은 쌍둥이

냉동보관되었다가 15개월 만에 태어난 첫째와 보존 기한 직전 시도한 뒤에 태어난 쌍둥이
등록 2021-02-13 15:48 수정 2021-02-17 23:46
인간 배아: 인간 수정란이 ‘난할’이라는 독특한 과정을 거쳐 배아로 발달해가는 모습. 한겨레 자료

인간 배아: 인간 수정란이 ‘난할’이라는 독특한 과정을 거쳐 배아로 발달해가는 모습. 한겨레 자료

몇 달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눈에 뜨인 기사가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나온 ‘쌍둥이 상식 파괴… “오빠는 두 살 위, 생일도 달라요”’라는 제목의 기사였죠. 해외 단신 기사라 많은 내용이 들어 있지는 않았지만, 기사의 논조는 ‘의학이 발달하니 이런 일도 있구나’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나니, 마음이 좀 심란해졌습니다. 제 세 아이 중 둘은 출생 시간의 차이가 1분에 불과한 쌍둥이임이 맞지만, 다른 한 아이도 수정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함께 만들어진 같은 수정 쌍둥이니까요. 그러나 이후 이 아이들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 첫째는 수정 뒤 15개월 만에, 둘째와 셋째는 무려 5년10개월 만에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세 아이의 생물학적 시간이 시작된 때는 같지만, 출생 시간은 몇 년이나 차이 나는 셈이죠.

누구도 50점을 맞지 않는 평균 50점

고민 끝에 저는 한 번 더 시도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제 남은 기한은 한 달. 한 달 안에 결정하지 않으면 그 배아들의 존재는 사라집니다. 5년씩이나 냉동됐던지라 해동시 배아의 생존율이 높지 않을 수 있겠지만, 시도조차 안 하고 지나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 5년간 피임하지 않았어도 아기 소식은 여전히 없었고, 난자 채취를 하면서 부작용을 너무 심하게 겪은 터라 과배란 시도는 절대 다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또 다른 아기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러나 결심했다고 바로 이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배아가 만들어졌기에, 월경주기에서 착상이 일어나는 시기, 즉 배란 뒤 5~7일이 될 때를 기다려야 했지요. 보통 여성의 배란은 스스로도 정확한 날짜를 알기 어려운데, 배란기는 월경이 시작된 뒤 2주 뒤로 봅니다. 그래서 이보다 2~3일 앞서 병원을 찾아 배란기에 들어섰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운이 좋다면 이날의 진찰만으로도 배란기를 알 수 있어 바로 배아 이식이 가능한 날을 잡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몇 번을 더 방문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교과서에는 여성의 월경주기는 28일이며, 월경이 시작한 뒤 14일을 전후해 배란이 일어난다고 돼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값일 뿐 개인적 편차가 큽니다. 마치 0점과 100점의 평균은 50점이지만, 누구도 50점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병원을 방문해도 누군가는 이미 배란이 끝난 경우도 있고, 어떤 이는 아직 난포가 전혀 자라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 주기는 매번 조금씩 달라집니다. 게다가 월경주기를 관장하는 호르몬은 몸 상태에 예민하게 반응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주기와 양상이 전혀 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오지 말라면 오고 기다리면 안 오는 ‘홍양’

아이러니하게도 보조생식술은 여성의 몸과 마음에 큰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보조생식술을 시도하려는 여성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간절함과 좌절감을 가진 상태로 과정을 시작하며, 그사이에 수많은 검사와 약물과 주사로 인한 불편함과 통증과 건강상의 이상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내게 뭔가 문제가 있어 아이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우울증과 자존감 저하에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이 모든 상황은 묵직한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그러니 우습게도 이전 달까지만 해도 매번 어김없이 찾아와 ‘이번 달도 아기를 만나지 못했구나’라는 실망감을 안겨주던 월경이, 막상 배아를 이식하기 위해 기다리기 시작하면 제 날짜를 한참이나 넘겨도 오히려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난임 카페’ 여성들 사이에선 ‘홍양’(월경을 말함)은 오지 말라면 꼬박꼬박 찾아오다가 기다리면 안 온다는 하소연이 넘쳐나지요.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울 정도로 당연하게 일어나서 저도 예외는 아니었고, 한없이 늘어지는 월경주기로 실제 이식하는 날은 병원에서 전화받은 지 두 달이 지난 뒤로 잡혔습니다. 시술대 위쪽 모니터에 포배기에 무사히 들어선 배아가 보였습니다. 사람의 배아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해 수정란을 만든 뒤, 난할이라는 다소 특이한 세포분열 현상을 보이면서 무섭게 빠른 속도로 분열합니다.

배아 이식 몇 주 전부터 임신 10주까지 매일 맞아야 하는 주사는 시험관 시술에서 힘든 부분 중 하나다. 류우종 기자

배아 이식 몇 주 전부터 임신 10주까지 매일 맞아야 하는 주사는 시험관 시술에서 힘든 부분 중 하나다. 류우종 기자

위치에 따라 분화하는 세포들

보통 하나의 모세포가 분열해 딸세포 2개로 나뉘면, 각각의 딸세포는 이전 모세포보다 크기가 작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보통의 세포들은 일단 모세포처럼 몸집을 불린 뒤에야 다시 세포분열을 시작합니다. 수정란은 이 과정이 생략됩니다. 다시 말해, 한 번 분열해 원래의 절반 크기로 줄어든 상태에서 다시금 분열을 거듭하죠. 당연히 세포 수가 늘어나는 것에 반비례해, 세포 크기는 작아질 수밖에 없지요. 이를 외부에서 관찰하면 마치 수정란(卵)이 잘게 쪼개지는(割) 것처럼 보인다고 ‘난할’이라 하죠.

난할을 거듭해 더는 수정란 내부에 빈자리가 없을 만큼 작은 세포가 빽빽하게 형성되면, 이 모양이 마치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닮았다고 하여 오디배(혹은 상실배(桑實胚))라는 이름을 얻었죠. 이때까지 모두 크기도 모양도 역할도 동일했던 세포들이 ‘세포가 가득 참’을 신호로 가장 바깥쪽에 있던 세포들과 안쪽 세포 덩어리가 나뉘며 수정란 내부에 약간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이를 주머니배(혹은 포배(胞胚))라고 합니다.

바깥쪽 세포는 영양막세포가 되어 장차 모체의 자궁에 달라붙어 태반과 탯줄로 발달하고, 안쪽 세포 덩어리들은 아기 몸을 만들 예정입니다. 포배 이전까지 세포가 모두 동일했다면, 이제부터는 각자 조금씩 다른 세포로 분화될 운명이 주어집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시기 세포들의 운명은 많은 경우, 그들의 ‘위치’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포배기에 표면에 있던 세포는 아기가 아니라, 아기를 지탱하는 일종의 기관이 되어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만 건재하다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그 역할과 존재도 끝납니다. 세포 덩어리를 이뤄 장차 아기로 자라날 세포 역시 잠시 뒤 일어날 배엽 형성 과정에서 어느 배엽에 있느냐에 따라, 가장 바깥쪽 외배엽에 있던 세포는 신경계, 눈, 색소, 피부, 체모, 땀샘, 젖샘으로 분화합니다. 가장 안쪽 내배엽에 있던 세포는 몸 안쪽에 있는 위, 장, 이자, 방광, 기도, 폐로 자라납니다. 이 사이에 있던 중배엽은 이들을 매개하는 뼈, 근육, 결합조직, 심장과 혈관, 비장과 생식계를 형성하지요.

물론 이 과정에서 세포 역할을 조절하는 수많은 세포전사조절인자가 꺼지고 켜지는 일이 일어나지만, 기본적으로 이 스위치를 조절하는 가장 강력한 압력은 바로 이들 세포의 위치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비단 사회적 인간뿐 아니라, 생물학적 인간의 발달 과정에도 맞는 말임이 틀림없습니다.

다행히도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배아의 건강 상태는 매우 좋았습니다. 영양세포막은 균일하게 난막의 가장자리를 둘러쌌고, 안쪽 세포 덩어리도 크고 구성하는 세포들의 크기 역시 일정하고 또렷한 것이 잘 발달해 건강한 세포였습니다. 심지어 한 개의 배아는 이미 부화를 시작해 난막을 뚫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어서 보듬어 품어주기만 하면 튼튼한 아기로 자랄 것을 온몸으로 드러내듯이 말이죠.

‘하급 배아’ 대신 ‘느린배아’는 어떤가

참고로 보조생식술을 시도할 때 배아는 상태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눠, 상급/중급/하급이라고 합니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 표현은 아기를 쇠고기 등급에 비유하는 듯해 맘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배아의 등급을 나누는 이유는, 착상률 차이 때문입니다. 보조생식술의 성공률을 다룬 논문들에 따르면, 상급 배아일수록 착상률이 높음을 일관적으로 보고합니다. 하지만 하급 배아라도, 배아 자체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하급 배아로 판정되면 착상률이 다소 떨어지지만 일단 착상에 성공하고 임신이 시작되면 이후 과정(자연유산 비율, 태아 발달 정도, 기형 발생 등)에선 다른 배아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즉 하급 배아라고 하더라도 초기 발달 정도가 다소 느렸던 것일 뿐, 이상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상급/중급/하급이라는 말 대신, 조기성장배아/일반성장배아/후성장배아 혹은 빠른배아/보통배아/느린배아 등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어떤지 제안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배아들은 가느다란 관을 통해 제 몸속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 몸을 떠난 지 ‘5년 1개월 6일’ 만의 만남이었죠. 이미 월경 시작 다음날부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든 프로기노바를 꾸준히 복용했기에 자궁내막은 충분히 부풀었고, 이제부터는 착상을 돕고 임신을 유지해주는 황체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도 꾸준히 투여받을 것이니, 배아들을 위한 폭신폭신한 보금자리는 만들어질 테고, 이제 남은 과정은 겨우 0.5㎜에 불과한 이 작은 배아들에게 달렸습니다. 힘내렴, 작은 아기야.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