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몸생물학] ‘자궁이식’을 보는 불편함

꼭 배 아파 낳아야 내 아이가 되는 걸까
등록 2020-07-25 12:27 수정 2020-07-31 02:26

두 사람이 만나 해로하는 부부의 연을 맺는 건 자유이지만, 둘이 공식적으로 서로의 배우자로서 상대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지니려면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해야 합니다. 혼인신고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난이 하나 있습니다. 혼인신고서의 ④번 항목은 “성·본의 협의” 여부로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예/아니요’를 고르게 돼 있습니다. 2008년 1월1일 개정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녀에게 부모 양쪽 성 중 하나를 골라 물려주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성을 물려주는 방식이 그리 공평하지는 않습니다. 혼인신고서를 보면, 아버지 성을 물려주는 건 디폴트값인데 어머니 성을 물려주는 건 선택값이며, 심지어 이를 혼인할 때 동시에 신고해야 합니다. 대개 혼인신고를 할 즈음 아직 아기를 가질 생각조차 안 하는 부부가 많을 텐데도, 혼인신고와 동시에 신혼부부에게 이를 결정하라고 강제합니다. 이때 ‘아니요’를 선택한다면, 아이는 자동으로 아버지 성을 따르고 이후 아이 성을 어머니 것으로 물려주려면 재판을 통해 정정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 양쪽 성을 물려줄 가능성을 동일하게 주는 것이라면 아이 성은 아이가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에 선택해야 할 텐데, 바뀐 법률에서도 여전히 같은 ‘성’으로 묶이는 비중은 여전히 아버지 쪽에 더 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씨, 아버지와 아이의 관념적 연결선

지구상에서 모든 인간은 여성의 몸을 빌려 탄생했습니다. 과학 발전이 제아무리 눈부셔도 여전히 아이는 여성만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갓 태어난 아이가 자기 아이임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배 속에서 꾸물거리며 태동하던 것을, 선연한 고통을 감내하고 내 몸에서 내보냈지만, 태어난 이후에도 여전히 탯줄로 내 몸과 연결된 것을 똑똑히 봤으니까요.

남성은 친생자를 판별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남성이 아이에게 유전자 일부를 보태 수정란을 만든 시기와 아이가 태어나는 시기에는 아홉 달 넘는 간극이 있는데다, 수정란 형성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없기에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친생자가 맞는지 확신할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물론 현재는 친자 확인 검사로 간단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아이에게 아버지 성을 물려주는 행위는 이 아이를 자신의 친생자로 받아들여 아버지로서 아이의 생존에 대한 책임을 나눠서 지겠다는 사회적 약속에 대한 증서 같은 것이었습니다. 탯줄이 어머니와 아이를 잇는 물리적인 목숨줄이었다면, 성씨는 아버지와 아이를 묶어주는 관념적인 연결선이었기에, 바뀐 민법에서도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입양한 아이를 뜻하는 말인데, 친생자는 ‘배 아파 낳은 아이’라고 표현합니다. 두 말을 자세히 곱씹어보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아이는 부모 양쪽 유전자가 더해져 만들어지지만, 아이를 배 아파서 낳은 사람은 엄마일 뿐입니다. 게다가 입양한 아이도 어떤 여성의 자궁에서 자라 태어난, 분명 그 여성에겐 배 아파 낳은 아이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생물학적 아빠에겐 가슴으로 낳은 아이이자, 동시에 생물학적 엄마에겐 배 아파 낳은 자식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인식은 ‘엄마 배를 아프게 하고 태어난 자식이야말로 진짜 친자식이다’라는 것에 방점이 콱 찍혀 있는 듯합니다.

이처럼 아이는 여성만이 낳을 수 있지만,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마치 사람은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지만 모든 사람이 세상을 보는 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여성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자궁에 이상이 있거나, 질병 또는 사고로 자궁에 손상을 입어 임신할 수 없는 이가 있습니다. 난소에 문제가 없어 난자를 정상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시험관아기 시술로 수정란은 만들 수 있지만, 자궁이 없다면 수정란을 독자 생존이 가능한 수준까지 키울 수 없습니다. 물론 조산아를 키우는 인큐베이터가 개발됐지만, 인큐베이터는 어디까지나 태아 생존을 돕는 보조 기구일 뿐 자궁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자궁을 이식한 에이나르/릴리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니쉬걸>. 에디 레드메인이 에이나르/릴리를 연기했다. 유니버셜픽쳐스 제공

자궁을 이식한 에이나르/릴리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니쉬걸>. 에디 레드메인이 에이나르/릴리를 연기했다. 유니버셜픽쳐스 제공


자궁 이식 잔혹사

그동안 태아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해서 저체중 조산아의 생존 확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재태 주수 22주 이하 조산아의 생존 확률은 0에 수렴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방법의 하나가 자궁이식이었습니다.

1954년 미국 외과의사 조지프 머리(1919~

2012)는 최초로 일란성쌍둥이 사이의 신장이식에 성공해 생체의 장기를 타인의 것으로 대체하는 일이 가능함을 증명했습니다. 면역억제제가 개발된 1980년대 이후 장기이식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현재는 신장은 물론이고 심장, 간, 폐, 췌장, 소장 골수 등 내부 장기뿐 아니라 각막·피부·인대·판막·혈관·뼈·연골 등의 조직과 드물지만 손발 혹은 사지의 이식도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이론상으로 자궁이 이식 대상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의외로 최초의 자궁이식 시도는 이른 시기에 있었습니다. 최초의 현대적 성전환 수술을 받아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로 알려진 에이나르 베게너 혹은 릴리 엘베는 1930~31년 다섯 번의 수술로 남성 생식기를 제거하고 여성의 난소와 자궁을 이식받는 선구적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는 면역학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시절이라, 의사들이 면역 거부 반응 같은 건 고려하지 못했기에 그는 이식 수술의 후유증으로 얼마 못 가 죽습니다. (에이나르/릴리의 이야기는 영화 <대니쉬 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후 면역학 개념을 고려한 자궁이식은 이로부터 70년이나 지난 200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시도됩니다. 당시 이식된 자궁은 생착하지 못해 결국 다시 제거해야 했기에 임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요. 최초의 자궁이식과 임신 성공은 2011년 터키에서 이뤄졌지만, 안타깝게도 아기는 유산됐습니다. 자궁이식으로 임신하고 출산까지 무사히 이어지는 건 2014년에 들어서입니다. 스웨덴의 예테보리대학 연구진은 2012년부터 총 9명의 여성에게 자궁이식을 시도했고, 그중 한 여성이 임신 31주 만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후 미국·인도·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 2020년까지 총 70여 건의 자궁이식이 시도됐지만, 이 중 출산까지 무사히 이른 것은 10여 건에 불과할 정도로 자궁이식과 그로 인한 출산 성공률은 매우 낮습니다.

유일한 대안? 자궁이식은 불법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자궁이식’이란 키워드를 넣으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뜨는 기사는 한 트랜스젠더 연예인과 연관된 것입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했기에 자궁을 갖지 못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성에게 마치 자궁이식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보도하는 기사들이지요. 하지만 기사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자궁이식은 명백히 불법이며 공식적으로 시도된 적이 없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명기된 이식 가능한 장기의 대상 목록에 자궁은 기재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그 기사들의 행간에서, 아기를 낳는 건 여성만이 지닌 고유의 특징이므로 그것이 결여된 당신은 오롯한 여성이 아니라는 뉘앙스가 읽혀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그의 경우, 난소가 없기 때문에 설사 자궁이식이 성공하더라도 생물학적으로 친자식을 낳을 수도 없고요.

자궁이식은 여러 윤리적 이슈의 중심에 서 있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면역학적 적합성을 고려해 이식하더라도, 이식받은 이는 아주 오랜 기간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며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장기이식은 통과만 하면 되는 결승선이 아니라, 삶이 다할 때까지 조심조심 지나가야 하는 징검다리에 발을 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장기이식은 이 방법 외에 회생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시도하도록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약물 투여 등의 영향도 고려해야

하지만 자궁이식은 생존 여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임신 기간에도 면역억제제 등 각종 약물을 사용해야 하기에 태아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임신 이후 수많은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태아에게 안전하다는 보고는 아직 없으며, 실제로 최초의 자궁이식으로 태어난 아기가 31주 만에 나온 것은 임산부의 심각한 임신중독 때문이었습니다. 임신중독 증상의 원인이 모두 자궁이식 때문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임신 중의 약물 사용은 최대한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니까요. 그런데도 굳이 자궁이식까지 해서 아이를 낳아야만 할까요? 어쩌면 우리는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만이 진짜 내 자식’이라는 고정관념에 짙게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과학이 진짜 관심 가져야 하는 분야는 자궁이식이 아니라, 인공자궁일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칼럼에서 하겠습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