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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아가미’로 물속을 자유롭게

디자이너 연제변씨의 졸업 작품 ‘트라이톤’ 물에서 산소 걸러내 산소 탱크 없이 숨 쉬어
등록 2016-03-31 11:16 수정 2020-05-02 19:28
트라이톤 제공

트라이톤 제공

영화에 관심 없는 이라도 ‘007’ 시리즈는 다 안다. 익숙한 배경음악과 도입부 총열 시퀀스만으로도 ‘007’ 시리즈의 54년은 선명해진다. 볼거리는 또 있다. 매 작품마다 등장하는 첨단 신무기다.

1965년에 개봉한 영화 엔 독특한 첩보 장비가 등장한다. 만년필 크기만 한 초소형 산소통이다. 주인공인 숀 코네리는 무거운 산소통 대신 이걸 입에 물고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친다. 무거운 스쿠버다이빙 장비조차 군대나 극소수 동호인 중심으로 이용되던 시절이었다.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은 그로부터 50년 뒤, 현실이 됐다. 물속에서도 산소통 없이 숨을 쉬게 해주는 초소형 장비가 등장했다. ‘트라이톤’이다. 트라이톤은 스쿠버 마스크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에서 이름을 따왔다.

마스크라고 하지만, 생김새는 작은 부메랑 같다. 길이 29cm, 폭 12cm 크기인 이 물건을 쓰면 무거운 잠수 장비가 필요 없다. 복잡한 장비 사용법을 익히거나 안전 교육을 받을 이유도 없다. 이용자는 그저 트라이톤을 입에 물고 평소대로 숨을 쉬면 된다. 조그만 막대 하나만 입에 물면 사람이 물고기처럼 물속을 자유롭게 숨 쉬며 헤엄칠 수 있다는 뜻이다. 꿈같은 얘기다.

트라이톤은 원래 삼성아트앤디자인인스티튜트(SADI) 출신 디자이너 연제변씨의 졸업 작품이었다. 2013년 콘셉트 제품으로 처음 공개됐다. 당시에도 이 기술의 현실성을 놓고 몇몇 해양 전문 매체와 전문가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오갔다. “그 무렵 콘셉트만 보고 관심을 보인 분과 인연이 닿았어요. 2014년부터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들어가, 이번에 시제품을 공개하게 됐습니다. 공식 법인 설립도 준비 중이고요.” 연씨는 제품 디자인과 메커니즘 설계 쪽을 맡았다.

트라이톤의 고갱이는 물에서 산소를 걸러내는 기술이다. 양쪽으로 뻗은 검정 막대 모양의 장치가 이를 담당한다. 제작사인 트라이톤길스는 이를 ‘인공 아가미’라 부른다. 이 인공 아가미는 ‘미세다공성 중공사’(Microporous Hollow Fiber)로 설계됐다. 이 실의 구멍은 물 분자보다 작아서, 물은 배출하고 산소만 빨아들인다. 본체에 내장된 ‘마이크로 컴프레서’는 유입된 산소를 뽑아내 탱크에 저장한다. 마이크로 컴프레서는 방수 처리된 내장 리튬이온 배터리로 동작한다.

트라이톤은 한 번 충전하면 45분 정도 물속에서 사용할 수 있다. 완충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다. 한계는 있다. 아직은 최대 15피트(4.5m) 이내의 깊이에서만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만약 제한 깊이보다 깊숙이 잠수하면 트라이톤은 불빛과 진동으로 이용자에게 경고를 보낸다. 리튬이온 배터리 전원이 약해져도 진동으로 알려준다.

트라이톤이 물에서 산소만 뽑아내 저장하는 기술을 놓고 지금도 의심과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연제변씨는 직접 시제품을 착용하고 물속을 헤엄치는 동영상도 공개했다. “동영상이 공개된 뒤, 물에서 산소를 뽑아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로 넘어갔어요. 하지만 상세한 기술에 대한 문의는 끊이지 않습니다. 최종 테스트가 끝나고 발표 시점에 맞춰 구체적 기술을 소개할 자리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트라이톤은 현재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인디고고’에서 사전 주문을 받고 있다. 목표 모금액은 5만달러다. 종료를 한 달여 앞둔 지금, 목표치의 5배가 넘는 27만달러가 모였다. 올해 12월께면 사전 주문자에게 첫 ‘인공 아가미’가 배달될 전망이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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