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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과 호날두, 물러설 수 없는 ‘카타르 대전’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한국-포르투갈의 등번호 ‘7번’ 주장 맞대결
등록 2022-11-26 14:32 수정 2022-12-09 09:42
손흥민이 2022년 11월24일(현지시각) 카타르월드컵 1차전에서 우루과이의 페데리코 발베르데 앞에서 슈팅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흥민이 2022년 11월24일(현지시각) 카타르월드컵 1차전에서 우루과이의 페데리코 발베르데 앞에서 슈팅하고 있다. 연합뉴스

삐이익.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이 터벅터벅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손흥민의 발걸음이 유난히 느렸다. 머뭇거리던 손흥민은 뒤에서 다가오는 선수에게 향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먼저 다가가 유니폼을 교환하자고 요청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선수였기에 말을 걸었다. 그가 다가와 손흥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흥민도 호날두의 등을 토닥였다. 둘은 유니폼을 교환했다. 손흥민이 프로 데뷔 이후 두 번째로 호날두와 함께 뛴 경기 전반전을 마친 뒤의 일이다. 2019년 7월21일 싱가포르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9 인터내셔널챔피언스컵’ 1차전 잉글랜드 토트넘 대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경기였다.

손흥민은 그간 인터뷰나 자서전에서 항상 호날두를 자신의 우상이라고 언급했다. 손흥민과 호날두의 첫 맞대결은 2017년이었다. 그해 10월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원정경기에 나섰다. 당시 손흥민은 선발로 나서지 못했다. 호날두의 골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후반 정규시간이 1분 남았을 무렵, 손흥민이 교체 투입됐다. 점수 1 대 1의 팽팽한 상황이었다. 호날두와 처음 함께 뛴다는 기쁨을 만끽하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두 선수가 함께 경기장에 있던 시간은 4분가량.

국가대표 유니폼 입고 첫 대결

2017년의 호날두는 세계 최고 선수였다. 당시 그의 가치는 1억유로. 당시 손흥민(3천만유로)의 3배가 넘었다. 손흥민이 자신의 우상을 처음 경기장에서 마주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이들은 다시 만났다. 2017년 이후 프로 무대에선 종종 만났지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맞대결을 펼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카타르월드컵 개막에 앞서 등번호 ‘7번’을 달고 월드컵을 빛낸 전·현직 선수 10명을 소개했다. 이번 월드컵 본선에 ‘7번’을 달고 참가하는 현역 선수는 4명이 포함됐다. 이 중 손흥민과 호날두가 있다. 한국과 포르투갈의 ‘7번’이자 양 팀의 주장이 2022년 12월3일(한국시각) 0시 카타르 도하에서 맞붙는다. 월드컵 H조 마지막 경기다.

축구에서 등번호 7번은 10번과 함께 그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다. 영국의 데이비드 베컴,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스페인의 다비드 비야 등 한 시대를 주름잡은 선수들이 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라를 대표해 뛰었다.

손흥민과 호날두에게도 등번호 7번은 의미가 깊다. 손흥민이 등번호 7번과 인연을 맺은 건 2013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레버쿠젠으로 이적하면서였다. 프로 데뷔 이후 처음 7번을 부여받은 손흥민은 레버쿠젠에서 87경기를 뛰며 29골을 넣었다. 2015년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지만 등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한국 국가대표팀에선 2010년 데뷔 이후 한동안 11번과 9번을 번갈아 사용했다. 7번은 2015년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안컵부터 달았다. 국가대표 7번은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이 2006년과 2010년 월드컵에서 달고 뛰었던 번호다. 이를 김보경(전북 현대)이 잠시 이어받았다가 손흥민까지 이어졌다.

호날두도 등번호 7번을 달기 시작한 이후부터 프로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기록을 쌓았다. 그는 포르투갈의 명문 클럽 스포르팅 CP에서 뛸 때까지만 해도 28번을 달았다. 7번과의 인연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시작됐다. 맨유 이적이 결정된 뒤 호날두는 자신이 사용하던 28번을 요청했지만, 앨릭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호날두에게 다른 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건넸다. 조지 베스트와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등 맨유의 ‘레전드’들이 거쳐간 등번호 7번이었다. 호날두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 번호의 값어치를 했으면 좋겠어요.”(<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승리를 부르는 자>)

호날두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맨유에서 7번을 달고 346경기에 나가 145골을 넣었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에도 여전히 7번을 달았다. 438경기에 나가 450골을 넣었다. 이후 유벤투스를 거쳐 다시 맨유로 올 때까지도 호날두의 등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선 ‘포르투갈 축구 영웅’ 루이스 피구가 은퇴한 뒤 7번을 물려받아 아직 쓰고 있다.

손흥민과 호날두의 축구 스타일은 비슷하다. 두 선수 모두 왼쪽 측면 공격수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드리블 능력이 이들의 첫 번째 무기다. 양발을 이용한 슈팅 능력도 두 선수 모두 세계 최정상급이다. ‘무회전 슛’의 대명사가 된 호날두의 슈팅이 직선적이라면 손흥민의 슈팅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 곡선 형태다. 골문 앞에서 집중력과 결정력도 높다.

승부욕과 눈물로 이뤄낸 등번호 7번

두 선수 모두 승부욕이 강하다. 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손흥민은 자서전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에서 “내가 뛰는 팀이 지는 꼴을 못 본다”며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경기에서 지면 울음을 참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실제 이런 성향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2011년 첫 메이저 대회인 AFC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일본에 졌을 때, 2014년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알제리에 4 대 2로 패했을 때 손흥민은 서럽게 울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땐 독일전에 승리한 이후에도 눈물을 보였다.

호날두의 유년 시절 별명은 ‘울보’였다. 그도 지는 것을 싫어했다. 질 때마다 눈물을 참지 못했다. 안도리냐의 유소년팀 시절엔 경기하다가 상대편에 득점을 허용하자 분해 경기장에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는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후에도 눈물을 자주 보였다.

차이점도 있다. 호날두는 어려서부터 독단적인 플레이를 자주 보였다. CD 나시오날 시절 첫 연습경기에서 호날두는 15초 만에 골을 넣었지만 코치로부터 “공을 패스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호날두는 실력이 좋지 않은 동료라면 패스하지 않는 것이 팀을 위하는 길이고 이기는 길이라 생각했다.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후에도 호날두는 유독 욕심부리는 장면을 자주 보였다. 동료가 골문 앞에서 패스하지 않으면 심하게 화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자주 포착됐다. 더 좋은 자리에 있는 동료를 보고도 패스하지 않고 슈팅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독의 결정에 불만을 품거나 동료들과 싸우는 일도 종종 목격됐다.

중학생 시절까지도 아버지에게 훈련받았던 손흥민은 동료들과 함께 뛰는 것 자체가 좋았다. 처음 축구부에 합류한 이후 숙소생활도 잘 적응했고, 독일 유학 시절엔 팀에 녹아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독일어를 배웠다. 구단에서 사흘만 가도 좋다는 학교에 매일 가겠다고 우겼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팀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영국 토트넘으로 이적한 뒤에도 손흥민은 팀 동료뿐 아니라 다른 팀 선수·감독들과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 ‘핵인싸’(무리에 잘 어울리는 사람)라는 별명을 얻었다.

5년 만에 시장가치 역전

손흥민과 호날두가 처음 만난 2017년에 견줘, 2022년 이들의 시장가치도 뒤집혔다. 독일의 축구 이적 정보 누리집 <트랜스퍼마르크트>는 2022년 호날두의 가치를 2천만유로, 손흥민의 가치를 7천만유로로 평가했다. 5년 전 호날두가 3배 가까이 높았지만, 이젠 반대로 손흥민이 3배 이상 높아진 셈이다.

물론 쌓아온 기록만 보면 둘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호날두는 축구선수에게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꼽히는 ‘발롱도르’만 다섯 차례 받았고 축구 역사상 최다 골을 기록 중이다. 2022년 만 37살인 그는 여전히 경기장에서 날카로운 슈팅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여준다. 그러나 축구선수로서는 정점을 지났다. 지난 시즌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18골을 기록했지만 2022년 시즌엔 1골에 그쳤다. 심지어 소속팀과 마찰을 빚어 월드컵 중에 맨유와 결별했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 23골을 넣어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커리어 정점을 찍었다. 2022년 시즌엔 리그에서 3골 2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9월 해트트릭을 기록한 이후 두 달 동안 리그에서 골을 넣지 못했다. 월드컵 직전 안와골절 부상을 입은 것도 변수다.

두 선수 모두 자신의 장점을 대표팀에서 얼마나 보여줄 지가 관건이다. 손흥민은 그간 대표팀에서 장점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 포메이션은 소속팀에서처럼 측면이나 최전방 공격수를 맡지만, 때로는 후방에 처져서 공을 전달했다. 포메이션이 정해지지 않은 ‘프리롤’ 같은 역할이다.

6월 이집트와의 평가전 때 손흥민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당시 손흥민은 최종 수비라인 바로 앞까지 내려와 반대편 전방으로 향하는 김진수(전북 현대)를 향해 긴 패스를 보냈다. 이 패스 한 방이 골로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손흥민의 가장 큰 장점은 스피드와 슈팅이다.

“스타 선수가 팀 승리 보장하지 않는다”

손흥민의 활용법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몫이다. 한국 대표팀 벤투 감독은 2010~2014년 포르투갈 대표팀을 맡으며 호날두를 잘 활용한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은 ‘유로 2012’(유럽축구 국가대항전)에서 4강에 올라 스페인을 상대로 승부차기 접전 끝에 졌다. 당시 스페인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사비 알론소, 세르히오 라모스 등 이른바 황금세대가 포진한 팀으로, 2010년 남아공월드컵 우승컵도 가져갔다. 당시 벤투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호날두 같은 걸출한 스타플레이어의 존재는 팀에 중요하지만 호날두가 팀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한 명의 활약보다 팀 전체의 분전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 대표팀은 H조 첫 번째 경기인 우루과이전에서 경기 내내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0 대 0으로 비겼다. 전반전부터 경기를 잘 풀어가며 우루과이를 압박했지만 결정적인 기회가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온 손흥민은 부상을 의식한 듯 조심스럽게 경기를 뛰었다. 전반전 우루과이 수비 두 명을 연달아 제친 모습이나, 후반전 상대 골키퍼의 실책을 틈타 슈팅까지 이어갈 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의 면모를 보였다. 

다만 우루과이전에 이어 가나와의 2차전에서도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나온 손흥민은 2-3 패배를 막지 못했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유효슈팅은 나오지 않았다. 손흥민은 가나전 종료 이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아쉽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개인적으로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팀을 잘 이끌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특히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다행히 포르투갈이 우루과이와의 2차전도 2-0으로 승리하며 한국의 16강 진출의 희망은 희미하게 남아있는 상태다. 3차전 포르투갈 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한국과 포르투갈은 역대 단 한 차례 맞붙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유일한 맞대결이었다. 당시 한국은 포르투갈을 1 대 0으로 이기고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선수가 벤투 감독이다. 벤투 감독은 이 패배를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떠났다. 그리고 20년 뒤, 한국의 지휘봉을 잡고 조국을 상대한다.

손흥민과 호날두. 누가 마지막에 웃게 될까.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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