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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준다

치매 환자가 직접 쓴 치매 적응기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등록 2022-10-01 02:59 수정 2022-10-03 00:17

치매가 찾아오면 삶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치매 환자인 웬디 미첼에 따르면 기억력뿐만 아니라 환자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 의사소통 방식이 모조리 바뀐다.

그릇과 음식을 구별할 수 없어 “갑자기 음식이 내게서 달아나는” 느낌이 들고, 불타는 냄새가 불현듯 느껴져 온 집 안을 샅샅이 뒤지기도 한다. 화내려 해도 감정이 “강철 상자에 갇힌 것처럼” 꽉 막혀버리거나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친했던 이들과 멀어지기도 한다.

치매가 뒤바꾼 일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가족이나 의료인이 아닌,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책이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웬디 미첼·아나 와튼 지음, 조진경 옮김, 문예춘추사 펴냄)이다. 웬디 미첼은 2014년 58살의 젊은 나이에 조기 발병 치매 진단을 받은 뒤 7년째 간병인 없이 홀로 생활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의 ‘치매 적응기’인 셈이다.

미첼은 치매에 맞춰 자신의 생활 방식을 다시 조립한다. 음식을 집기 쉽도록 식기를 큰 대접으로 바꾸고 전문가를 찾아가 맞춤형 보청기를 산다. 자신이 기억하는 정보를 한데 모아 ‘추억의 방’을 만들고 동료 치매 환자 모임에 나가 서로의 증상을 공유한다. 자녀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되 ‘자녀와 부모의 위치를 성급히 뒤바꾸지 않기’로 합의한다. 이 모든 상황에서 미첼은 “치매는 나라는 한 사람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한다.

가끔 치매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주기도 한다. 치매 증상 가운데 하나인 환시(시각적 환각)를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본 것이다. 미첼은 평소 훈련했던 ‘30분 규칙’(환시인지 확인하기 위해 30분 뒤 자리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을 지키는 대신,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서 아버지를 바라본다.

“우리(치매 환자 모임)는 치매의 진행 추이를 ‘치매가 있어도 좋은 삶’이라고 불렀다. …사무실에 앉아 내일이 주말이면 좋겠다며 미래를 위해 찾았던 행복은 분명 변했다. 이제 나한테는 행복이 (매일의) 작은 꾸러미로 온다.”

처음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와 가족들은 방대한 정보를 혼자서 찾고 습득해야 한다. 미첼은 그런 이들을 “부드럽게 감싸안고 유용한 정보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 바람만큼 많은 경험과 지식이 책에 담겨 있다. 치매 가운데서 자신을 꼿꼿이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의 응원은 덤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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