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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학자가 함께 앉은 희비극의 극장

가슴 묵지근한 독립운동사, <독립운동 열전> 두 권 펴낸 임경석 교수

제1430호
등록 : 2022-09-18 22:35 수정 : 2022-09-1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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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석 교수의 연구실은 온갖 자료로 가득하다. 앞으로 그가 ‘역사극장’에서 들려줄 이야기는 서가에 빼곡하게 꽂힌 자료만큼이나 많이 남아 있다. 2023년 정년을 맞는 임경석은 퇴임 뒤에도 ‘역사극장’을 계속 연재하는 한편,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의 뒤를 이어 ‘한국 사회주의 4부작’을 완성하고 싶다고 했다. 김진수 선임기자

김사민은 자유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한 혐의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정신이상자가 됐다. 그의 형 김사국은 같은 사건에 연루돼 외국으로 망명했다가 병을 얻어 요절했다. 김상옥은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에 연루돼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 피살됐다. 김한은 김상옥에게 폭탄을 넘겨주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됐으나 동지를 지키려 홀로 책임을 뒤집어썼다. 출옥 뒤에는 소련에서 활동하다 일본 밀정이란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다.

애달프고 애틋한 역사극장이 3주마다 한 차례씩 <한겨레21>에서 공연된다. 2017년 5월 연재를 시작해 5년이 훌쩍 넘게 실리는 ‘임경석의 역사극장’은 현재 <한겨레21>의 최장기 칼럼이다. 이 글들이 묶여 최근 두 권짜리 <독립운동 열전>(푸른역사)으로 나왔다. 임경석(64) 성균관대 교수를 2022년 9월8일 성균관대 인문대학장실에서 만났다.

최근 나온 책 <독립운동 열전>.

큰 비극과 큰 희극
서두에 열거한 인물들은 모두 3·1운동의 세례를 받고 운동에 투신한 사회주의혁명가였다. <독립운동 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 거개가 그렇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젊은 역사학도 사이에서 사회주의운동사 연구란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다. 임경석 교수가 박사학위를 받을 즈음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했다. 아직도 사회주의운동사를 공부하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 모스크바로 건너가 코민테른 문서고를 뒤지며 잊힌 혁명가들을 발굴해냈다.

<사회주의운동 열전>이 아닌 <독립운동 열전>으로 제목을 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독립운동에서 사회주의를 배제해오다보니 시민사회 내에 둘은 별개인 양 생각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게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독립운동의 실제 진행 과정을 보면 특정한 시기 이후에는 사회주의가 큰 비중을 점하거든요. 특히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이후에는 사회주의자가 독립운동에 대거 참여하죠. 국내 비밀결사에 기반해 이뤄지는 항일운동 대다수는 사회주의운동에서 지도될 정도였습니다. 그런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독립운동과 사회주의는 별개의, 나란히 있는 실체가 아니라 같은 것이죠.”

박사논문을 수정·보완한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에서 한국 사회주의운동사를 공부하는 이유로 ‘비극성’을 꼽으셨는데요.

“큰 비극, 큰 희극을 쓰고 싶다고 상당히 오랫동안 생각했는데요. 비극이란 고귀한 사람의 파멸을 그리는 거거든요. 이때 고귀하다는 건 사람됨과 삶이 공동체의 평균적인 도덕률보다 높다는 말입니다. 비극에서 왜 고귀한 사람이 희생되는가. 자기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본성이 객관적인 질서라는 신의 의지와 끊임없는 모순관계에 있기 때문이죠. 신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투쟁하면 필연적으로 누가 이기겠어요, 신이 이기지. 이 패배한, 실패한 인간이 고통을 겪으면서도 해방을 위한 자기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 점을 형상화하는 것이 가장 잘된 비극이래요. 이런 비극적 서사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의 역사를 그리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희극적 서사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희극적 서사는 거꾸로죠. 주인공이 도덕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람인데, 물불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다보니 세속적 의미에서 부유하거나 권력을 가진 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때문에 희극적 서사는 한 사회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역사를 그리는 데 좋죠. 그런데 지배계급을 공격하면, 자기가 투쟁에 노출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배계급과 투쟁할 때는 풍자(諷刺), 정면에서 찌르는 게 아니라 빗대서 찌르는 겁니다. 지배계급과 투쟁할 때의 무기는 풍자와 해학, 코미디라는 양식적 특성을 가지게 되죠. 자기를 소진하지 않게, 파멸시키지 않은 채 맞서 싸우기 위한 서사 양식이 희극이거든요.”

비극적 서사와 인간 군상 사이에서
희극과 비극이 상연되는 곳이 극장이다. ‘임경석의 역사극장’에는 저자의 말대로 “비극은 넘치는데, 희극은 좀 적”다.​ 희극과 비극의 양 갈래로만 흐르지 않은 역사 속에서 몇 이야기는 가슴이 묵지근하고 쓴웃음이 난다. 1920년 1월4일 북간도의 조선인 비밀결사인 철혈광복단이 길회선 철도 부설자금 15만원을 탈취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려 했으나, 누군가의 밀고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고 만다. 밀고자는 연해주 항일무장투쟁의 지도자였던 엄인섭. 안중근과 의형제를 맺었고, 홍범도와 동렬에 놓이던 인물이었다. 15만원 사건의 주역들은 서른 고개를 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으나, 엄인섭은 52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독립운동 열전> 주인공만 79명에 이른다. 혁명가들만이 아니다. 귀순 공작에 저항하다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숨진 홍범도의 아내 이씨 부인, 여성 독립운동가 김명시를 일본 형사에게 팔아넘긴 조선 사회주의운동 제1세대 독고전, 여관업자 출신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통역관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한인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인 비밀경찰 기토 가쓰미도 이 책의 주인공이다.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 이들을 배신한 밀고자, 심지어 일본 비밀경찰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인간 군상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계기가 하나 있어요. 어느 학술회의 자리에서 제가 발표를 하나 하고 났더니, 청중 질문이 나오는데 과거에 운동에 참여했던 노인이었어요. 자기가 경험하거나 듣기로는 사회주의운동이나 독립운동은 대단히 긴장된 조건 속에서, 그러니까 혁명과 반혁명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전개되는데 임 선생의 발표는 혁명에 참여한 사람의 언행만 부조적(浮彫的)으로 표현하니까 그 긴장감이 잘 안 보인다, 그럽디다. 그 말에 크게 깨닫고, 그때부터 인간 군상에 대한, 하나의 조성된 역사적 정세 속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이 당대 사회를 종합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시사를 줄 수 있는 역사겠다, 생각했죠.”

이후 연구도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혁명만이 아니라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그 중간쯤에 있는 여러 층의 사람들에게도 관심 갖게 됐어요. 그 이전에는 사료가 대단히 적었어요. 그런데 착상을 전환하니까 참고할 사료가 너~무 많은 거예요.(웃음) 모~든 텍스트가 다 사료가 되더라고요. 완전히 신천지를 경험했습니다.”

새로운 경험이 가져온 갈등은 없었나요.

“내 삶 속에서 이 두 가지, 그러니까 비극적 서사에 기초해서 시계열적 역사를 써야겠다는 연구 계획과 어느 한 시기의 인간 군상을 드러내는 연구 아이디어가 충돌하더라고요. 사회주의 역사와 관련해 자료를 획득해서 분석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봐야 할 그 밖의 것이 또 너무 많이 있는 거예요. 사회주의가 아닌, 3·1운동이라는 거대한 혁명적 시기의 인간 군상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와 관계가 있습니다.”

임경석 교수가 글을 쓸 때 가장 중시하는 건 단정한 문장도, 흥미로운 플롯도 아닌 ‘사료’다. 어떻게 주간지에 이리 단단한 글을 쓸 수 있냐는 질문에 그는 “그래도 역사가라면 사료에 기반해 이야기해야죠. 그게 우리 자존심인데”라며 웃었다. 김진수 선임기자

중독성 있는 대중적 문체와 플롯의 훈련
임경석의 글쓰기는 독특하다.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의 말마따나 ‘임경석체’라 불릴 만한 중독성 있는 대중적 문체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 칼럼은 대중지답지 않은 묵직한 분량에 각주까지 달리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날이면 금세 여기저기 공유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글쟁이로 유명한 역사가는 많지만, 선생님처럼 학술논문까지 흥미진진하게 쓰시는 분은 드문 듯합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어요. 1993년 박사논문과 2003년에 낸 첫 책 사이, 내 문장을 개조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비문 쓰지 말자. 그리고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장문이 아니라 단문 위주로 쓰자. 그 와중에 <극동민족대회 연구>를 완성했어요. 그걸 써서 아내에게 ‘좀 봐줘’ 그랬더니, 짧게 쓴 건 좋은데 너무 숨이 막힌대. 그냥 짧게만 끊어놨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게 없대요.(웃음) 그래서 다시 한번 궤도 수정을 했죠. 단문 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리듬이 있어야 하구나, 읽는 리듬. 단문을 위주로 하되 필요할 때 장문도 섞는 방식으로 문장을 개조했죠.”

문장뿐 아니라 서술 방식도 독특한데요.

“그때 같이 생각했던 게 역사 서술에도 플롯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역사학이 학계 내부의 전문가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친구들 중 ‘극장’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전문가용 극장, 대중용 극장. 전문가를 위한 작품과 그걸 대중용으로 쉽게 쓰는 것 두 가지로 나눴는데 제가 거기에 반대했습니다. 앞에는 전문가들이 앉고 뒤에는 시민들이 앉는 ‘단일한 극장론’을 폈죠. 이 극장에 작품을 올리기 위해서는 역사의 서사적 본질을 회복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학이 원래 이야기에서 출발했으니까요. 그렇게 역사 글쓰기에 플롯을 도입하자, 이런 결심을 했죠.”

다양한 플롯이 역사극장에서 실험된다. 경찰에 체포된 사회주의자들 논문인 ‘두 밀사’는 경찰 자료와 내부 보고서가 교차된다. 논문 ‘이정 박헌영 일대기’에서는 도입부에 박헌영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삽입했다. 논문 ‘잊혀진 혁명가, 윤자영’에서는 임경석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1인칭 시점의 역사 서술도 시도했다.

공공선을 위한 역사학
임경석은 이른바 ‘58년 개띠’, 유신 세대다. 비슷한 또래의 역사학자들은 근대화나 혁명을 위해 공부한다고 했다. 그 무거움이 어깨를 눌렀다. 임경석은 그냥 역사 공부가 너무나 하고 싶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정책실에서 활동하며 기관지 <민주화의 길> 편집에 참여했음에도 그는 자신이 좋아서 한 공부가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은 여전하지만 임경석은 자신이 기여한 역사상(象)이 공동체에 진보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확신이 있다.

“이건 인문학 공동의 사회적인 소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사상은 과거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잖아요. 결국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봐야 할 것 같아요. 공동체 규모가 커지면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이 생기잖아요. 이를 구성하는 핵심이 도덕과 역사인 것 같아요. 무엇이 옳고 그른가, 우리가 누구냐,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견해들이죠. 그런 견해를 만들어내고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집단적 정체성의 도덕적 수준이랄까요, 이것을 높은 수준으로 고양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찬근 대학원생(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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