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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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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연대 꿈꾸는 86세대의 자기성찰

교수직 내던진 사회학자 조형근의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등록 2022-08-27 07:04 수정 2022-08-29 00:15

“1년 남짓한 정규직 교수 노릇을 그만두었다. 지금 대학은 누구나 가는 곳이 된 대신 공고한 서열과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으로 민중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다. 엘리트주의적 상아탑 모델이 답은 아니다. 나는 떠나는 쪽을 선택했다.”

2019년 11월 조형근 전 한림대 교수가 <한겨레>에 쓴 칼럼 ‘대학을 떠나며’는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글에서 “서민 주제에 정년 보장과 사학연금을 마다하고 백수가 된다니 (주위에서) 말리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다시 대학에 적을 두는 일은 없기를 꿈꾼다”고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조형근은 대학으로 돌아갔을까? 그는 경기도 파주 교하 협동조합 서점과 지역연구소 ‘소셜랩 접경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집필과 강연에 전념하며 ‘동네 사회학자’로 활동하는 길을 선택했다. 최근 그가 대학의 위기, 더 나은 민주주의 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창비 펴냄)를 펴냈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오랫동안 대학에 몸담았던 지식인으로서 대학과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다. 오늘의 청년세대와 지난날의 청년세대에 대한 고민, 그들 사이의 불화에 대한 생각도 담겼다. 기득권이 된 86세대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도 물었다. 또한 ‘보수화된 20대 남성’이나 86세대로 묶일 수 없는 그 세대의 다양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2부에서는 민주주의를 갱신하기 위한 고민을 말한다. 세월호 사건의 사회적 의미, 주거 빈민의 삶에 대한 고민, 촛불행동의 희망과 공정한 경쟁을 향한 욕망에 깃든 중산층 민주주의에 대한 자기반성이 담겼다.

3부에서는 이런 고민의 답을 찾아본다. 다시 유토피아의 희망을 생각하고, 행복경제학이라는 대안과 그 한계를 따져봤다. ‘사회적인 것’에 대한 상상력이 왜 문제인지, 이 모든 고민의 대상이자 주체인 민중과 소수자는 어떻게 만나야 할지도 고민했다.

조형근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불평등의 구조와 가난의 대물림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하며, ‘선을 지키는’ 중산층 민주주의에 만족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민주주의가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몫 없는 자들의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주목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형근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내가 힘을 얻으면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겠다며 다짐한 이들이 있다. 나도 결국 그 부류에 속한다. 그들이 세상을 조금 좋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불평등한 세상의 윗자리를 차지한 채로. 냉소하려는 게 아니다. 그 모순과 긴장을 감당하고, 할 일을 찾는 것이 책임지는 길이다.” 그의 말대로 ‘책임지는 길’을 찾기 위해 글을 쓴 듯하다. 86세대, 진보, 남성, 엘리트, 지식인인 자신을 먼저 성찰하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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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

폴 김·김인종 지음, 마름모 펴냄, 1만8천원

조현병 환자인 여동생을 암으로 떠나보낸 저자가 25년간 정신질환자 가족을 돌보며 겪은 이야기다. 조현병·조울증·우울증·자기애성 인격장애 등 감춰져 있던 다양한 정신질환을 세상에 드러내며 우리 사회가 ‘이 거대한 정신질환의 병동’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나갈지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재수사 1·2

장강명 지음, 은행나무 펴냄, 1만6천원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형사가 22년 전 일어난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소설이다. 이 책이 정조준하는 것은 한국의 형사사법시스템과 그것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윤리의식이다. 어떤 윤리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어떤 정의가 어떤 방식으로 집행돼야 하는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모두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다

함광성 지음, 웨일북 펴냄, 1만6천 원

습관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다가 정작 나를 배려하는 방법을 잊은 이들이 균형 있게 관계를 맺도록 돕는 안내서다. 심리상담 전문가인 저자는 과도하게 남을 배려하고 작은 일에도 자신을 탓하는 ‘죄인 모드’에서 벗어나려면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여성, 인종, 계급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arte 펴냄, 3만2천원

미국 흑인·여성 운동의 지도자 앤절라 데이비스의 대표작이다. 개인의 정체성은 다양한 사회적 측면이 중첩되고 상호작용해 규정된다는 ‘상호교차성’ 개념을 다룬 초기 교차 페미니즘 저작이자, 흑인·여성 운동 모두에서 소외된 흑인 여성의 경험을 조명한 블랙 페미니즘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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