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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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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2시간 22분 내가 본 것은 무엇, 여긴 어디?

고려 도사와 외계 로봇의 한판 그린 영화 <외계+인> 1부
한계 초월한 CG·특수효과, 이야기도 한계를 넘어버렸네
등록 2022-07-23 12:50 수정 2022-07-25 02:18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의 최동훈 감독이 7년 만에 <외계+인> 1부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CJ ENM 제공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의 최동훈 감독이 7년 만에 <외계+인> 1부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CJ ENM 제공

영화 <외계+인> 1부를 본 뒤, 극장을 나서며 영화 내용을 복기하는 데 얼마간 어려움을 겪었다. 화면을 가로지르던 시각적 이미지를 관람할 때는 딱히 그렇게 느끼지 않았으니 이상한 일이다. 등장인물이 많아서일까. 무려 630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오가는 설정 때문일까. 온갖 장르가 한데 뒤섞여서일까. 아니면 아직 이야기의 절반만 본 상태이기 때문일까(<외계+인> 2부는 2023년 공개 예정이다).

이야기에 복잡하거나 모호한 구석이 있는 것도, 구조에 난해한 굴곡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서사의 인과로 영화의 흐름을 다시 짚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142분 동안 화면에 정신없이 몰아친 무언가를 분명 봤는데, 그것이 무엇이라고 정작 말할 수 없는 상황의 난감함이랄까.

신검을 찾으려는 고려 도사 무륵(류준열), 인간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 로봇 가드(김우빈), 총을 쏘는 이안(김태리)이 다른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여기저기 출몰한다. CJ ENM 제공

신검을 찾으려는 고려 도사 무륵(류준열), 인간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 로봇 가드(김우빈), 총을 쏘는 이안(김태리)이 다른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여기저기 출몰한다. CJ ENM 제공

142분 동안 뭔가를 분명히 봤는데

우주에서 시작해 고려 말로, 630여 년을 건너뛰어 현재로, 다시 1391년으로 이동하는 초반부 설정의 무모함은 일단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도입부에서 이미 <외계+인>은 이질적인 장르의 표지들을 태연하게 뒤섞으며 자신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선언한다. 하늘을 찢고 1380년 어느 밤으로 들어온 최신식 자동차, 차 안에서 내린 인간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 로봇 가드(김우빈), 그의 파트너인 말하는 프로그램 썬더(김대명), 인간의 뇌에서 탈옥한 외계인 죄수, 공중에 붕 뜬 고려시대 어느 여인의 몸, 이 지옥에서도 살아남아 우는 아기의 얼굴.

영화는 이들의 육체성을 한 대목에 공존시키기 위해 설명의 단계를 밟는 대신, 간단한 전제 하나를 내세운다. 일찍이 외계인의 세계는 죄수를 지구로 호송해 인간의 뇌에 감금해왔고, 가드와 썬더는 시공간을 불문하고 죄수의 탈옥을 해결하는 관리자로 일해왔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조금씩 본 듯한 상황과 이미지이긴 하지만, 이 대목의 혼종성을 낱낱이 설득하기보다 화려한 이미지로 날렵하게 추동하는 방식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오히려 시선을 붙든다.

인간의 아기를 데리고 현재로 돌아온 영화가 다시 1391년으로 건너가 이번에는 가드와 썬더 없이, 고려 말 도사들의 활약을 펼쳐 보일 때까지만 해도 이 세계가 어디로 향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소문만 무성한 신비로운 능력이 잠재된 칼 ‘신검’을 찾으려는 사람 중에는 경망스러운 젊은 도사 무륵(류준열)이 있다. 그가 바람을 가로질러 허풍스러운 묘기를 자랑하면서 휘두르는 부채에서는 고양이들이 튀어나와 사람으로 변한다. 신검을 쟁탈하려는 소란에 검은 양복을 입은 괴력의 낯선 사내도 동참한다. 나중에 등장해 신검을 쫓는 이안(김태리)은 화살로 공격하는 이들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총으로 반격한다. 가면 아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자장법사(김의성) 또한 신검을 차지하려 간교한 술수를 부린다.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형상과 사물, 전사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신검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출몰한다.

자극적으로 황당무계한 액션과 광범위하게 펼쳐진 잡종의 면모는 어떤 상상력으로 서사적 연속성을 획득할 것인가. 630여 년이라는 시간적 거리를 어떻게 조율해서 두 시간대를 만나게 할 것인가. 외계인 로봇과 에일리언, 고려시대 도사와 현대 인간을 어떻게 한데 엮을 것인가. <빽 투 더 퓨쳐> <기묘한 이야기> <에이리언> <어벤져스> <트랜스포머> <아이언맨> <전우치> 등을 떠올리게 하는 잡다한 장르적 요소로 거대한 야심을 부리는 <외계+인>에 대단한 창의성을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영화가 ‘잡다한 장르적 요소들’이 호기롭게 뛰어놀 서사적 뼈대를 구축하는 방식, 이들에게서 연결점을 찾아 이야기로 잇는 전략에는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도입부 이후 전개는 <외계+인>이 그 방식과 전략을 구축하는 일에 무심하다는 사실을 거듭 일깨우는 데 할애된다.

갈등, 대립, 추격, 충돌을 동력으로 삼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그 움직임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다. 도사들이 부리는 온갖 도술과 잡기는 단지 영화 내 캐릭터의 활동만이 아니라, 이 영화의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최소의 서사적 절차 없이,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시각적 이미지는 날쌔게 이동하며 범람하다가도 한순간 멈추거나 사라지고 끊임없이 다른 형태로 변환한다.

인간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 로봇 가드(김우빈). CJ ENM 제공

인간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 로봇 가드(김우빈). CJ ENM 제공

다짜고짜 몇백 년을 오가는 이야기

이를 이야기 맥락 안에서 이해시키려는 의지는 여기 보이지 않는다. 대결의 순간 다짜고짜 상대의 행동을 얼어붙게 하는 부적, 신체 일부를 단숨에 크게 확대해 상대를 제압해버리는 거울, 절름발이도 일어나게 한다는 신검, 적들을 손바닥 하나로 해치우는 장풍, 동물과 인간을 오가는 변신술, 마음만 먹으면 ‘나’를 무한대로 복제하는 분신술, 몇백 년의 시간 차이를 지워버리는 비행술.

형체와 상태의 급격한 전환과 이행을 별다른 계기 없이 단번에 일으킨다는 점에서, 눈을 홀리는 속도로 이야기가 머물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 속 고려시대의 도술과 근미래의 최첨단 인공지능은 통한다. 그 힘을 이 영화는 탐한다. 어쩌면 이것은 <외계+인>이 무리를 무릅쓰고라도 이야기의 필연적인 접합 지대 없이 완전히 다른 두 세계 혹은 시간을 한 편의 영화 안에 불러들인 이유인지 모른다. 종의 차이도, 시간의 경계도, 이야기가 거주하는 시공간의 제약도 그냥 뛰어넘어버리는 술수는 이 영화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무리 온갖 장르와 캐릭터가 버무려져 있다고 해도, <외계+인>은 엄밀히 말해 그런 술수로 과시하는 자기 동일적인 세계다.

그 술수의 다른 이름은 당연하게도 컴퓨터그래픽과 시각특수효과일 것이다. 최동훈 감독이 자부심을 내비치며 공공연히 밝히듯, 이 영화의 장면 대부분은 컴퓨터그래픽의 도움 없이는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 고려시대의 도술 장면만이 아니라, 2022년 가드와 썬더를 둘러싼 장면은 컴퓨터그래픽의 세계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컴퓨터그래픽의 세계에 살짝 삽입된 사람 장면, 요컨대 아이와 친구가 어울리거나 가드가 아이의 학교에 불려가거나 친구의 이모가 가드에게 관심을 표하거나 썬더가 아이에게 감정 운운하는 장면처럼 아날로그적으로 ‘사람’ 냄새를 풍기려는 일상적인 대목은 시대에 동떨어진 듯 어딘지 둔탁하고 촌스럽게 느껴진다.

총을 쏘는 이안(김태리). CJ ENM 제공

총을 쏘는 이안(김태리). CJ ENM 제공

노련하게 활보하는 컴퓨터그래픽

출연 배우들이 인물들의 요란한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신체를 단련해왔다고 해도 이 영화에서 인간의 육체성은 컴퓨터그래픽 없이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를 사뭇 섬뜩하게 적시하는 장면이 있다. 외계인 죄수가 인간 뇌에서 빠져나오자, 인간의 몸이 허공에 붕 뜬다. 인간의 육체를 공중에 포박한 뒤, 컴퓨터그래픽이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힘을 제거당한 채, 무력하게 부유하는 인간 배우의 육체적 형상과 도심을 노련하게 활보하는 외계인 컴퓨터그래픽 이미지의 대비는 이 영화가 욕망하는 방향을 지시하는 것 같다.

그 욕망의 끝에 영화를 본 이들이 <외계+인> 1부의 기술적 성취로 평가하는 도심 액션 시퀀스가 있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설계자’가 뇌에 주입된 형사 문도석(소지섭), 설계자를 탈옥시키기 위해 지구에 도착한 외계 로봇, 이들을 지원하는 우주선, 탈출한 죄수를 막기 위해 싸우는 가드와 썬더,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아이,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사람들과 질주하며 충돌하는 차들. 이 아수라장 시퀀스에서 영화가 몰두하는 행위는 단 하나, 무너뜨리고 부수는 일이다. 도로와 주차장과 건물과 눈에 띄는 모든 걸 부수고 부순 곳을 또 부순다. 각각의 사연을 지닌 캐릭터들이 이 시퀀스에 동원되지만, 여기서 파괴의 주체와 대상을 가르는 일은 의미도 없고 불가능하기도 하다. 영화 속 한 인물이 말하듯 <외계+인>에서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과거가 서사적 과정이 제거된 즉각적인 변환의 쾌감을 따르는 동안, 현재는 서사적 계기를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연쇄적인 파괴의 스펙터클을 추종한다.

그러니 앞선 궁금증은 애초 잘못된 곳을 바라본 건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63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고심하는 대신, 컴퓨터그래픽이 하늘에 뚫은 구멍 하나면 두 시간대를 오가기에 충분하다고 여긴다. 외계인 로봇과 에일리언과 고려시대 도사와 현대 인간처럼 서로 다른 질감의 존재들을 어떻게 관계지을지 고민하는 대신, 그저 그들을 한곳에 몰아 힘을 겨루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캐릭터들이 갖고자 안달하던 무소불위의 신검은 이미 영화의 손에 들려 있다. 이 영화에는 한계에 대한 인식이 없다. 유한한 상영시간, 시공간을 사각의 틀로 잘라낸 프레임, 로봇이 아닌 인간 배우의 육체, 숏과 숏 사이의 경계, 장르의 관습적 테두리 등 물리적·심리적·미학적 한계 안에서 그 한계를 운용하며 세계를 구축하는 문제에 이 영화는 무감하다.

가면 아래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자장법사는 신검을 차지하려 간교한 술수를 부린다. CJ ENM 제공

가면 아래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자장법사는 신검을 차지하려 간교한 술수를 부린다. CJ ENM 제공

무소불위의 신검을 쥔 건 감독이었다

결말이라고 할 수 없는 1부의 끝이 단적인 예다. 2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결말이겠지만, 대개의 블록버스터 시리즈물이 서사에 주어진 과제를 일단 온전히 마무리하고 속편을 예견하는 경향과 달리, 이 영화의 엔딩은 애초 미완을 목표로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파괴된 것은 넘치나 해결된 것은 없다.

그러니 다시 말하지만, 2시간22분 동안 내가 본 것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한 편의 영화를 ‘영화’로 존립시키는 최소의 한계에 개의치 않으면서 <외계+인>이 자신에게 부여한 자유, 그 태도의 자신만만함이 통쾌하기보다는 사실 좀 무섭다.

남다은 영화평론가·<필로>(FIL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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