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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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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이의 쓴맛은 기후위기입니다

1907년 이래 가장 적은 비가 내린 2022년 5월,
‘기본 텃밭제’를 하면 날씨 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길까
등록 2022-06-23 14:55 수정 2022-06-24 02:09
봄가물로 바싹 마른 밭.

봄가물로 바싹 마른 밭.

“파가 말라, 오이는 쓰고.”

운동하는 아이의 수발(!)을 드느라 지난 주말 포천에 가지 못했다. ‘와잎’은 심히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기후가 큰일’이라고 읊조렸다. 지난 주말 갓 딴 오이를 무쳐 먹었는데 너무 썼고, 파 끝은 누렇게 타들어갔다고 했다. 그게 기후까지 들먹일 일인가 싶지만 5월에 역대급으로 비가 안 왔던 것은 자명하다. 기사를 찾아보니, 2022년 5월 한 달간 전국에 내린 비는 고작 5.8㎜다. 2021년까지 전국 평균은 143.8㎜였다. 기상 관측 이래 비가 가장 적게 왔다. 기상 관측과 예보가 시작된 것이 1907년이라고 하니 무려 115년 만의 상황인 셈이다.

115년 만의 상황, 도시에 사는 이들은 이를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 곳곳에서 가뭄이 빚은 ‘현상’이라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위성사진을 보면 국토 전체가 말라서 갈라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저수지에 물이 있고 농수로에 물이 흐른다지만 그 자원을 더 고르고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인프라는 아직 국가적 과제가 되지 못했다. 왜냐고? 도시에 사는 우리가 극단적 이상기후라고 자각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곳곳에선 크고 작은 산불이 이어진다. 강원도에선 봄가물로 5만여 명이 수돗물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됐을까. 충청남도는 도내 15개 시군 모두 밭작물 관심단계(토양유효수분 60% 이하)가 발령됐고, 곧 14개 지역은 주의단계(45% 이하)로 전환할 예정이다. 도심 어느 공원의 잔디가 봄부터 누렇게 타들어간다면 그땐 얼마나 아우성칠까. 봄가물에 수도권 사람들이 매일 먹어야 하는 ‘마늘, 양파, 감자, 참깨, 고추, 콩’이 모두 타들어가고 있다. 어느 정도로 비가 안 왔냐고? 다시 설명하면 전남 해남엔 5월 한 달 동안 단 0.3㎜의 비밖에 오지 않았다. 딱 한 방울쯤 똑 떨어진 셈이다. 다행히 이번주 수요일(6월15일) 비가 내렸지만 가뭄 해갈에는 역부족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솔직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이런 생각은 해봤다. ‘기본 텃밭제’ 같은 걸 시행해보면 어떨까. 누구라도 한 이랑이건 반 이랑이건 자기 밭을 가꾸면 날씨 문제가 자기 문제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대단지 아파트 등에서 화단 일부를 헐어 주민에게 분양하는 텃밭이 있다. 그 조그마한 텃밭만 가꿔도 기상예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기후변화에 관심 갖지 않을까.

2년 전 역대 최장의 장마가 이어졌을 때, ‘#이_비의_이름은_장마가_아니라_기후위기입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온라인을 달군 적이 있었다. 기후위기는 어느 여름에는 물폭탄 같은 비로, 어느 봄에는 타들어가는 가뭄으로 얼굴을 바꿔 우리를 계속 습격하고 있다. 이 양극화 사이에서 기우제 지내는 맘이 되는 건 부질없을까.

글·사진 김완 <한겨레> 영상뉴스부 팀장 funnybone@hani.co.kr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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