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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독재 시절, 어둠의 권력자들

5공화국 국가안전기획부장들의 음습한 역사 <5공 남산의 부장들>
등록 2022-06-05 14:07 수정 2022-06-06 03:29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된 <잿더미의 유산>(원제 Legacy of Ashes, 팀 와이너 지음)은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번역판 부제)을 다룬 책이다. 1947년 미국 중앙정보부(CIA) 창설부터 2003년 미국이 세계를 속인 이라크 침공 직후까지 60년 동안 CIA 수뇌부의 인물과 움직임이 고스란히 담겼다.

신간 <5공 남산의 부장들 1·2>(김충식 지음, 블루엘리펀트 펴냄)는 전두환 집권 이듬해인 1981년 중앙정보부가 간판을 바꿔 단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제5공화국(1980~1988) 시절 흑역사를 보여준다. 두 저작의 공통점은 저널리스트 출신 저자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정보기관과 권력 핵심부의 내밀하고 음습한 이야기를 조명했다는 점이다. 철저한 팩트(사실) 취재와 다양한 관련 인물 인터뷰를 씨줄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동감 있는 서술을 날줄로 삼아, 자칫 영원히 묻히거나 왜곡될 뻔한 역사의 어두운 장면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두 정보기관의 현대사에는 묘하게 닮은 구석도 있다. 걸프전쟁(1990~1991)을 벌인 조지 H.W.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CIA 국장 출신이다.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는 2001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03년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다. 한국에선 전두환이 국군 보안사령관을 거쳐 중앙정보부장(서리)을 지낸 뒤, 1980년 5월 광주에서 전쟁 같은 학살을 제물 삼아 대통령이 됐다. 그와 절친했던 육사 동기이자 쿠데타 공범 노태우가 후임 대통령에 어부지리로 당선했다.

<5공 남산의 부장들>은 지은이가 <동아일보> 기자 시절 연재했던 기사를 책으로 엮은 <남산의 부장들>(1992년 초판)의 후속편이다. 전작은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신설된 중앙정보부의 초대 부장 김종필부터 1980년 봄 마지막 중앙정보부장(서리)을 지낸 전두환까지 10명을 다뤘다. 이번 후속작에선 ‘굵고 짧았던 셀프 정보부장 전두환’을 시작으로, 12·12 쿠데타 세력의 핵심이던 유학성,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역사상 최초의 문민(文民) 부장 노신영, 전두환의 심복 장세동, 노태우의 최측근이던 안무혁까지 5명의 ‘부장들’이 등장한다.

앞서 1961년 5월16일 새벽, 박정희 육군 소장은 쿠데타를 감행했지만 주한미군과 장면 정부 쪽 장성들의 반발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사흘째인 5월18일, 서울대 학군단(ROTC) 교관이던 전두환 대위가 “쿠데타 성공의 분수령”이 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혁명 지지’ 시위행진을 기획·실행하면서 박정희의 눈에 들었다. 전두환의 출세길이 열린 날이자, 20년 뒤 5·18 광주 학살의 핏자국 위에 세워진 5공 정권의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1979년 12월12일 “다들 실패와 총살이 두려운 밤”이었던 군사반란의 긴박한 장면에서 시작한다. 박정희 피살 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을 꿰찬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과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 등을 속이는 “천연덕스러운 궤변으로 첫 단추를 잘 꿰었다”. 불법 찬탈한 권력은 폭압과 공포로만 지탱할 수 있었다. 그 핵심 구실을 ‘5공 남산의 부장들’이 맡았다.

책에는 처음 공개되는 몇몇 특종 비화도 실렸다. 1986년 7월 주한 미국대사가 사형당할 뻔한 정치범 김대중을 미국 건국기념일 리셉션에 초청했을 때의 일화는 그 한 가지다. 전두환과 장세동은 “김대중의 콧대를 높여주면 안 된다”고 반발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당시 외무부 장관과 미주국장이 엉뚱하게도 분풀이 날벼락을 맞았다.

앞서 1980년 김대중을 처형하려던 전두환 신군부가 지미 카터 미국 정부의 반대에 가로막혔다가,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보수파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되자 “이젠 죽여도 된다!”고 환호작약했던 것도 역사의 서늘한 한 단면이다. 전두환 정권은 ‘김대중 처형 포기’를 약속한 대가로 미국의 공인을 받았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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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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