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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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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파티원 모집

올해는 옥수수를 심기로 했다, 나름 과학적으로
등록 2022-05-04 14:08 수정 2022-05-05 01:33
(들어가기만 하는) 돈도 (망한)감자도 무서운 우리는 좋은 기억만 남은 옥수수를 심기로 정했다.

(들어가기만 하는) 돈도 (망한)감자도 무서운 우리는 좋은 기억만 남은 옥수수를 심기로 정했다.

올해는 옥수수를 주종목으로 삼기로 했다. 지난해 옥수수를 조금 심어보니, 옥수숫대가 무릎 정도까지 자라기 전에 풀만 잘 매주면 그다음은 별로 손 갈 게 없었다. 비닐 멀칭을 하지 않아도 된다. 씨앗을 심고 풀이 나기 시작할 때 초장에 뽑아놓으면 옥수수가 높이 자라니 풀이 해를 못 받아 힘을 쓰지 못한다. 수확은 옥수수만 뚝뚝 꺾어 따주면 끝나는 거라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주워야 하는 감자에 비해 무척 쉬웠다. 남은 옥수숫대는 밑동을 낫으로 툭툭 쳐주면 쓰러지는데, 그마저도 옆밭 어르신이 염소 먹이 삼겠다며 그냥 두면 가져가시겠다고 해서 밭 설거지 할 일도 없었다.

지난해엔 몇 고랑은 초반에 풀을 매주었고, 몇 고랑은 때를 놓쳐 못 맸는데, 못 맨 곳은 풀이 옥수수와 함께 높이높이 자라 무엇이 옥수수이고 무엇이 풀인지 알 수 없어 그냥 풀밭으로 뒀다가 여름에 예초기로 다 함께 싹 밀어버렸다. 살아남은 옥수수는 한 대에 두 개씩 달렸는데, 위에 달린 건 크고, 아래 달린 건 작았다. 작은 건 상품성이 없어 보통은 따지 않는다는데 우리는 남김없이 따서 알뜰하게 삶아 먹었다. 갓 따서 밭에서 바로 삶아 먹으니 옥수수 알갱이가 너무 보드랍고 향긋해서 황송할 정도였다. 옥수수는 큰 냄비에 풍덩 잠기도록 물을 붓고 소금과 뉴슈가(인공감미료)를 넣고 삶는 게 우리 엄마식인데 밭에서는 아무것도 안 넣어도 맛이 좋았다. 몇 자루는 언니가 지인들에게 팔았고, 남은 건 냉동실에 넣었다가 겨울에 가끔 삶아 먹었다.

올해 옥수수를 하겠다 하니 마을 어르신들은 옥수수는 때 맞춰 따는 게 어려울 텐데… 하신다. 너무 일찍 따도 안 되고, 딱 좋을 때에서 하루이틀만 지나도 너무 쇠어버려 주말 농부인 우리가 시기를 맞추기 어려울 거란다. 무엇보다 돈이 별로 안 된단다. 지난해에 감자 가격이 좋았다며 감자를 다시 해보라는데, (들어가기만 하는) 돈도 (망한) 감자도 무서운 우리는 좋은 기억만 남은 옥수수로 정했다. 수확 시기를 맞추는 건 파종을 4주에 걸쳐 해서 때를 맞춰보기로 했다.

연말에 이장님께 부탁해 농협에서 파는 미백 옥수수 씨앗 두 봉지를 구해놓았다. L사장님께 밭 갈아달라 부탁하니 다음날 곧바로 갈고는 사진을 보내주셨다. 바로 고랑을 내지 않았는데, 미리 내놓으면 풀이 너무 많이 올라오니, 심기 직전에 다시 고랑을 내주신단다. 지지난주엔 이장님 트럭을 빌려 농협경제사무소에서 유기질과 복합비료 30포대를 사다 밭의 절반에 뿌렸다. 비료 준 곳과 안 준 곳의 옥수수를 비교해보기로 했다. 장단점을 비교해보고- 안 뿌린 곳이 맛이 더 좋다든지, 뿌린 곳의 수확량이 엄청 더 많다든지- 내년엔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이제 계획도 섰고, 준비도 끝났다. 4주간의 파종 여정이 남았다. 사람만 구하면 된다. 옥수수 파종도 감자처럼 파종기가 있어 파종기를 이랑에 찔러넣고 옥수수알을 두 개씩 넣어주면 되는데, 밭이 꽤 넓어 한두 명이 다 하기엔 좀 빡세다. 2년 전 함께 농사를 시작했던 조카들은 그사이 덩치가 더 크고 여물어서 일 시킬 만해졌는데 고3, 고1이 되어 동원이 어려워졌다. 재 너머 사래 긴 밭 언제 심을까 하나니~ 옥수수 심으러 갈 파티원 구합니다~.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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