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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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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은 민들레 씨앗

어딘가에서 싹이 날 거라는 생각에 열심히 뿌린 명함
등록 2022-04-07 16:03 수정 2022-05-20 01:42
봄날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의 민들레가 홀씨를 날리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봄날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의 민들레가 홀씨를 날리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주방기구 판매 에이전트라는 내 직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강습 장소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곳 하나 오라는 데도 없고 갈 데도 없습니다. 한 장소에서 강습할 때면 어떤 사람이 살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주변에 영향력 있는 사람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한 번에 여러 마리 토끼를 잡으려니 신경을 많이 써야 했습니다. 입으로는 말하고 손으로 요리하면서 엄청 신경 쓰며 하지만 언제나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 같은 주부’라는 말에 씩 웃은 소장님

한 달에 한 열흘은 요리 강습을 성사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어느 봄날, 서울 강동구 길동의 보험회사 지국이 있는 고층 빌딩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위에서부터 한층 한층 내려서 들를 작정이었습니다. 건물 꼭대기 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너무 막막하고, 모르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생각하니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 싶어서 그대로 내려와 집으로 왔습니다.

집 앞에서 짐 보따리를 잔뜩 든 옆집 아주머니와 마주쳤습니다. “오늘처럼 따땃한 봄날 같이 고수부지로 소풍이나 가자”고 했습니다. 웬 소풍? 하니 집에 있기 따분해 밥과 김치만 싸서 가려던 참이라 합니다.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나도 집으로 혼자 들어가봐야 별 볼 일 없는 날이었습니다. 얼른 따라나섰습니다. 가다가 빵과 음료수를 사서 고수부지 안 민들레가 한창 핀 풀밭에 자리를 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아주 한가한 여인들처럼 행복해졌습니다. 먹고 떠들며 한참을 있다보니 옆에 피어 있던 민들레 꽃대가 눈에 보이게 쑥 자라면서 솜털 같은 씨앗이 멀리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내 옆 풀밭에는 솜털 같은 씨앗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내가 가진 주 무기인 명함을 많이 뿌리면 민들레 씨앗처럼 어딘가에서 싹이 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가 풀밭에서 날던 민들레 씨를 보고 용기가 났습니다. 다음날 다시 길동 보험지국을 찾아갔습니다. 주부들을 만나기에는 보험회사만큼 좋은 곳이 없습니다. 용기를 내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처음 간 사무실의 소장은 남자였습니다. 용기를 내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명함과 카탈로그를 건네며 이야기했습니다. 소장님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우리는 그런 거 안 해요” 했습니다. “보험 판매원들도 다 같은 주부인데 세일하기 힘드니 장소만 좀 제공해주시면 팔고 못 팔고는 제가 책임질게요” 사정했습니다. ‘다 같은 주부’라는 말이 재밌었는지, 소장님은 먼 산을 바라보며 씩 웃더니 “그럼 하세요” 했습니다. “언제 할까요?” 하니 “내일 당장 해요” 했습니다. 다음 사무실로 갔습니다. 다음 사무실에서도 안 한다고 합니다. “저 사무실에서는 하라던데요?” 했더니 “그럼 우리 사무실에서도 해요”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 8개 사무실 모두 다 할 수 있었습니다.

남의 집 살림이 좋은 걸 못 보는 사람

한번은 어떤 건물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남자 둘이 자기는 머리카락만 난다면 천만원이 들어도 약을 사다 바르겠다고 하는 대화를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어 따라가서 명함과 카탈로그를 주며 열심히 요리 강습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철에서 살림살이 광고를 유심히 보는 아저씨한테도 명함을 건넸습니다. 보험 들라고 하는 민 여사에게도 명함을 줬습니다. 건강식품 파는 할머니한테도 명함을 줬습니다. 명함을 돌린다고 연락이 막 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들레 씨가 바람을 타고 정처 없이 날아가 풀밭에서도 싹이 나고 길가에서도 꽃을 피우듯, 명함 받은 사람 가운데 가끔 연락이 와서 늘 요리 강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컴컴한 새벽에 전화벨이 따르릉 울렸습니다. 새벽에 무슨 전화지, 의아해하며 받았는데 웬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전순예씨냐고 물어 누구시냐고 했더니, 자기는 전철에서 명함을 받은 사람인데 독일제 냄비를 판다면서요? 했습니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딱딱거리며 물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고 하니 어제 친구 집에 갔는데 내가 준 카탈로그 속 냄비와 똑같은 것을 쓰고 있더랍니다. 너무 좋아 보여 우리 마누라한테도 사주려고 하니 날 밝으면 빨리 당신한테 있는 모든 제품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부랴부랴 준비해서 그 집에 갔습니다. 남자는 좋은 살림살이를 다 사준다는데 아주머니는 도리어 시큰둥해서 “뭐가 그리 급해 이 난리냐”며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열심히 요리하고 설명을 듣고서야 좋아했습니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프라이팬하고 압력솥이나 하나 살까 했습니다. 남편분이 무슨 소릴 하느냐며 자기 친구네는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다면서 지갑을 열어 하나도 빠짐없이 다 현찰로 샀습니다. 아주머니 이야기로는 자기 남편이 남의 집 살림살이 좋은 꼴을 못 보는 사람이어서 어디 가서 보는 대로 살림을 다 산다고 쭝쭝거렸습니다.

아직도 요리 강습이 안 열린 동네가 있다니

언젠가는 건강식품을 파는 할머니가 조카네 집에 가는데 같이 가보자고 했습니다. 조카는 서울 강남구 내곡동에 사는데 그곳은 1970년대에 충북 음성 한센병 환자 정착촌이었답니다. 정부 정책으로 음성 한센인들에게 양계를 시켰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양계장 터를 개인이 불하받아서 다 공장을 지어 세를 놓았습니다. 정착민 1세대는 많이 죽고 외지 사람이 많이 들어와 산다고 했습니다.

자기 조카며느리는 그 동네 부녀회장이라고 했습니다. 일단 인사는 시켜줄 테니 알아서 하고, 많이 팔리면 자기한테 두둑이 사례하라고 했습니다. 할머니의 조카며느리는 판매액의 10%를 받기로 하고, 자기네 집에서 먼저 요리 강습을 하고 잘되면 동네를 돌아가면서 해보자고 했습니다. 혼자나 두 식구 사는 노인들이 공장세를 많이 받아 돈이 아주 많은 동네였습니다. 그때까지 그 동네에는 요리 강습이 열린 적이 없었답니다. 그 많은 어르신은 “이렇게 좋은 냄비는 처음 본다”며 좋아들 했습니다. 죽기 전에 좋은 냄비 한번 써봐야 한다며 너도나도 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아무 수단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는 나를 위해 그때까지 요리 강습이 열린 적 없는 동네가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 요리 강습을 여러 번 해서 냄비를 많이 팔았습니다.

전순예 <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세일즈우먼의 기쁨과 슬픔: 1945년생 작가가 작은 것들을 사고팔며 살아온 세월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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