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20대는 50대와 닮았다

세대를 꿰뚫는 불평등 구조에 주목한 신진욱 교수의 <그런 세대는 없다>
등록 2022-03-08 14:52 수정 2022-03-09 02:14

페미니스트들과 싸우고 586세대를 꼰대라고 경멸하는 20대 남성. 이들을 칭하는 ‘이대남’이라는 단어로는 보이지 않는 청년들이 있다.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작업을 하던 이선호(당시 23살)씨는 2021년 4월22일 300㎏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평소에 맡아 하던 일이 아니라 갑자기 투입된 작업이었다. 안전교육조차 없이 벌어진 사고였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그런 세대는 없다>(개마고원 펴냄)에서 “세대 담론들이 말하는 ‘기득권 기성세대’, ‘운 좋은 586세대’나 ‘희생자 청년세대’, ‘안티페미 이대남’ 같은 말의 이면과 실체를 보여주려” 한다.

갈등으로 점철된 세대 담론을 넘어 현실을 들여다보면 진실이 보인다. 선호씨의 아버지는 평택항 부두에서 8년째 일해온 작업반장이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규명하려 사용자 쪽과 싸웠다. 신 교수는 세대 간 차이보다 이들 세대를 꿰뚫는 불평등 구조에 주목한다. 2019년 통계청 고용조사 통계를 보면, 전체 50대에서 관리직 종사자는 3%, 전문직 종사자는 14%다. 30대 가운데 관리·전문직 비율의 절반에 불과했다. ‘50대는 기득권을 쥐었다’는 기존 통념과 달리 50대는 오히려 20대의 불안정 노동과 맞닿아 있다.

한때 청년들이 당사자성을 무기로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던 때가 있었다. 2010년대 청년유니온은 청년 문제를, 민달팽이유니온은 주거, 알바노조는 아르바이트 노동을 문제로 들고나왔다. 이들은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정부와 협력관계를 맺어 청년정책을 도입했다. 그런데 의문이 남는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대 담론이 여성과 기성세대를 공격하는 데 이용당하는 걸까.

책은 누가 왜 정치 담론과 세대 담론을 융합해 ‘세대혐오 담론’을 만들어냈는지도 추적해간다. 신 교수는 각종 통계와 연결망 분석을 통해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를 계기로 청년 담론의 주도권이 보수세력으로 넘어갔다고 분석한다. 2021년 4월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세대포위론이 작동했고, 이번 대선까지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다.

세대혐오의 이야기만으로는 우리가 마주한 불평등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세대 간 차이보다 세대 내 격차에 주목할 때 그간 놓쳤던 진실이 포착된다. “세대를 동질적 사회집단 범주로 간주할 수 없다. 청년과 중년과 노년 세대 모두 불평등 시대 영향을 받아왔으며 그에 따라 세대 내 소득격차 문제가 심각하게 있다.” 책을 관통하는 신 교수의 주장이다. 다만 청년세대에서 ‘세대혐오 담론’이 왜 이리 주목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그들의 마음을 두텁게 들여다보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에릭 홉스봄 평전

리처드 에번스 지음, 박원용·이재만 옮김, 책과함께 펴냄, 4만3천원

혁명, 자본, 제국, 극단. 에릭 홉스봄이 정리한 시대의 이름은 그대로 ‘교과서’다. 그는 50개국에 번역된 20세기 대표적 역사학자이자 좌파의 영향력 있는 대변인이었다. 나치가 장악한 독일 베를린,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공산주의 위기와 논쟁까지 ‘20세기적 인물’의 파란만장한 한 세기(1917~2012).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펴냄, 1만7천원

여성들의 멘토인 저자의 회고록. 저자가 세상에서 지워진 이들의 존재를 부각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 자신이 ‘세상에 없는 비존재’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지운 사회구조를 자각하는 데로 나아가면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페미니즘 대표 구호처럼 개인의 회고록은 공동의 회고록이 됐다.

더 파이브

핼리 루벤홀드 지음, 오윤성 옮김, 북트리거 펴냄, 1만8500원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 영국의 유명한 살인마 ‘잭 더 리퍼’에게 희생당한 여성의 이름이다. 한국의 라이선스 뮤지컬 <잭 더 리퍼>의 홍보 문구는 ‘1888년 런던, 그땐 낭만이 있었다’. 저자는 잔혹하게 살해당한 ‘매춘부’로 기록된 이들의 삶을, 수많은 자료를 참고해 복원한다.

알고리즘이 지배한다는 착각

데이비드 섬프터 지음, 전대호 옮김, 해나무 펴냄, 1만8천원

응용수학자인 저자는 미래 기술에 관한 세간의 통념을 연구결과로 반박한다. 예컨대 ‘알고리즘으로 편향된 견해가 강화된다’는 통념. SNS에서 비슷비슷한 게시물을 보는 사람들도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를 통해 다른 뉴스에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가짜뉴스가 선거의 판도를 바꾼다는 것도 연구로 증명된 바는 없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