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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절도는 ‘인간의 특별함’

동물해방 직접행동 활동가들의 돼지 새벽이 구출기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등록 2021-12-01 15:13 수정 2021-12-02 02:30

새벽이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취향이 잘 알려진 돼지다. 아마 첫 번째는 영화 <옥자>의 옥자가 아닐지. 옥자가 심심산골을 구르고 다니며 미자와 놀듯이, 새벽이는 진흙 목욕을 즐기고 수박 속을 순식간에 비우며 고구마보다는 감자를 좋아한다. 새벽이가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은 태어날 때 잘렸던 송곳니(견치)가 다시 자라났기 때문이다. 새벽이는 6개월이면 생명이 다하는 한국의 축산산업에서 2년의 생명을 유지하는 ‘특별한 존재’다. 새벽이라는 이름은 동물해방의 ‘새벽’을 연다는 막중한 임무를 어깨에 얹은 것이다. 새벽이는 향기·은영·섬나리 등 디엑스이(DxE, 직접행동) 활동가들이 훔친 돼지다.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호밀밭 펴냄)는 새벽이를 데리고 나와 키워낸, 여러 명의 입양 부모가 절절히 써낸 기록이다.

도살장 여러 곳을 견학하던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2019년 어느 날 한밤중 동물농장의 종돈장으로 진입했다. 낯선 이의 침입에 비명을 지르던 돼지, 사료와 분뇨 악취로 가득했던 공간에서 섬나리는 ‘지옥’을 보았다. ‘친환경 우수 종돈장’이라고 쓰인 곳에 지옥이 숨겨져 있었다. 향기는 “사실은 엄마 돼지를 구출하고 싶었다. 다른 돼지를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며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진 순간을 기록했다. 은영은 가정폭력을 겪고 내동댕이쳐진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공개구조를 두고 많은 이가 이를 절도라 비난했다. 그런데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훔치지 못한 돼지는 살아남지 못했다. “죽이는 것은 합법이고 살리는 것은 불법”(홍은전)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새벽이는 활동가 개인 집, 다른 동물들의 임시보호소 등을 떠돌다가 새벽이 생추어리(피난처)를 조성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갖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인간이 바라보는 ‘돼지다움’을 벗고 종적 특성의 돼지다움을 회복해간다. 분홍빛은 인간의 개량으로 만들어진 피부였다. 멜라닌이 없어서 햇볕을 쐬면 빨갛게 달아오른다. 인간의 끈질긴 개량에도 돼지는 본능을 잊지 않았다. 새벽이는 진흙을 보는 순간 목욕하기 위해 뒹굴기 시작한다. 책에 실린 사진에서 분홍빛에서 흙빛으로 되어가는 것은 돼지다움을 되찾아가는 상징으로 보인다.

새벽이는 특별한 돼지지만 특별하지 않다. 새벽이는 한국에서 매년 1700만 명(동물활동가들은 동물을 세는 단위로 명을 쓴다)이 도살되는 돼지들이 ‘되었을 수도 있는’ 모습이고, 만끽할 수도 있었을 행복이다. 그래서 이들은 새벽이가 평범한 돼지가 되도록 기록한다. 마찬가지로 이 특별함은 인간에게서 훔칠 것이기도 하다. 은영은 “인간 중심성을 도살장 앞에서 고발당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향기는 “특별한 돼지가 아닌 우리와 같은 고유한 존재로서, 차별적인 세상을 투쟁적으로 살아가”도록 기록하겠다고 말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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