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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귀여울 수 있겠니?

카카오 캐릭터 중독기 ② 귀여움은 돈이 된다, 힘이 세다, 정치적이다
등록 2021-11-10 06:48 수정 2021-11-10 23:07
전 회사 동료가 입양한 ‘다복이’.

전 회사 동료가 입양한 ‘다복이’.

“어? 귀여워.”

2021년 상반기를 휩쓴 유튜브 콘텐츠 ‘비(B)대면 데이트’ 시리즈 속 유행어다. 스스로 치명적이라고 믿는 카페 사장 ‘최준’(김해준) 캐릭터가 여성들에게 던진 추파 멘트다. 웃음 포인트는 연애에 과몰입한 남성에 대한 풍자다. 여성들이 최준의 멘트에 경악하는 ‘리액션’ 콘텐츠가 유행일 정도로, 주로 여성들의 호응이 컸다. 남자들의 ‘여우짓’ 중 하나인, 머리를 난데없이 쓰다듬으며 하는 “아유~ 귀여워”라는 말에 소름 돋아본 경험 때문일 것이다.

분명히, 최준의 ‘귀여워’와 고양이를 보고 감탄할 때의 ‘귀여워’는 다르다. 공통점은 있다. 최준이 귀엽다고 칭하는 여성, 고양이 모두 무해한 대상으로 설정된다는 것. 같은 고양이와 개여도 아기 고양이, 강아지가 유독 귀여움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귀여워’는 그냥 귀엽기만 한 걸까. 여성들은 그동안 자신을 귀여워하는 남성에게서 높은 확률로 데이트폭력과 성차별을 겪었다. ‘귀엽다’는 말에는 대부분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로 두지 않는다는 뜻이 담겼기 때문이다. 카카오 캐릭터 ‘라이언’의 귀여움도 실제 열대초원 사바나에서 멸종 중인 사자의 얼굴과는 우리나라와 아프리카만큼 거리가 있다.

‘귀여워’ 이면에 보이지 않는 현실이 있다. 나는 개 ‘다복이’를 통해 그걸 알게 됐다. 다복이는 전 회사 동료가 입양한 개로, 집에 초대됐을 때 처음 만났다. 다복이는 사진으로 여러 장 보고 아는 사이였고 실제 보니 더 귀여워서 마구 쓰다듬어줬다. 그런데 잠시 뒤 다복이는 방해꾼이 됐다. 자기와 놀아달라고, 솜이 다 뜯어진 해바라기 인형을 입에 물고 대화 중인 우리를 채근했다. 말 한마디 끊어지기가 무섭게 다복이가 다가왔다.

그러고 보면 카카오 캐릭터 ‘라이언’은 쉽게 귀여워할 수 있다. 우리를 할퀴거나, 에어팟을 잘근잘근 씹어버리거나, 속을 알 수 없거나, 병들거나 늙지 않는다. 보고 싶을 때만 보고, 인형이 맘에 안 들면 버리고 새로 살 수 있다. 기업 처지에선 연예인 모델을 앞세울 때와 달리, 인성 논란이나 스캔들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노동착취 등의 이슈가 생겨도, 캐릭터는 죄가 없다. 이런 면에서 귀여움은 돈이 된다. 강제로 동물을 교배시켜 낳은 새끼를 파는 펫숍도 일종의 귀여움 장사가 아닐까.

그래서 다복이가 안 귀엽냐고? 다복이는 그 동료에게 아주 큰 방해꾼일 수 있었다. ‘개 집사’는 다복이와 함께 산 이후로 사는 공간, 노동시간, 커리어 그리고 육식에 대한 관점을 크게 바꿨다고 했기 때문이다. 귀여움이 보통 ‘그 존재만으로 충분하고 아껴주고 싶은 것’이라면, 실제 귀여움은 ‘그 존재를 지키고 아끼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이 든다. 동료는 그 귀여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기꺼이 바꿔냈다.

귀여움은 힘이 세다. 기업 이윤이나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쉽게 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귀여움은 모두 같지 않다. 라이언을 내세우는 카카오처럼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귀여움이 필요한 쪽과, 귀여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쪽은 다르다. 부끄럽지만, 업무에 지칠 때 고양이 짤(인터넷 사진이나 그림)로 힐링하는 나는 전자에 가까운 것 같다.

글·사진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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