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어디론가 이동하는 한·중 청년들

21세기 젊은이들의 고민 담은 <문턱의 청년들: 한국과 중국, 마주침의 현장>
등록 2021-11-04 15:33 수정 2021-11-05 01:57

<88만원 세대>(레디앙)라는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해는 2007년이다. 당시 20살로 갓 성인이 된 이들은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불완전한 ‘청년’으로 호명됐다. 14년이 지난 2021년, 이들은 34살이 됐지만 여전히 청년으로 불린다.

2000년대만 해도 각종 정부 정책에 등장하는 청년은 20대 후반을 의미했다. 2020년 시행된 청년기본법에서 ‘청년’은 만 19~34살이라고 규정됐다. 몇몇 지방정부는 만 39살까지도 ‘청년’이라고 이른다. 청년은 특정 연령대를 지칭하는 말을 넘어,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만들지 못한 상태를 뜻하는 단어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불안정해진 시대가 청년이 어른이 될 기회를 앗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청년은 직장, 주거, 결혼, 육아 등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문턱에 머물러 있다.

<문턱의 청년들: 한국과 중국, 마주침의 현장>은 13명의 연구자가 ‘한·중 청년들의 일상 문화와 생애기획: 마주침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수행한 공동연구를 문화인류학자 조문영이 엮어낸 연구모음집이다. 이 책에는 한국과 중국 청년들의 삶이 세심히 그려져 있다. 서울의 높은 집값에 못 이겨 1년에 한 번씩 집을 옮겨온 한 청년 여성은 함께 살아갈 친구를 구하며 계약서를 썼다. 계약사항은 ‘힘들 때 이야기하기’ ‘자살 안 하기’ ‘사고로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등이다. 고학력, 고소득으로 경제력을 갖췄지만 27살이 넘도록 미혼인 중국 여성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잉여여성’이라는 경멸을 받는다. 좋은 학군지인 서울 강남 3구에 살려는 한국 사람처럼, 결혼한 중국 청년들은 무리해서라도 고향을 떠나 베이징에 정착하려 한다.

어디에 사는지, 경제적 여력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삶의 경로가 갈리는 청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경상도에 사는 청년 남성은 제대로 된 사무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월급이 높은 공장을 떠돌다 산업재해를 당한다. 집안에 여유가 있는 청년은 공무원시험을 준비해 표준화된 삶의 경로에 들어설 기회가 생긴다. 고졸 학력의 20~40대 남성은 주로 서울에서 배달앱 노동자로 일한다. 대학을 나와 혁신적인 기업을 만들어 사회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서울 성수동에 모인 소설벤처업계 청년들은 스타트업 성지인 중국 선전의 청년들과 닮아 있기도 하다.

한·중 청년의 공통점은 강제로 밀려나든지, 의지를 가졌든지 ‘어디론가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집을 옮기고 직장을 바꾸고 국경을 뛰어넘곤 한다. 국가와 사회의 속박을 거부해 달아나거나, 잇따른 실패로 생긴 무력감에 한껏 위축된 청년들. 이들은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결혼하지 않고, 출산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청년 세대에게 기대되는 규범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들은 문턱 너머 세상을 구상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규범화된 세계에 안착할 수 있을까. 문턱에 머무르는 한·중 청년에게 주어진 질문이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요즘 애들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1만8천원

입시전쟁을 뚫고 들어간 대학에서 졸업장을 받고 취업난에도 직장을 얻었다. 그런데 일터는 시궁창이다. 쉬자니 죄스럽고 일하자니 비참하다. <버즈피드> 수석작가이자 <뉴욕타임스> 기고가인 저자는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가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고 약속했던 고용안정성과 충분한 연봉 등은 밀레니얼세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얻기 힘든 게 돼버렸다고 진단한다.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까지

정연욱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1만7500원

유명해져야 성공하는 시대가 왔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유명해진 인플루언서는 자연스레 부와 명성을 얻는다. 인플루언서는 대체 어떤 사람이고, 무엇으로 유명해져, 얼마큼 돈을 버는 걸까. 1년4개월 동안 2천 명 이상의 팔로어를 보유한 인플루언서 325명을 만나 심층인터뷰를 한 인류학 보고서가 나왔다.

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김수정 지음, 시공사 펴냄, 1만4500원

여성복은 앉아 있을 때 몸에 심하게 낀다. 여성복 바지는 대개 밑위 길이가 짧기 때문이다. 여남 공용브랜드 ‘퓨즈서울’ 김수정 대표는 남성복 바지를 입어보고 여성복이 차별의 의복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는 ‘남성복 같은 여성복’을 개발했고 사례들을 모아 책에 실었다.

내일의 세계

안희경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1만6천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지구에 퍼진 지 1년 반이 지났다. 다가올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일까.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은 재러드 다이아몬드, 케이트 레이워스, 다니엘 코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대니얼 마코비츠, 조한혜정, 사티시 쿠마르 등 7명을 인터뷰했다. 지속가능한 문명으로 나아갈 비전을 석학들의 통찰에서 엿볼 수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