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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저항’의 뿌리를 찾아서

탈의무 행위의 배경 파고든 <의무란 무엇인가-마스크 시대의 정치학>
등록 2021-10-21 06:03 수정 2021-10-22 02:03

2020~2021년, 선진국의 어느 시민은 불현듯 주어진 의무를 두고 짜증 내고, 분노하고, 저항했다. 마스크 쓰기랄지 ‘거리두기’ 의무는 아무튼 국가가 개인의 행위를 제약하는 것이며, 그것은 아무튼 파시즘을 떠올리게 하고, 그건 아무튼 꽤 그럴싸한 통찰처럼 여겨졌다. 마침내 ‘그런 조치들과 함께 사느니 차라리 코로나19로 죽겠다!’는 피켓을 들었다. 이런 시대 전문가는 주로 ‘아무튼’을 되짚고 파고들고 바로잡는 작업을 한다.

독일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가 <의무란 무엇인가-마스크 시대의 정치학>(박종대 옮김, 열린책들 펴냄)을 펴냈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시민의 의무에 저항하는 일을 ‘탈의무행위’ ‘탈연대행위’로 적는다. 국가의 변화를 되짚으며 저항의 앙상함을 비판한다. 배경을 파고든다. 바로잡으려 애쓴다.

탈의무행위가 저항하는 대상인 ‘국가’는 역사적, 공간적으로 변해왔다. 현대의 (선진) 국가는 ‘돌봄 및 (위험) 대비 국가’다. 지배가 아닌, 국민 행복과 약자 보호 의무를 짊어지고 요구받는다. 물론 잘해내지 못할 때가 잦다. 개인의 기본권과 모두의 안녕을 책임져야 할 의무 사이에 적절한 선은 끊임없이 논쟁해야 한다. 다만 “질병 감염에 특히 쉽게 노출된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라는 요구에서 ‘파시즘’의 징후를 읽는 것은 한마디로 역사의 슬픈 코미디다.”

그런데도 왜 국가는 예전보다 한층 더 무절제한 분노의 대상인가. “국가를 서비스 제공자로 보기 시작하고, 자기 자신은 언제나 최상의 서비스가 주어지기만 바라는 고객 또는 소비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민 아닌, 소비자에게 연대의 바탕은 옅다. “탈의무의 가장 깊은 뿌리는 멍청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타인에 대한 의무를 내팽개치라고 끝없이 가르치는 경제다.”

‘사회적 의무 복무’를 대안으로 제안한다. 고등학교 졸업 뒤 1년, 은퇴하고 1년 동안 주 15시간 정도 사회봉사를 하도록 하자는 얘기다. 사회적 실천의 공간을 억지로라도 마련해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자는 취지다. 이 제도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로, 지은이 스스로도 여기지 않는다. 다만 “모든 구성원이 자유는 최대한으로 누리면서 의무는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한다면 민주주의는 통제 불능의 혼돈 상태에 빠지고 만다”는 우려만은 절절하다.

마스크의 시대가 용케 지나간다 해도 시민의 의무에 대한 철학자의 고민은 여전히 중요하다. 시민의 의무는 코로나 방역 이후에도 큰 도전을 앞두고 있다. “거리두기 규칙과 얼굴에 천 조각 하나 걸치는 것에조차 그렇게 분노한다면 임박한 전 지구적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시민들에게 훨씬 더 강력한 제한과 행동 변화를 요구할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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