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위한 종이 잡지 <한겨레21> 글자에도 혁신과 익숙함, 창의성과 보편성 사이의 긴장은 담겨 있다. 주로 <한겨레21> 디자인을 맡고 있는 디자인주의 몫이다. 장광석 디자인주 실장은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을 생각하며 20년째 잡지를 만든다. <21> 글씨에 담긴 사정을 장광석 실장이 설명했다. 예의 수줍은 표정이다.
<21> 표지에 담긴 제목 글자들은, 굳이 분류하면 새로움의 영역이다. 있는 글꼴을 그대로 쓸 때도 있지만, 자주 변형해 쓴다. 손글씨로도 쓴다. 제1377호 표지 ❶ ‘한남 로또’ 글씨를 살펴보면 획들이 쪼개져 있다. 종이에 구멍을 내고 스프레이를 뿌려 만든 글씨(스텐실 기법)를 흉내 냈다. 오래된 담벼락 같은 데서 심심찮게 볼 수 있던 글씨다. 재개발 열풍 속에 관리되지 않은,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 모습을 글씨로부터 연상하도록 했다. 제1378호는 표지 제목 ❷ ‘사라지는 마을에 살다’를 따라 글자의 획 일부를 흐릿하게 변형했다. <한겨레21>이라는 제호도, 그 옆에 적힌 제목까지 모두 흐릿해진다.
때로 손글씨로 제목을 쓴다. 글자 수가 많지 않고, 특별한 느낌을 주고 싶지만 폰트를 새로 만들 시간이 없을 때(사실 늘 시간 없다) 쓰는 방법이다. “어떤 느낌이다, 마음가짐을 하고 손만 대면 되니까요”라고 장 실장은 말했다. ❸ ‘온 마을이 세 아이를 키웁니다’(제1370호)는 “아이가 글씨를 쓰기보다 그린다”는 느낌을 가지고 손을 댔다. ❹ ‘떠나요 생태여행’(제1362호)은 “직사각형 틀 모양으로 자유롭고 생태적인 느낌으로 썼다”고 설명했는데, (무슨 말이지? 싶겠지만) 보면 이해된다.
본문 글꼴은 한층 미묘한 영역이다. <21> 기사의 본문 글꼴은 윤명조130, 제목 글꼴은 윤고딕150, 페이지 숫자 등은 ‘Orator Std Medium’을 한결같이 쓴다. 3개 이상 글꼴을 넘지 않는다. 안정성과 완성도를 고려해서다. “최정호의 명조체에서 나온 윤명조 같은 글꼴은 역사도 있고 오랫동안 써왔기에 완성도가 검증돼 있습니다. 보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느낄 수 있고요.” 다만 글자 크기, 자간, 여백, 배경 같은 요소에 변화를 주어 같은 글씨를 달리 보이게 한다. 좀더 다양한 글꼴과 구성 실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디자이너의 본능에 가깝고, 잡지 판형에서 단행본 같은 본문 배치를 한 ❺통권5호 ‘쓰레기 TMI’ 등에서도 발견된다.
사실 이 모든 건 주로 ‘종이 잡지’에 한정된 얘기다. 대부분 기사는 디지털로 유통된다. 기기나 웹이 표현할 수 있는 글꼴은 다양하지 않다. 여백과 배경을 표현할 수도 없다. 지면에 얹힌 혁신과 고민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으나 아쉬운 일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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