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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글날] 글자 획 0.1mm를 옮긴 몸과 마음들

최정호 글씨의 맥을 디지털로 잇는 마루부리
안상수와 젊은 동료들, 한글날 맞아 10월6일 정식 공개

제1383호
등록 : 2021-10-09 01:21 수정 : 2021-10-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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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잔치 2021: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거북이와 두루미’에 마련된 마루부리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이 태블릿에 마루부리 글꼴로 적힌 <한겨레21> 제1333호 ‘‘안상수체’ 안상수의 ‘마루부리’ 글꼴 이야기’ 온라인 기사를 읽고 있다. 타이포잔치는 10월17일까지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열린다. 김진수 선임기자

다시, 한글날이다. <한겨레21>은 2020년 한글날, 글자 짓는 이들의 교류와 꿈을 적었다.(제1333호) 우리가 지금 쓰는 거의 모든 명조와 고딕의 원형을 이룬 최정호(1916~1988년)와 젊었던 글꼴 디자이너 ‘날개’ 안상수의 만남, 슬쩍 내비친 애틋함과 우정, 뜻을 이어받되 더 나아가겠다는 날개의 결의 같은 것이다. 이제는 나이 든 날개(안상수의 호)와 그의 젊은 동료(글꼴 전문가)들은 그렇게 최정호 글씨, 그 가운데 특히 부리 글꼴(명조, 손글씨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글씨체)의 줄기를 잇는다는 생각으로 ‘마루부리’를 3년째 짓고 있었다. 디지털 화면 글꼴은 대부분 민부리(고딕, 직선으로 이뤄진 글씨체)로 굳어져 있다. 화면 글꼴에 다양성을 제대로 더해야 한다고 여겼다. 날개와 글꼴 전문가, 네이버문화재단은 2020년 10월 마루부리 시험판을 내놓았다.

시험판 공개 후 1년간 몸과 마음을 생각하며
그들의 모습은 번잡하고 시끄러운 이곳 넘어, 곧고 성실하고 치열한 것이면 충분한 장인만의 지경으로 여겨졌는데, 물론 그럴 리 없다. 그들이 짓는 것은 글자이며, 글자는 결국 이 번잡하고 시끄러운 세계 쪽 사람이 쓴다. 날개도 아주 오래전, 최정호와 교류하던 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읽고 쓰기에 편하면 우수하다고 보지요. 다시 말해 사람을 위한 타이포그래피라야 합니다. 사람을 위한다는 것 자체가 기능이지요.”(1983년 12월, 월간 <디자인> 안상수 인터뷰)

그로부터 1년 동안 마루부리 디자이너들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생각하는 데 주로 시간을 썼다. 시험판을 살펴본 사용자 3만2천여 명이 온라인 페이지에서 획을 움직여가며 자기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는 데이터를 보냈다. 전문가는 경향을 살피며 이유를 궁리했다. 수정했다. 마루부리는 날개 안상수, 구모아, 이우용, 노은유, 이노을, 한재준 디자이너가 주로 지었다. 자문이나 연구를 통해 제작에 참여한 전문가를 더하면 67명, 2018년 개발시작부터 사용성 조사에 참여한 시민을 더하면 5만9959명이 손을 보탰다. 2021년 한글날 즈음, ‘아주 가는’에서 ‘굵은’까지 굵기가 다른 마루부리 5종 글꼴 가족을 정식으로 공개했다.

아주 작고 꼬물꼬물한 획과 획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시 한다. 이번에는 초연한 전문가의 교류 너머를 짚기로 한다. 전문가와 대중, 생산자와 사용자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서로 다른 몸과 감정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0.1㎜ 두고 벌어진 숙고와 합의 과정, 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번잡하고 시끄러운 세계에서 그래도 소통하며 나아지려 애쓰는 모든 일의 은유로 읽히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림1.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네이버문화재단 제공

1. 공기 같은 글씨
“(타이포그래피가) 공통으로 갖는 원칙은 특히 눈, 손, 팔뚝 같은 인간 신체의 구조와 스케일에 기반하고 다른 한편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더없이 실재적이고 심미적인 인간 마음의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로버트 브링허스트, <타이포그래피의 원리>

세계 각양각색 문자의 모양(내용은 관심 없다)을 찾아다니는 문자 덕후 마쓰 구쓰타로는 책 <궁극의 문자를 찾아서>에 여전히 포기 못한 중2 때 꿈을 적는다. “제 경우는 ‘내가 만든 오리지널 문자를 사용해 나만의 궁극의 문자 체계를 만들자’라고 결심하고 오로지 그 작업에만 몰두한 겁니다.” 궁극의 문자. 사람마다 정의하는 바는 다르다. 당장 미술관에 걸어도 흠잡을 데 없는 화려한 글자일 수도, 이전의 그 무엇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글자일 수도 있겠다. 다만 ‘나만의’가 아닌 ‘모든 시민의’ 궁극의 문자라면 어떨까? 교과서에 기사에 소설에 공문서에 적힐, (제목도 아닌) 본문용 글꼴이라면?

눈이 시리지 않도록
밋밋한 본문용 글꼴은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투성이로 보이는 디지털 화면에서도 물론 중요하다. 웹디자이너 김다솜은 글꼴 사용자로서 이런 고민을 한다. “내용을 전해야 할 때 글자가 너무 튀면 내용이 안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화려한 글꼴만 쓸 순 없어요. 좀더 감성적이거나 예스러운 글은 책처럼 명조체로 적고 싶지만 막상 쓸 수 있는 화면용 명조체가 다양하지 않고, 모든 기기에서 잘 적용되지 않을 수 있어 위험하기도 하고요.”

본문용 글꼴 개발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본문용 폰트는 제목용 폰트에 비해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제목용 폰트 제작 기간이 1년이라면, 본문용 폰트는 최소 3~4년 걸리기 때문에 오랜 인내가 필요한 분야다.”(편석훈, <한글 디자인 품과 격>) 제목 글꼴 같은 한순간 충격만으로는 안 된다. ‘공기 같은 글꼴’이어야 한다. 마루부리도 그런 글꼴이고자 했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너한테나 나한테나, 또한 언제나, 숨 쉬기 적당해야 한다. 즉, 몸에 맞아야 한다.

이를테면 그림1은 지면용 부리 글꼴 최정호체와 화면용 부리 글꼴 마루부리를 비교했다. 가로 줄기와 세로 줄기의 두께가 최정호체는 0.5~0.6 대 1인 데 비해 마루부리는 0.9 대 1이다.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를 거의 비슷하게 지었다. 이유는? “눈이 시리기 때문”이다. 화면에는 아직 한계가 존재한다. 픽셀(작은 점)로 전환해 글자를 표현하는 디지털 글씨는 쭉 내리긋는 세로획에서는 별문제가 없다. 다만 사선이나 미세한 끝처리가 특징인 가로획이 너무 얇으면 모양이 우둘투둘해지거나 희미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반사체인 종이와 달리 발광체인 화면에서는 부리 글꼴의 부리, 돌기, 삐침 등이 더 날카롭게 보인다. 이런 모양은 사람의 몸에 맞지 않는다. 불편을 느낀다. 고칠 수밖에 없다. 마루부리는 손글씨의 세세한 흔적을 줄이는 대신 부리와 돌기 등의 구조를 명확히 하고, 획을 직선으로 다듬는 방식을 택했다.

그림2.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네이버문화재단 제공

2. 변화하는 공기
“글자의 모양은 어느 정도 임의적이다. (…) 글자의 모양이 우연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이미 독자들의 눈은 거기에 익어 있고, 바로 그것이 글꼴 디자이너들의 활동 범위를 정해왔다.” -헤라르트 윙어르, <당신이 읽는 동안>

궁극의 문자를 짓고 싶은 이라면 갑갑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왜 완전히, 색다른, 기상천외한 글자는 불가능한가. 역시 지금, 익은, 눈 때문이다. 지금 익은 눈은 자주 변하지 않으나, 멈춰 있지도 않다. “요즘 들어선 좀더 빠르게 변하는 것도 같아요”라고 마루부리 글꼴 설계와 프로젝트 운영을 맡은 구모아는 지금의 속도를 짐작했다. 마루부리 시험판에 대한 예상 못한 반응들 때문이다.

평균값과 최빈값 사이에서
그림2와 그림3은 ‘마’의 곁줄기와 ‘루’의 짧은 기둥에 대한 시험판과 시민의 평가를 비교했다. 중요한 건 세세한 숫자는 아니다. 시민 대중의 의견을 받아보고 처음에는 고민했다. 평균값(보통의 생각)과 최빈값(가장 많은 빈도의 생각) 가운데 어느 쪽을 지금 시민의 몸에 익은 바라고 읽어야 할까? 조사의 한계가 있었고, 한계 안에서나마 대중의 목소리는 들어야 했다. 글꼴 전문가들은 경향성과 그 경향성의 이유를 파악하는 데 좀더 집중했다.

경향성은 명확했다. 사용자들은 마의 곁줄기를 좀더 높여주기를 원했다. ‘루’의 짧은 기둥을 오른쪽으로 옮겨주길 바랐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리 글꼴은 민부리 글꼴(고딕체)보다 글줄(글자를 늘어뜨려 놓았을 때 시각적으로 형성되는 가상의 선)이 낮게 형성돼 있다. ‘민부리꼴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환경에서 글을 보아온 사람들은 민부리꼴이 형성한 좀더 높은 글줄에 익숙해졌을 수 있다, 곁줄기는 글줄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다, 그러므로 곁줄기가 높아야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겠다, 루도 가로쓰기와 화면이라는 환경에서는 좀더 오른쪽이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마루부리 글꼴 팀은 분석했다. 대중이 익숙하게 느끼는 한글 구조의 모습이 종이 글꼴 제작에 익숙한 디자이너들과 벌어져 있었다. 마루부리의 본뜻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지금 대중의 생각을 반영했다.

그림3.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네이버문화재단 제공

3. 궁극을 향한 변화
“허튼 수다와 혼란 가운데서도 계몽은 이어진다. 구호는 같다. 의심, 비판, 이성, 희망.” -로빈 킨로스, <현대 타이포그래피>

마루부리는 9월 말에 이르러서야 모두 지었고 10월6일 공개했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에 전시 공간도 마련했다. 1년 전 날개와 최정호 이야기를 담은 <한겨레21> 기사를 태블릿에 마루부리 글꼴로 얹어 전시했다. 관람객은 한 번씩 화면을 쓸어넘기고 지나간다. 웹디자이너 김다솜은 “글을 썼을 때 ‘이건 너를 위해 준비한 거야’ 느낌의, 명조 특유의 울퉁불퉁함이 좀 덜해지고 명료한, 귀여운” 같은 형용사를 써서 새 글꼴을 표현해보았다.

‘완성’이 아니라 ‘어느 정도 됐다’
그렇게 궁극의 문자는 탄생했는가? 궁극의 문자를 짓겠다던 마쓰 구쓰타로마저 이런 말을 함으로써 결국 모순을 범한다.(분명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문자는 변화하거나 진화합니다” 또는 “문자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키워지고…”.

궁극은 있을 수 없다. 궁극을 향한 길과 꿈만 있을 뿐이다. 애초에 좀더 많은 시민을 더 널리 읽게 하고자 만든 모더니즘 혹은 계몽의 산물인 타이포그래피라면, 각기 다르며 또한 변화하는 숱한 사람의 상태 모두에 맞는 완벽한 표준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익히 알듯 불가능하다. 완벽한 현대도 계몽도 표준도 없다. 다만 사람을 이루는 공통의 무언가는 분명 있다는 믿음만은 포기할 수 없다.

그러므로 프로젝트 운영을 맡은 구모아는 마루부리 글꼴의 완성이라는 단어 앞에 멈칫한다. “완성… 아니, 완성은 아니고요, 그냥 어느 정도 됐다 했을 때…”라고 운을 떼는 식이다. 어느 정도 됐다 했을 때 “잘 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꼴을 바탕으로 다른 글꼴이 만들어질 수 있고, 다양한 글로 마주칠 수도 있다. 자간과 글줄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서도 글꼴의 느낌은 달라진다. 글꼴 자체도 더 다듬고 싶다. 글자를 인식하는 몸은 아직 훨씬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개발하며 절감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됐다”는 말은 더 많은 합의와 고민의 여지를 만들어냈다는 말과 같다. 자랄 가능성, 진보의 가능성을 다만 좀더 넓혔을 뿐이다. 좋은 것을 빚으려는 거의 모든 소통이 그렇듯, 끝난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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