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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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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안될 거라면하고 싶은 것을 하자

시골 풍경과 어울리는 술, 전통주를 취급하는 가게를 열다
등록 2021-09-04 14:57 수정 2021-09-09 02:31
7평 남짓, 작고 소박한 가게 풍경.

7평 남짓, 작고 소박한 가게 풍경.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 작은 가게가 생겼다. 이 가게는 처음부터 문제가 많아 보였다. 코로나19로 가게들이 줄줄이 문 닫는 시기에 개업한데다, 우리 마을은 ‘상권’이 전혀 아니다. 유동인구라곤 가끔 마을회관을 오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대부분이고, 학생 몇몇이 등하교 시간에 보일 뿐이다. 게다가 이 가게는 생전 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한 특이한 술을 파는데 소주나 맥주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다. 손님이 찾아오기는 할지 걱정이다. 더 큰 문제는 누가 봐도 이해 안 가는 이 가게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시작은 이랬다. 우리 부부가 남해로 이주한 지 1년6개월이 지나 큰맘 먹고 매매하게 된 2층 단독주택의 1층에는 특이하게 작은 가게 자리가 딸려 있었다. 원래 살던 분이 무인 책방을 하던 곳인데, 또 그 전 주인은 음식 장사를 할 생각이었는지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한 흔적이 있다. 식당과 책방의 역사를 지나, 이제 7평 작은 공간은 새로운 주인, 우리 부부를 만나 ‘바틀샵’이라는 낯선 정체성을 얻게 됐다.

‘어차피 안될 거라면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시골 마을 어귀 눈에 띄지 않는 이 작은 공간을 사람들 이목을 끌 세련된 공간으로 바꿀 마음도, 자본도, 요령도 없다. 그렇게 한들, 이 작은 공간에서 기대할 수익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덩그러니 비어 있는 공간을 일단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채워보자는 게 우리가 내린 결정이었다.

도시에서 소비하는 삶보다는 시골에서 생산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은 남해 이주 뒤 ‘술’에도 적용됐다.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고요하고 심심한 시골의 밤, 집에서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유자, 모과, 비파 등 열매를 따서 담금주를 만드는 즐거움에 빠졌다. 다랑논에서 직접 농사지은 쌀로 막걸리를 빚는 것을 한 번 배운 뒤론, 이제 집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일이 낯설지 않다.

술을 직접 빚다보니 자연스레, 각 지역 소규모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전통주에 관심이 생겼다. 전통주가 쌀과 누룩으로 빚는 약주나 탁주, 포도·사과·복숭아 등 지역 농산물을 넣고 오랜 시간 숙성해 만드는 느린 술이라면, 푸른 논밭과 느리게 흘러가는 시골 풍경과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주로 전통주를 취급하는 가게를 열기로 했다.

초기 비용은 100만원. 주류판매면허를 받고 술을 사들였다. 하지만 역시나 손님은 없었다. 금·토·일요일 사흘간 딱 3시간씩만 문을 열기로 했는데, 그 시간마저 길고 무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손님이 오지 않는 이유를 스스로 10개 이상 열거할 수 있었다. 더는 가게의 앞날이 그려지지 않았다.

개업한 지 한 달이 될 무렵, 조용하던 가게에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남해로 여행 온 관광객이, 또 어느 날은 남해에 사는 분이 찾아왔다. 남해에 이런 곳이 생길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말이다. 평소 전통주에 관심이 많다며 인근 도시에서 이곳까지 1시간 차를 운전해서 오는 분도 있었다. 이전엔 뵌 적이 없는 우리 마을, 옆마을 이웃이 찾아오면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앞으로 이 작은 공간에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남해=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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