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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라의 밀라노레미파솔

이탈리아에선 “내 통장에 도둑이야!”

이탈리아 참 좋지, ‘놀러 오기에는’

제1365호
등록 : 2021-05-28 20:24 수정 : 2021-06-0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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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 신고도 하고 체류허가증도 받는 이탈리아 경찰서 정문. 지옥의 문이다.

2020년 봄 <한겨레21>에 첫 글을 실었을 때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이탈리아”(제1315·1316호 ‘우아한 드레스 입고 쓰레기를 버리다’)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이탈리아에서 살다니 너무 좋겠다, 최고의 여행지 아니냐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 등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보내온 부러움에 찬물을 살짝 끼얹어보려 한다. 그렇지, 이탈리아 참 좋지. ‘놀러 오기에는’.

갓 유학을 나올 적에는 열정과 자신감이 대단했기에 한 2년 정도 학교만 마치면 대단한 유명 오페라 가수라도 돼 있으리라 믿었다. 이곳에선 보통 월세 계약을 하면 기본이 4+4년인데 저 미친 자신감에 집주인에게 “2년으로 하죠?”라며 2+2년으로 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어쩐지 집주인 할머니 눈에 빛이 나더라니…. 그때로 돌아가 내 입을 몹시 때려주고 싶다. (참고로 밀라노의 월세는 한국보다 제법 높다.)

월동 준비의 계절, 경찰 집까지 털리다
이탈리아에서의 삶에 ‘지옥 모먼트’를 나열하자면 이번호의 전체 페이지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건너들은 이야기 빼고 처절히 직접 당한 이벤트 가운데 추려서 말하고자 한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 대문이 활짝 열렸고 하우스메이트 동생의 자전거가 현관문을 가로막고 자빠져 있다. “아이참, 또 이렇게 널브러뜨려놨냐…” 하며 자전거를 폴짝 넘어 현관 안으로 들어왔던, 그 순간의 당혹감과 절망감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거인이 집을 들어올려 탈탈 털고 뒤집어놓으면 이럴까? 옷장, 침대, 책상, 온갖 집기가 뒤집혔고 모든 방문(중간에 유리로 된)은 깨졌고 잘 보니 현관문 손잡이는 부서졌다.

도둑이 든 것이다. 이런 평일 대낮에 문을 부수고 이 난리가 났는데 같은 건물 사람들은 아무 소리를 못 들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넋이 나가 현관문 앞에 섰는데, 퇴근하고 돌아오는 앞집 사는 사람이 이 상황을 보고 자기 집 소파에 나를 앉히고 물을 한 잔 주며 경찰에 전화는 했냐고 물었다. “아직이요” 하니 그분이 직접 경찰에 전화해 상황을 말했다. 경찰이 없어진 물건 중 마약이나 무기류가 있냐고 묻는다. “없지요, 당연히…” 했더니 통화 끝. 보러 오지도 않는다. 경찰이 왜 안 오냐 했더니 직접 경찰서에 가서 피해자가 사고 접수를 해야 한단다. 한국 영사관을 통해 연락하니, 두세 시간 뒤 경찰 한 명이 이마에 ‘귀찮아’ 세 글자를 쓴 얼굴로 느릿느릿 와서는 피해 상황을 적는다. 그러고는 내일 경찰서에 와서 접수하란다. “그럼 당신은 왜 오신 거예요?” 했더니 경찰이 “그러니까요, 올 필요 없었는데”라고 말했다.

그때가 11월쯤인데 도둑들이 월동 준비를 든든히 했는지 온 동네에 피해자가 제법 있었다. 도난당한 소중한 물건을 찾는 전단이 거리 곳곳에 붙어 있었다. 신고하지 않겠다, 돈을 더 얹어줄 테니 연락해달라, 부모님 유품이다 등등. 더 황당한 건, 다음날 경찰서에서 내 사고를 접수하던 경찰조차 지난주에 집이 털렸단다. 그래, 경찰 집까지 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내가 이해할게요, 도둑님.

“내 통장에 도둑이 들었어요”
그 사건 이후 강제 무소유의 삶을 살던 중 공연하게 됐다. 연주비가 이제나저제나 들어올까 하며 수시로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들여다봤다. (큰 극장이 아닌 이상 이탈리아에선 연주비 입금이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 매달 다가오는 그놈의 월세를 내야 하고 각종 공과금 낼 것이 들어 있던 나의 작고 귀여운 계좌를 들여다보던 그 순간. 어? 원래 약간 튀어나온 내 눈이 더 튀어나왔다. 두세 차례 재확인해도 돈이 사라졌다!

그때는 아주 고요한 수업 시간이었는데 나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도둑이야! 내 통장에 도둑이 들었어요!”

수업을 멈추고 교수님이 나를 진정시키며 말씀하셨다.

“다른 거 도둑맞는 건 되찾기가 불가능하지만 이런 경우는 백 퍼센트 돌려받을 수 있으니 걱정 마요. 나도 작년에 당했는데 돌려받았다고.”

온라인 도둑은 그 와중에 돈을 다 털어가지 않고 계좌에 7유로를 남겨두었더랬다. 점심은 굶지 말라는 작은 배려였는가. 선생님 말씀이 옳았다. 비록 석 달이 걸렸지만, 은행 쪽에서 내가 쓴 돈이 아님을 밝혀내고는 다시 넣어줬다. 도둑에게 연달아 원투 펀치를 맞고 그해 겨울 참 추웠더랬다.

그 외에 대중교통 안에서 과감히 내 가방에 손 쑥쑥 넣어대는 소매치기는 모두 현장에서 저지했기에 도둑 에피소드는 여기서 마무리하겠다.

유럽인이 아닌 외국인들은 매년 체류허가증을 갱신해야 한다. 페르메소 디 소조르노(Permesso di soggiorno). 이 단어는 이탈리아에 사는 모든 외국인 친구의 식욕을 급격히 떨어뜨릴 만한 힘이 있다. 일단 서류 준비가 어마어마하고 돈도 제법 든다. 이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우편으로 보내면 언제 경찰서로 가라는 쪽지를 주는데, 1년짜리 체류허가증을 받는 데 몇 달이 걸린다는 함정이 있다.

갈 때마다 다시 해오라고 돌려보내는 지옥
약속된 날, 쪽지에 쓰인 대로 시간에 맞춰 가더라도 경찰서 이민국에서 무한 대기가 시작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바짝 긴장됐다. 불법체류자도 아니고 서류도 다 준비한 사람들일 텐데 불안할 이유가 없지 않나 싶을 수 있지만, 문제는 이거다. 직원마다 기준이 다르고 말도 다 다르다. 나 또한 두 직원 사이에 말이 달라서 두어 달 붕 떠 있다가, 결국 한국에 돌아가서 비자를 새로 발급받고 이듬해 체류 허가를 받은 경험이 있다.

한참을 기다려 이제 두어 명이 남아 있다. 금발의 모델 같은 학생이 신경이 바짝 곤두선 얼굴로 순서를 기다린다. 이름이 호명되고 사무실 안에 들어간다. 잠시 뒤 높아진 언성이 문 밖으로 흘러나온다.

“나는 지금 이것 때문에 알바니아에서 왔다고요!”(학생)

“내 알 바 아니고, 이 서류 다시 준비해서 다음주에 다시 와요.”(직원)

“저는 지금 일 때문에 몇 달간 알바니아에 있어야 해요. 지금도 겨우 허락받고 이것 때문에 왔는데 일주일 뒤에 다시 못 온다고요! 그리고 애초에 이 서류가 꼭 필요하다고 안내에 쓰여 있지도 않았잖아요!”(학생)

“어쨌든 그 서류가 필요해요. 지금 당장 준비해서 내 눈앞에 줄 수 있나요? 그게 아니면 돌아가세요.”(직원)

내 이름이 불려 사무실 안에 들어갈 때 스쳐 지나간 그 학생의 그렁그렁한 눈이 참 서러워 보였다.

내가 만약 단테라면 <신곡>의 지옥 편에 이탈리아 행정 지옥을 추가하리라. 악마마다 다른 서류 요구하기, 갈 때마다 다시 해오라고 돌려보내기, 갑자기 복사본도 내놓으라고 하며 복사기는 사용 못하게 해서 더운 여름 바깥 헤매게 하기, 사진 규격이 조금 다르다고 갑자기 다시 찍어오라고 하기, 겨우 받은 증명서는 기한 만료 직전이라 새로 또 준비하기의 무한루프.

이렇게 지독한데 왜 거기 사냐건 웃지요.

밀라노(이탈리아)=글·사진 박사라 스칼라극장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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