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 시골로 내려와 살면서 우리 부부만의 규칙이 하나 생겼다. 간혹 도시에서 외식하면 무조건 남해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고르기다. 그렇지 않으면 흔치 않은 소중한 기회를 놓칠 뿐이다. 남해에는 음식점 수도 적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인구소멸위험지역일 만큼 사람도 적고 다양한 소비자층이 없기 때문일 테다. 도시에서는 흔한 메뉴이더라도 이곳에선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쌀국수, 돈가스, 즉석떡볶이 등등. 그리고 날이 더워지니 가장 그리운 것은 바로 시원한 생맥주 한 잔.
생맥주를 파는 곳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너무 오래되고 허름해 쉬이 발길이 가지 않고, 어느 식당에 가든 웬만하면 차를 끌고 나가야 하는 특성상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도시에 놀러갈 때마다 생맥주 마실 기회를 노렸지만, 대부분 가족을 만나러 집을 방문하는 일정이거나 차를 끌고 이동해야 하는 일이다보니 그 역시 쉽지 않았다.
그리웠던 생맥주를 마실 기회가 찾아왔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친구가 남해에 놀러왔다. 우리가 생맥주를 못 먹은 지 오래됐다고 하니, 오는 길에 같이 먹을 통닭을 사려고 들렀던 식당에서 생맥주도 파는 것 같다며 다음날 다시 함께 가보자고 했다. 이름은 들어본 곳인데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 가봤다.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어 마음 편히 차를 두고 친구와 걸어서 가게로 향했다.
‘읍내에 그런 곳이 있다고?’ 꽤 가게 분위기가 좋았다는 친구 말에 기대가 부풀었다. 오늘만큼은 시골의 조용함이 아닌, 도시에서처럼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까. 하지만 가게는 생각보다 아담했고 손님은 우리 외에 한 팀밖에 없어 썰렁했다. 자리에 앉으니 곧바로 사장님이 우리를 알은체하셨다. 남해에 내려온 이후 ‘젊은 귀촌 부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기저기 지역신문이나 다른 매체에 인터뷰가 실렸는데 그중 하나를 보신 듯했다.
꽁꽁 얼려둔 잔에 살얼음과 함께 나온 생맥주는 무척이나 맛있었다. 남해에 내려온 지 약 2년 만에 처음 마셔서 그런지 더 맛이 좋았다. 그런데 사장님이 우리 부부를 알고 있다니 괜히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하게 됐다.
남해가 고향인 친구가 자신은 친구들과 밖에서 술을 못 마신다고 하소연하던 것이 생각났다. 아는 사람을 너무 쉽게 마주치고, 자신이 누구와 어디서 술을 마시는지 가족 귀에도 금방 들어가니 마음 편히 놀지 못한다고 말이다. 남해 생활 3년차인 우리도 되도록 아는 사람이 있는 곳보다는 익명성이 보장된 곳을 더 편하게 찾는데, 남해가 고향인 친구는 오죽할까.
가게를 나와 친구와 집까지 걸어가는 길. 오랜만에 생맥주를 맛있게 먹어서 기분은 좋았지만 한편으론 아쉬움이 느껴졌다. ‘나를 몰랐으면 더 좋았을 텐데….’ 또다시 생맥주가 마시고 싶어져도, 단번에 나를 알아보는 사장님이 계시는 그 가게를 다시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유난히 그날 먹은 생맥주가 더 맛있게 추억된다.
남해=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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