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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모닝’말고 ‘아침이 있는 삶’

[미라클 모닝 실패기] 미션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에 더 눈이 쏠리네
등록 2021-05-15 15:36 수정 2021-05-16 01:38
#미라클모닝 태그로 올라온 인스타그램 사진들.

#미라클모닝 태그로 올라온 인스타그램 사진들.

미라클 모닝이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사이에 유행이라고 한다. 일과 시작 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새벽 시간을 이용해 기도나 명상, 공부, 운동 등을 하는 것이다. 2000년대 유행했던 ‘아침형 인간’과는 선을 긋는다. 스펙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함으로써 자존감을 키우려는 목적이라고 한다.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할 때 스스로 존중받는 감각을 잘 알고 있다. 잠을 푹 자고 깬 이른 아침 정신은 맑고 다른 사람들은 깨어나기 전이어서 연락받거나 약속이 잡히지 않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이런 때 직접 내린 드립 커피 향을 음미하고 일기를 쓰면서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를 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챌린저스’(상금을 걸고 과제 달성을 목표로 하는 앱)에서 미라클 모닝 챌린지를 발견했지만 해보진 않았다. 아침 시간을 확보하려고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공한 적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취업을 준비하며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매장에 도착하기 전 다른 카페에 가서 공부 시간을 확보하려고 했다. 일하는 곳이 서울역 근처 오피스 상권이었기에 커피를 찾는 직장인 손님이 물밀듯 들어왔고, 고층 빌딩을 오르내리며 음료를 배달하느라 일을 마치면 기진맥진해서 정작 내가 하려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질 나쁜 노동에는 질 나쁜 휴식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만을 위한 휴식 시간이란, 에너지를 소진하고 퇴근한 뒤 보상심리로 드러누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유튜브를 하염없이 보는 일이었다. 그렇게 주중에 피로가 쌓여 주말에 기절하듯 자고 나면 일요일이 다 가버린다.

카페 사장은 직원들에게 필요하면 무료로 매장을 이용하라고 했지만 돈 대신 ‘눈치’를 써야 했기에 그러지 않았다. 강연 업무로 출장을 자주 다니는 동료는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방역 지침으로 카페 매장 이용이 제한돼 카페에서 강연을 준비할 수 없던 코로나 시국, 강연장에 곧바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곤란했다고 한다. “그 공간의 질서에 바로 들어가야 하잖아.”

미라클 모닝은 1년 동안은 실천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라클 모닝 챌린지에는 한 달도 안 돼 실패했다는 후기가 많다. 이런 모닝 루틴이 억만장자들의 습관이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습관 때문에 억만장자가 됐다기보다, 억만장자가 되니 이런 습관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미라클 모닝’을 소개한 김유진 변호사는 미국 뉴욕주와 조지아주의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고임금 전문직이다. 미라클 모닝이 아니라, 그것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에 눈이 더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후 내가 출근한 직장에서는 아침에 일찍 눈뜨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미라클 모닝을 지속하려면 통근 노동으로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이 없어야 하고, 퇴근 뒤에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수입이 있고, 육아와 가사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아픈 몸이 아니어야 하는 등 조건이 받쳐줘야 한다.

‘질 좋은 시간’이란 의미의 미라클 모닝은 누구에게나 확보돼야 한다. 매일 1시간만 질 좋은 시간을 확보해도 개인에게 기적이 일어난다면, 모두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저녁이 있는 삶에 더해 아침이 있는 삶을 위해 주4일근무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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