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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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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민박집 사장

비어 있던 2층방을 여행자를 위해 쓰다
등록 2021-05-11 15:47 수정 2021-05-11 23:51
농어촌민박신고를 한 뒤, 신고확인증과 여러 안내책자를 받았다.

농어촌민박신고를 한 뒤, 신고확인증과 여러 안내책자를 받았다.

요즘 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어쩌다 사장>이 인기다. 연예인들이 어쩌다 강원도에서 시골 슈퍼를 운영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최근 우리 부부 역시 ‘어쩌다 사장’이 됐다. 바로 민박집 사장이다.

우리 부부가 사는 단독주택에서 1층은 살림집으로 쓰고 2층은 그저 비어 있다. 남해를 찾는 여행자가 쉬어가는 숙소로 2층을 활용하면 어떨까 해서 최근 농어촌민박신고와 사업자등록까지 마쳤다. 이로써 도시를 떠나 남해에 내려와 해보는 다양한 일거리로 ‘숙박업’이 한 줄 더 추가됐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한적한 시골로 내려오면서 우리 목표는 하나였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쓰자.’ 꼭 필요한 만큼의 임금노동 외에 나머지 시간과 에너지는 우리 일상을 돌보고 하고 싶은 일에 쓰고 싶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우리가 만족할 만한 일거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아르바이트는 우리가 원치 않았음에도 금방 그만둬야 했다. 원고 청탁이나 강의, 인터뷰 등 소소한 일거리가 종종 있었지만 지속가능하진 않았다.

지역 내 회사의 사무직으로 취업해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경제적 안정을 찾았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몸만 남해에 있을 뿐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무실 생활이 이어지자 회의감이 들었다. ‘이렇게 살 거라면 굳이 왜 시골에 왔지?’ 결국 다른 방식을 찾아보기로 하고 얼마 뒤 새로 이사 왔는데, 한때 게스트하우스로 쓰던 집이란다. 언젠가 한번쯤 민박집 사장님을 꿈꿨기에 우리도 어쩌다 사장을 해보기로 했다.

농어촌민박신고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다만 소화기 비치부터 시작해 일산화탄소경보기, 가스누출차단기, 휴대용 조명, 비상구 표지 등 필수로 설치해야 할 것이 많았다. 군청 담당 부서와 소방서에서 차례로 현장점검을 나왔다. 손님에게 조식을 드리니, 보건소에서 필요한 검사를 받고 보건증을 발급받아 제출해야 했다. 보험 가입도 필수다. 농어촌민박신고를 하고 30일 이내에 재난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사업자등록을 하고 모든 영업 준비를 마치고 나니 첫 손님이 왔다. 아무도 안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첫 손님 이후 다행히 줄줄이 예약이 들어왔다. 이제 민박집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청소하고, 빨래하고, 조식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새로운 일이 됐다. 일의 규모, 운영 방식, 금액 등을 우리가 모두 결정하니, 바라는 시골살이 모습과 조화로운 일의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기회가 아닐까.

어쩌다 민박집 사장이 됐지만 다행히 남는 공간을 활용해 영업하는 것이니 꼬박꼬박 내야 하는 임대료 부담이 없고, 숙박업은 처음이지만 도시에서 원래 하던 일이 다양한 문화공간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었으니 내 손으로 직접 공간을 가꾸고 손님을 초대하는 일이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침구부터 비품까지 투입해야 하는 초기 비용이 분명 만만치 않다. 시골에서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방식을 하나 찾았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차근차근 우리답게 공간을 운영해나가며 차곡차곡 쌓이는 민박집 영수증을 하나씩 들여다봐야겠다.


남해=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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