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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거부자에게 에코는 뭐라 했을까

천연덕스럽게 통쾌하게 지혜롭게 화내는 방법, 나는 아직 멀었어
등록 2021-04-03 06:00 수정 2021-04-05 05:10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열린책들 펴냄, 2008년(2021년 개정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열린책들 펴냄, 2008년(2021년 개정판)

2021년 3월도 다 갔다. 2020년 3월은 잃어버린 봄이었다. 신종 감염병의 정체를 파악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선별하느라 고군분투했다.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는 데 적어도 18개월이 걸릴 거라는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앤서니 파우치 소장의 견해를 들으며 백신 개발 기간을 너무 짧게 잡은 게 아닌가 생각도 했다. 그런데 꿈처럼 영국은 2020년 12월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2021년 2월부터는 우리도 긴급사용이 승인된 백신을 갖게 됐고 2월26일 첫 접종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이없게도 백신을 옆에 두고도 맞지 않겠다고 버둥거리는 사람을 설득하느라 힘을 쏟는다.

유증상 코로나19 감염자 감소, 걸리더라도 산소치료가 필요한 입원이나 중증 진행 예방, 조직의 무사, 더 크게는 일상생활 회복, 경제활동 재개 등 갖가지 이유가 동원되지만 그냥 싫어요, 라고 대답하면 백신 접종은 힘들다. 거절은 심장을 찌르고 분노를 저장하고 울화를 심는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유쾌한 칼럼이자 패러디이다. ‘서문 쓰는 법’은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고,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은 이탈리아 공무원을 꼼짝 못하게 하는 통쾌함이 있다. ‘서부 영화의 인디언 역을 연기하는 법’은 우리도 익히 아는 웃음이고,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은 인문학의 지혜로운 변주이다.

이 칼럼들은 쓸모도 많다. 에이즈 공포에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라는 칼럼이 좋겠고, 가난한 사람을 모독하는 자에게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방법’을 읽어주는 게 좋겠다. 나 같은 컴맹에게는 ‘사용서를 따르는 방법’을 읽게 하는 게 유익하다. 이미 돌아가신 이 할아버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학과장으로서 화장실 휴지를 학과 재산 목록으로 등재하는 대목은 기가 막히다. 생물학자들과 법학자들로 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어려움만 빼면 휴지 목록 등재는 해볼 만하다.

이탈리아에서 1992년 나온 이 책이 2021년에 나를 웃게 한다. 모든 약제에는 설명서가 있고 사용상 주의사항에는 ‘다음 환자에게는 투여하지 말 것’ 항목과 ‘신중히 투여할 것’ 항목이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투여하지 말 것’ 항목에 있는 것은 ‘이 약의 주성분 또는 구성 성분에 과민증이 있는 자’ 하나뿐이다. 일견 조롱처럼 보인다. 투여하기 전에 그 성분에 과민증이 있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움베르코 에코의 말대로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방법’을 아는 자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다. 너무나도 적절해서 한 글자도 바꿀 것이 없다. 백신 성분을 공부하고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과민증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오늘의 내 일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살아 있었으면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유행에 대한 애달픔을 글로 썼을 것이다. 백신에 대한 주저와 공포를 확산하는 언론에 웃음 섞인 패러디로 한 방 먹였을 것이다. 코로나19 대신 백신 몸살을 앓기로 작정하고 나선 간호사, 전공의, 보건의료인들이 있으니 한 줌도 안 되는 거부자들로 울화를 쌓지 말자.

최영화 아주대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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