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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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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마당에 내놓고 “앨범 떨이요~ 떨이”

거래처 김 사장님이 트럭으로 싣고 온 사진앨범
등록 2021-02-20 16:34 수정 2021-02-20 23:51
구둘래 제공

구둘래 제공

학생을 상대하는 장사는 방학이란 긴 공백 기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또 단위가 작아서 많이 팔지 않으면 돈이 되지 않아, 이래서 언제 돈을 버나 하는 조급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나마 오일장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거래처가 여러 곳이 있어 물건을 받아 팔고 수금해 갔습니다. 서울에서 오는 이 사장, 김 사장, 고 사장 같은 분들은 직접 물건을 가지고 와서 거래하게 됐습니다. 11월이 되니 주문도 안 했는데 여기저기서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보냈습니다. 팔고 남으면 반품도 받고 수금도 해 가겠답니다. 서울 이 사장님은 너무 깍쟁이 같은데 물건을 받아놓으면 잘 팔렸습니다. 물건이 좋은 대신 가격이 좀 비싸고 사람이 너무 빡빡해서 별로 이익이 나지 않았습니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지방 출장을 다니던 시절

김 사장님은 나이 지긋하고 인정 많은 분이셨습니다. 애들한테도 잘해주니 낯가림이 심한 어린 아들도 김 사장님을 잘 따랐습니다. 우리가 밥 먹을 때 오시면 그냥 수저만 가져오라고 하여 식사도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아기들 데리고 열심히 산다고 이윤도 별로 안 남기고 물건을 싸게 주었습니다. 물건은 좋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잘 팔리지 않고 재고로 쌓였습니다. 늘 수금을 올 때마다 많이 미안했습니다.

1974년, 남편이 갑자기 사고를 당해 입원했고 나 혼자 갓난쟁이 둘째를 업고 장사했습니다. 김 사장님이 물건 여러 상자를 우리 집 앞에 갖다놓았습니다. 그때는 서울에서 영업자들이 기차와 버스를 타고 지방 출장을 다녔습니다. 자가용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김 사장님은 충북 제천에서 첫차로 왔답니다. 제천 도매상에 사진앨범을 납품했는데 그 집이 갑자기 사업을 접게 되었답니다. 양이 좀 많은데 아주 싸게 줄 테니 팔아보라고 했습니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없어, 가게를 김 사장님한테 맡기고 아들도 잠깐 봐달라 하고, 갓난쟁이를 업고 샘플을 들고 병원까지 뛰어갔습니다. 남편에게 물어봤습니다. 남편은 무조건 준다는 대로 다 받아서 졸업식 때 싸게 팔아치우라고 했습니다.

마침 다음날이 중·고등학교 졸업식에다 장날까지 겹쳤습니다. 잘된 일이었습니다. 김 사장님은 내일 아침 일찍 앨범을 더 가져오겠다 하고 갔습니다. 밤에 아기를 업고 앨범을 종류별로 포장했습니다. 처음엔 포장을 하나하나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포장지로 잘 싸고 테이프로 붙여야 하니 일에 진전이 없습니다. 밤새워도 다 못할 것 같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하다보니 번뜩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포장지를 앨범 크기에 맞게 잘랐습니다. 포장지에 앨범을 올리고 포장지 양 끝을 중간에서 모아 한 번 접고 끝을 모아 다시 예쁘게 접어줬습니다. 위아래 끝부분은 앨범 중간 사이로 잘 밀어넣었습니다. 일일이 테이프를 붙이지 않고도 아주 깔끔하고 쉽게 포장했습니다. “나는 역시 탁월한 일솜씨가 있다니까.” 자화자찬하며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나게 물건 파는 것 오랜만”

앨범은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네 종류였습니다. 아침 일찍 가게 밖에 포장한 앨범을 높이 쌓고 가격표도 붙였습니다. 위에다 샘플만 올려놓았습니다. ‘공장을 정리하게 되어 질 좋은 앨범을 싸게 팝니다.’ 이 문구를 창에 다 크게 써서 붙였습니다. 사람들이 뜨락에 물건이 많이 쌓였으니 궁금해서 구경하러 왔다가 물건이 싸고 좋으니 다들 사갔습니다. 밤새워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혼자 애쓰다보니 쌀 팔러 오신 친정어머니가 아기를 업고 가셔서 좀 편해졌습니다.

앨범이 거의 다 팔려갔습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는데 이런 날 물건이 없어서 못 팔면 또 재고로 쌓아뒀다 내년에나 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김 사장님이 작은 용달차에 가득 짐을 싣고 왔습니다. 김 사장님은 가게 앞마당에 짐을 내려놓고 풀어 분류해줬습니다. 포장한 앨범이 다 떨어지자 직접 포장도 해줬습니다. 점원도 이런 일류 점원이 없습니다. 김 사장님은 내가 쉽게 포장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보다 한 수 위라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아예 마당에서 팝니다. 장날 무슨 노점상 같아졌습니다. 김 사장님은 “앨범 떨이요~ 떨이~ 싸다 싸~” 하며 아주 싸게 파는 겁니다. 물건을 인수한 적이 없으니, 김 사장님 물건 김 사장님 마음대로 팔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장꾼들은 이참에 앨범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합니다. 물건을 아는 젊은 사람들은 “물건이 괜찮네~” 하며 자기 것도 사고 친척집 아들 졸업 선물로 준다고 샀습니다. 한 사람이 사갖고 갔다가 친구를 여럿 데리고 와서 또 사갑니다. 시골 할머니들이 이렇게 좋은 것도 있었냐며 구경합니다. “어떻게 써먹는 건지 알려줘봐. 이 작은 놈을 하나 사서 굴러다니는 몇 장 안 되는 사진을 꽂아야지” 하며 사가기도 합니다. 어떤 할머니는 이왕 사려면 큰 놈을 사야 한다며 제일 두꺼운 앨범을 들고 제일 얇은 앨범 값에 달라고 떼쓰기도 합니다. 남들 이목이 있으니 달라는 대로 다 줄 수는 없고 값이 싼데도 깎아달라고 귓속말하는 노인들한테는 눈을 찡긋하며 또 깎아줬습니다.

우리 생에 가장 고맙고 따뜻한 사람

저녁때가 됐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앨범은 남겨두고 팔기로 하고 물건을 정리했습니다. 전날 받은 앨범 외에 몇 권을 더 팔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김 사장님은 이렇게 신나게 물건을 팔아본 것이 오랜만이라며 주머니 여기저기서 구겨진 돈을 꺼내놓았습니다. 같이 돈을 헤아렸습니다. 김 사장님은 자기는 교통비나 가져갈 테니 나보고 다 쓰라고 했습니다. 그럴 수는 없으니 남편과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김 사장님은 병원에 가 남편 곁에서 한밤을 같이 보냈습니다.

자기는 아주 젊은 나이에 장사를 시작해, 안 해본 일도 없고 안 가본 데도 없이 전국을 돌며 장사해 자수성가했다고 합니다. 젊어서 잘되던 장사가 지금은 같은 물건인데도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돈도 꽤 많이 벌었고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합니다. 김 사장님은 그동안 밀린 수금도 오늘 장사한 돈에서 다 받은 거로 치겠다고 했습니다.

떠난 뒤에 보니, 김 사장님이 남편 병원비도 다 계산하고 갔습니다. 그길로 가서 정말 사업을 그만두고 쉬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고맙다고 식사 한 끼라도 잘 대접하고 싶다고 꼭 한번 놀러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 뒤 김 사장님을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 생에 가장 고맙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전순예 45년생 작가·<강원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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