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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우먼의 기쁨과 슬픔

우리 가게만 파는 명물, 못생긴 노트

노트 공장의 창고에서 주워 온 무지 스프링노트,
석유 가격 올라 모든 값이 오르니 인기 폭발

제1349호
등록 : 2021-02-01 22:02 수정 : 2021-02-0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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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둘래 제공

어른들과 살 때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됐습니다. 내가 살림을 하고 보니 첫해에는 김장 파동이 나서 고생했습니다. 이듬해는 또 연탄 파동이 났답니다. 살림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미리 겨울 날 연탄을 준비했습니다. 나는 연탄을 많이 쌓을 장소도 없고 한 달분씩 사서 썼습니다. 연탄을 사야지 하는데 벌써 물량이 없어 공장 앞에 줄을 서서 샀습니다. 한 사람이 열 장뿐이 못 삽니다. 나도 대야를 가지고 가서 사람들 틈에 끼여 열 장을 사왔습니다. 금방 찍은 연탄은 젖어서 불이 잘 붙지 않고 가스 냄새도 많이 났습니다. 큰오빠네가 마른 연탄을 한 리어카 줘서 섞어 땔 수 있었습니다.

말을 못하던 아들이 반가워서 “아빠”
아주 궁색스럽고 힘들 때 평창경찰서에서 노트 1만 권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산속이나 들이나 어디서든지 북한의 불온 삐라(전단)가 많이 날아다녔습니다. 불온 삐라를 주워 오면 상으로 주는 노트였습니다. 남편은 서울 삼원노트 공장으로 노트를 맞추러 갔습니다. 기본 디자인으로 하는 게 아니라 동판을 새로 떠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가 한 번 쓰면 다시 쓸 일이 없어서 동판 가격도 별도로 내야 한답니다. 남편은 서울 간 지 3박4일 만에 연탄장수 같은 몰골로 왔습니다. 그때까지 말을 못하던 아들은 너무 반가워서 “아빠” 하고 입이 떨어졌습니다. 남편 목을 안고 매달려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연탄 파동이 났다고 하니 어디서 연탄 장사를 하다 왔나 웬일이여?” 하니 삼원노트 공장을 구경하는데 지하 창고에 무지 스프링노트가 폐지처럼 쌓여 있더랍니다. 이거 버리냐고 물어봤답니다. 어쩌다 많이 만들었는데 유행이 지나서 팔 수 없다고 하더랍니다. 남편이 자기가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직접 작업해서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그냥 가져올 수 없어서 거의 폐지 값을 주고, 사흘 동안을 먼지를 털고 닦고 하여 집으로 부치고 왔답니다. 상자를 덧대서 동여맨 노트 상자 여러 뭉치가 배달됐습니다.

남편이 다 똑같은 거니까 풀어볼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너무 모양이 없습니다. 그냥 표지가 속지보다 조금 두꺼울 뿐 하얀 종이에 스프링을 감아놓았습니다. 짐을 풀지 않고 상자째 방에 들여놓기는 너무 보기가 흉합니다. 노트 상자를 풀어 먼지를 대강 털면서 방구석에 쌓았습니다. 10권씩 스프링이 반대로 가도록 엇갈리며 방구석에 높이 쌓았습니다. 안 그래도 좁은 방을 못생긴 노트가 차지했습니다. 저것이 팔릴까 싶습니다. 철없는 아들은 노트 더미에 매달려 놀기를 좋아합니다. 위험하다고 절대 매달리면 안 된다고 수백 번 이야기했습니다. 잠깐 방을 비운 사이 방 안에서 아악 아들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어린 아들이 노트에 깔렸습니다. “그놈의 노트가 아 잡겠다.” 크게 다칠 뻔했습니다. 다시는 노트 더미에 올라가지 말라고 나도 혼내고 남편도 혼냈습니다. 남편은 아들을 혼내고 많이 마음 아파했습니다. “아가 무슨 잘못이 있나. 저런 물건을 방구석에 쌓아둔 어른이 잘못이지.”

산골 학생들이 시내 학생보다 더 좋은 노트를
물가가 갑자기 많이 오릅니다. 시장 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계속 오릅니다. 사람들은 물가가 오르니 지난해 뜯어둔 묵나물 값도 올랐다고 투덜거립니다. 석유파동이 났답니다. 석유 가격이 오르자 종이 가격이 제일 많이 오른다고 했습니다.

새 학기가 되자 노트가 얇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무지 스프링노트를 새로 들어온 노트와 같은 값에 팔았습니다. 학생들은 같은 값에 몇 배 두꺼운 노트를 좋다고 사갔습니다. 학생사에는 싸고 두꺼운 노트가 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예쁜 노트만 찾던 학생들 사이에 싸고 질 좋은 스프링노트는 가장 인기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싸게 팔다가 적당히 가격을 올려 받았습니다. 쓸모없고 천덕꾸러기 같던 무지 스프링노트는 전국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만 파는 명물이 되었습니다.

불온 삐라를 주워 오면 상으로 주는 노트는 다행히 종이 가격이 오르기 전에 만들어서 질 좋은 종이로 예쁘게 잘 만들어졌습니다. 불온 삐라를 주워 오면 학교를 통해 학생들에게 노트가 지급됐습니다. 산골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산에 가 불온 삐라를 주워다 주었답니다. 삼촌이나 집안 어른들이 불온 삐라를 줍기만 하면 집안의 학생들에게 주었습니다. 산골 아이들은 두껍고 질 좋은 노트를 상으로 받아 썼습니다. 그해 봄에는 시내 학생들보다 산골 학생들이 더 좋은 노트를 썼습니다.

다들 삐라를 얼마나 열심히 주웠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 동네 할아버지가 멀쩡히 지게를 지고 산에 갔다가 다 저녁이 되어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와 집으로 가더랍니다. 할아버지가 벼랑 끝 나뭇가지에 걸린 삐라를 손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떨어졌답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벼랑이 한 길뿐이 안 되고 밑에는 풀밭이어서 많이 다치지 않고 살아 왔다고 하십니다.

“새로 사 올 때마다 값이 올랐다” 설명하고
무지 스프링노트는 그 봄에 두 번 값을 올려 받았습니다. 값을 올릴 때마다 깐깐한 학생은 늘 있게 마련이었습니다. 지난번에는 싸게 샀는데 며칠 사이에 왜 이리 올랐느냐고 자기만 싸게 달라고 떼씁니다. 우리 맘대로 하는 게 아니고 새로 사 올 때마다 올랐다고 누누이 설명해야 했습니다. 주변에서 자기네도 도매로 달라고 하지만 어떻게 도매를 줄 수가 없어서 우리도 재고가 이것뿐이라고 매번 실랑이해야 했습니다. 종이 가격이 싸고 경기가 좋을 때 만들었기 때문에 값을 올려 받았어도 비싸지 않고 좋은 노트였습니다.

시국이 아무리 어려워도 학생들은 공부해야 하니 학용품은 여전히 잘 팔렸습니다. 노트는 새 학기에 다 팔리고 답답하던 방구석이 훤하니 비었습니다. 삼원노트 덕에 우리 집을 마련할 꿈에 한발 더 가까워졌습니다.

전순예 45년생 작가·<강원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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