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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롤러코스터를 탄 역사

이언 커쇼의 <유럽 1914-1949> <유럽 1950-2017>
등록 2021-01-17 12:37 수정 2021-01-22 01:54

영국 역사학자 이언 커쇼(77)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최근 브렉시트까지 격동의 유럽 100년사를 서술한 역작이 우리말 번역본(이데아 펴냄)으로 나왔다. 20세기 전·후반기를 두 권으로 나눈 <유럽 1914-1949: 죽다 겨우 살아나다>(류한수 옮김)와 <유럽 1950-2017: 롤러코스터를 타다>(김남섭 옮김)가 그것이다. 각각 2015년과 2018년에 나온 원저작이 번역돼 나오기까지 5년이 걸린 대작이다. 커쇼는 유럽 현대사 석학으로, 특히 히틀러와 나치즘 연구의 권위자다.

책의 제1권이 다루는 20세기 전반 유럽은 최신 병기와 무차별 대량살육이 동원된 두 차례의 총력전으로 시작되고 끝났다. 합쳐서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만 1억 명(추산)에 이른 대재앙이었다. 그 사이에 파시즘의 발호,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과 대공황이 있었다. “유럽의 자기파괴 시대”이자 “지옥에서 빠져나온” 시대였다. 지은이는 이 시기 보통 사람들이 국가 간 다툼의 거대한 명분 아래에서 겪은 고통과 야만적 학살, 전투에 이골이 난 병사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면서 “제1권은 내가 손댄 것들 가운데 단연코 가장 힘든 책”이라고 고백했다. 1916년 프랑스의 한 군인은 전사 직전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이 살육의 목적을 알고 싶어서 묻는다. 내가 듣는 답변은 ‘조국을 위해!’다. 하지만 왜 그런지 이유는 알지 못한다.”

제2권은 20세기 후반,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의 낙진이 가라앉은 이후 지금까지 70년 동안 유럽이 겪어온 기복과 급속하고 엄청난 변화의 흐름을 살폈다. “1950년 이래 유럽은 스릴과 공포로 가득 찬 롤러코스터”를 탔다. “위대한 성취, 혹독한 좌절, 심지어 재난이 격렬하게 뒤섞인 역사”였다. 그 시작은 전에 없던 새로운 대결 체제인 냉전과 유럽의 동서 분단으로 열렸다. 1989년 공산주의가 몰락할 때까지 “유럽의 두 절반이 경험한 내적 발전은 너무나 상이해서 양쪽을 응집력 있게 통합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은이는 전후 복구 시기 “경이롭고 오래 지속된 경제적 호황과 그 함의”, 1960년대 후반 청년들의 저항운동(68혁명)이 가져온 문화적·시대적 흐름, 냉전 종식과 잇단 내전을 두루 짚은 뒤, 유럽연합(EU)의 지향과 갈등이 보여주는 새로운 도전과 시작에 주목한다.

커쇼의 저술 구성은 역시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다룬 1994년 저작에 <극단의 시대>란 제목을 붙이고 이를 다시 파국의 시대, 황금시대, 산사태 내지 위기의 시대로 세분한 것과도 맥이 닿는다. 지은이는 “손주 세대의 아이들이 유럽의 지난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분단과 원한, 증오 없이 존재할 수 있는 미래의 유럽을 소망”(제1권)하면서 “전쟁 이래로 점차 구축돼온 통합, 협력, 합의 수준의 강화”(제2권)를 강조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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