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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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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릴레이로 옮겨준 배추

김장 배추 흉년 든 해, 사람들 도움으로 어렵게 제천에서 평창까지 배추를 사왔더니…
등록 2021-01-17 11:21 수정 2021-01-21 01:18
구둘래 제공

구둘래 제공

살림을 시작한 첫해는 김장 배추가 흉년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흉년이라도 설마 우리 먹을 김장이야 친정에서 주겠지 하고 기다렸습니다. 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친정집도 겨우 흉내만 냈다고 합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큰일입니다. 김치 없는 겨울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아들을 업고 충북 제천으로 배추를 사러 갔습니다. 저녁때가 다 돼서야 도착한 제천 김장 시장에는 배추도 있고 무도 있었습니다. 내일이면 배추가 더 많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배춧값이 아주 비쌌습니다. 비싸도 배추가 있으니 다행입니다. 평창 지역만 배추 흉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평창은 교통이 불편해 외지에서도 공급이 잘 안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제천 시내에서 한 십 리 떨어진 곳에 사시는 시어른들 드리려고 홍시를 한 봉지 샀습니다. 홍시가 너무 익어 비료포 봉지가 처져서 홍시가 철썩철썩 떨어졌습니다. 등에 업힌 아들은 감이 털썩털썩 땅에 떨어질 때마다 깔깔 웃었습니다. 감 봉지를 억지로 얼버무려 어른들 드렸습니다.

‘도말이’라고 쓰인 걸 모르고

다음날은 일찍 김장 시장으로 갔습니다. 한 백 포기 사고 싶은데 집이 너무 멀다고 하니, 멀어봐야 얼마나 멀겠느냐고 사라고 했습니다. 평창에서 왔다고 하니 멀기는 정말 멀다라며 배추 장수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옆에 있던 짐 나르는 아저씨가 자기가 버스에 실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사라고 했습니다. 배추를 보니 욕심이 나서 큰 마대로 두 자루를 샀습니다. 한 자루에 서른 포기씩 들어갔습니다. 무도 오십 개들이 한 자루 샀습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습니다.

터미널이 좀 멀었는데도 짐꾼 아저씨는 배추를 버스에 실어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주천터미널까지 왔는데 버스기사가 짐을 다 내려놓습니다. 왜 짐을 내리느냐고 평창까지 가야 한다고 하니 “아줌마, 국민학교도 안 나왔수?” 합니다. ‘도말이’ 차라고 쓰였는데 모르고 탔습니다. 도말이는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차를 말합니다. 짐꾼 아저씨가 짐을 실어주니 급한 맘에 타고 왔던 겁니다. 얼른 “국민학교도 못 나왔수” 했습니다. 버스기사는 “무식해가지고!” 씰쭉거리며 나의 금 같은 배추 자루를 팽개치듯 내려놓습니다.

배추 자루가 너무 커서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옆에는 평창 가는 차가 막 떠나려고 시동을 걸어놓고 부릉부릉합니다. 애는 업었지, 둘째를 임신한 배는 불룩하지, 이렇게 난감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고 어떡하지, 버스까지 쫓아가서 기다려달라고 짐을 실어야 한다고 사정했습니다. 버스기사는 빨리 실으라고 못 기다린다고 합니다.

혼자서 쩔쩔매고 있을 때 어떤 아주머니 아저씨가 배추 자루를 들어다 실어주었습니다. “뭐가 이렇게 많나” 하며 세 번씩이나 둘이 맞들어서 버스에 실어주었습니다. 차를 타는 손님인 줄 알았습니다. 아주머니 아저씨의 깨끗한 옷에는 흙먼지가 뿌옇게 묻었습니다. 배추 자루를 실어주고 말없이 돌아서 갔습니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는데 말할 새가 없습니다.

“아줌마, 뭐 해요? 빨리 타지 않고, 시간 없구만.” 버스기사가 독촉합니다. 차를 타고 떠나면서 아주머니 아저씨가 혹시 보이지 않나 살폈지만,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아주머니 아저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짐을 싣지 못하고 다음 차를 기다리느라 지금쯤 썰렁한 터미널에서 난감해했을 겁니다. 혹시 천사가 아니었을까. 아들을 안은 가슴이 아주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떼쓰는 이웃

평창까지 왔습니다. 버스에 짐을 부치러 나온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디 갔다 오냐고 무슨 짐이 이렇게 많냐고 물었습니다. 제천에서 배추를 사갖고 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나 금 같은 배추를 이렇게나 많이 사오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무슨 귀중품을 보는 것처럼 좋아합니다. 새댁은 젊으니 멀리 가서 배추도 사오고 좋겠다고 합니다. 김장 배추가 암만 흉년이라고 해도 올해 같은 해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자기 평생에 김장을 못 해보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부탁도 안 했는데 아주머니는 자기가 갖다주겠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자기 리어카에 배추 자루를 실어다주었습니다.

집에까지 오자, 이 집은 식구도 많지 않은데 배추가 너무 많지 않냐고 합니다. 한 자루 팔고 한 자루만 먹으라고 합니다. 아예 배추 한 자루는 리어카에서 내려놓지도 않고 떼를 씁니다. 자기네 아저씨는 고기도 안 좋아하고 김치만 좋아한다고, 겨울 김장을 못 하면 정말 큰일이라고 합니다. 배추값을 섭섭잖게 쳐주겠다고 합니다. 새댁이 제천까지 가서 사온 수고비도 주겠다고 합니다.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합니다. 이왕이면 무도 몇 개 달라고 합니다.

아주머니가 너무 정신없이 수다를 떠니, 남편이 사온 김에 그냥 한 자루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내 손에 억지로 돈을 쥐여주고 배추가 실린 리어카를 끌고 갔습니다. 기분이 별로입니다. 그냥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도 꼭 필요해서 고생고생하며 사온 겁니다. 완전히 재수 없다고 투덜거렸습니다.

돈을 확인해보니 사온 금액의 두 배입니다. 사람 마음이란 돈 앞에서는 금방 달라졌습니다. 수고한 보람이 있네. 우리 집 김장은 공짜로 하게 되었네 하며 좋아했습니다. 남편은 너무 많이 받은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누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그냥 주고 갔는데, 뭐.”

완전히 재수 없다가 돈을 확인해보니

아주머니는 김장한다고 이웃에 소문을 냈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아주머니들이 찾아왔습니다. 새댁 홑몸도 아닌데 미안하지만 자기네도 배추를 사다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마침 어디 갔다 들어오는 남편을 보자 사장님이 사다주면 되겠네, 합니다. 남편은 못 이기는 척 주문을 받아서 한 차 갖다 잘 팔았습니다. 사람이 돈을 벌려니 별일이 다 있다고 좋아했습니다.

전순예 45년생 작가·<강원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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