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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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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우먼] 빵까지 팔게 된 문구점

남편이 계약하고 온 삼립빵 대리점, 앞으로는 남지만 뒤로는 이익이 안 되었는데…
등록 2021-01-02 11:28 수정 2021-01-08 01:55
구둘래 제공

구둘래 제공

처음 가게를 차리고 난감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이 집은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하나 잘 안 되고 6개월이 환갑이라고 말했습니다. 멀리서 와서 외져서 잘 안 되는 곳을 모르고 가게를 차렸다고 얼마 안 있으면 문 닫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불쑥불쑥 말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이 캄캄했습니다.

6개월이 환갑이라던 가게

그런 날들을 생각하면 무엇이나 팔리기만 하면, 산다는 사람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울면서 용기 내어 용감하게 가을운동회에 장사를 나섰던 것이 많은 행운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가게도 잘되기 시작하더니 가속이 붙었습니다.

문구는 유행을 많이 탔습니다. 서울에서 도매상 직원들이 샘플을 가지고 지방으로 다니면서 주문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영업을 온 사람들은 학생들한테 물어봅니다.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가게가 어디냐고 물으면 ‘학생사’라고 대답한답니다. 학생들 말을 듣고 찾아온 영업하는 사람들 덕분에 새롭게 생산되고 유행하는 물건을 갖추어 팔았습니다.

학생들이 지나다니며 아줌마 빵은 안 팔아요? 빵도 파세요, 합니다. 삼립빵이 맛있는데 평창은 왜 삼립빵을 안 파는지 모르겠답니다. 그때까지 평창엔 삼립빵 대리점이 없었습니다. 이웃에는 무슨 무슨 상회라 이름 붙은 만물상이 여러 집 있었습니다. 식료품부터 철물, 문구까지 모든 것을 취급하는 가게들이었습니다. 남편은 우리가 문구 독점을 하려면 삼립빵 대리점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했습니다. 해보는 소리거니 했습니다. 하루는 어디 좀 갔다 오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배짱 좋게 삼립빵 대리점 계약을 했다고 빵을 잔뜩 가지고 왔습니다.

큰오빠는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빵은 유통기한이 있어 자칫 재고가 생겨 손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돈 많은 가게들이 작은 가게 하나 죽이기는 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손해 보더라도 물건을 싸게 팔면 어떻게 하려느냐고 했습니다. 빵까지 팔기에는 가게가 너무 좁습니다. 학용품을 놓았던 유리 진열장을 비우고 빵을 진열했습니다. 나는 아들을 업고 저녁 늦게 빵을 이고 골목 구멍가게들에 배달하기도 했습니다.

이웃 만물상 중 가장 큰 상점은 평창상회입니다. 우리 집과 대각선으로 마주 보는 가까운 집입니다. 평창상회 회장님은 50대 후반 아저씨였습니다. 아직 젊은데도 아들 다섯 가운데 셋이 우리 큰오빠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짱짱한 아들들과 함께 만물상을 운영합니다. 회장님과 동갑이라는 아주머니는 일을 많이 하시는데도 늘 한복을 입고 살았습니다. 치렁치렁한 한복이 아니라 간편한 한복을 직접 만들어 입으셨습니다. 고운 색으로 누비치마저고리도 만들어 입으셨는데 참으로 단아해 보였습니다. 사람들 이야기로는, 그 집이 아주머니가 복이 있게 생겨서 잘산다고 합니다.

가마니를 지고 와서 밥 달라는 사람

내가 평창상회만큼 잘살려면 평생을 벌어도 안 될 것 같습니다. 평창상회 아주머니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지나가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많이 주었답니다. 하루는 컴컴한 저녁에 어떤 사람이 지게에다 가마니를 지고 와서 밥 좀 달라 했답니다. 그가 밥을 먹은 뒤 잘 먹었다고 수수백번 인사하더랍니다. 식사를 다 하고 짐을 맡기며 사흘 뒤에 찾으러 오겠다고 했답니다. 그는 사흘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짐을 풀어봤더니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그 집 아주머니가 배고픈 사람들을 잘 거두더니 도깨비가 돈을 한 가마니씩이나 져다 준 거라고도 했습니다. 누가 물어봤는데 아주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그런 건 물어보는 게 아니라고 하더랍니다. 나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빵까지 팔자 우리 가게에는 등하교 시간에 학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만물상 사장님들은 자기 가게에 학생들이 뜸해지자 멀리서 우리 집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심기가 아주 불편해 보였습니다. 텃세가 있어서 은근히 압력을 넣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고씨라서 신문만화를 본떠 고바우 영감이라 불리던 분은 노골적으로 찾아와 어디서 물건을 가져오기에 그렇게 싸게 파느냐고 시비를 걸기도 했습니다.

종이류는 구석에서 먼지가 쌓이다가도 임자 만나면 먼지 털어 팔면 되었습니다. 빵은 유통기한이 있어 재고가 쌓일까봐 늘 맘이 조마조마합니다. 아무리 애써도 다 못 팔 때가 있었습니다. 다 못 팔 것 같으면 미리 한 보따리 싸서 누구네에게 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다 팔리겠거니 하다보면 재고가 남았습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남에게 줄 수는 없어, 사흘을 빵만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남는데 뒤로는 이익이 별로 나지 않았습니다. 평창상회 회장님은 삼립빵 대리점을 하려고 했답니다. 우리가 먼저 삼립빵을 한다고 안 좋아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작은 소매점에서 삼립빵을 찾으면 우리 집에서 갖다 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집이 빤히 보이니 자기네 단골이 우리 집으로 옮겨갔다는 둥 불편한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던 어느 날입니다. 평창상회 회장님이 남편을 불렀습니다. 자기네가 문구에서 손을 뗄 테니 삼립빵 대리점과 바꾸자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네가 할 텐데 작은아들보다 어린 사람들이니 자기네가 양보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내 생각이 적중했다”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빵을 팔고 싶었던 것이 아니니 잘된 일이었습니다. 그러잖아도 새학기는 다가오는데 장소는 좁고 복잡해서 어떡하나 근심 중이었습니다. 시간 끌 것도 없이 그날로 당장 자기네 가게에 있는 문구 종류를 탈탈 털어서 우리 집으로 보냈습니다. 아무리 큰 집이라도 전문점이 아니니 물건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누렇게 빛이 바래고 별로 좋은 물건이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어디 창고 구석에서도 물건이 있으면 갖다주었습니다. 남편은 자기 생각이 적중했다고 엄청 좋아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새학기 준비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전순예 45년생 작가·<강원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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