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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일] 입사 동기 BTS, 내 열정 어디 갔니

9월2일 BTS에 반하다
등록 2020-12-22 12:06 수정 2021-01-21 06:22
전세계 사람들이 방탄소년단(BTS) 무대를 보고 반응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들. ‘국뽕’ 유튜브 갈무리

전세계 사람들이 방탄소년단(BTS) 무대를 보고 반응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들. ‘국뽕’ 유튜브 갈무리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쥐고 흔든 2020년이 지나간다. 코로나19로 누구는 생명을 잃고 누구는 직장을 잃었다. ‘비대면’이 시대정신이 돼버린 세상을 거리두기, 모임 금지, 폐쇄와 봉쇄 같은 흉흉한 언어가 지배한다. 끝은커녕 진정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 ‘전 지구적 유행’(팬데믹)이 사그라지더라도 우리는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고개 숙이고 눈물만 흘린 2020년은 아니었다. 우리 삶을 더 높고 밝은 곳으로 밀어올리기 위한 싸움 또한 지속됐다. 장애나 성적 지향, 정치 성향,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어떤 차별도 허용하지 말자며 ‘차별금지법’을,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자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여성을 무자비한 착취 대상으로 삼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범인들을 사법의 심판대에 올렸다.
고난과 희망이 교차한 2020년, <한겨레21> 독자에게 생생한 정보를 전한 취재원과 필자 19명이 ‘올해의 하루’를 일기 형식으로 보내왔다. _편집자주
9월2일 수요일

‘빌보드의 벽 날려버린 초강력 다이너마이트’ 신문 2면에 방탄소년단(BTS)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9월1일 신곡 <다이너마이트>로 한국 가수론 처음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었다. “대단하네. 인기가 정말 많구나” 중얼거리며 넘겼다. ‘학생’이란 꼬리표를 뗀 뒤엔 어떤 아이돌 그룹이 있는지 무관심해진 지 오래였다.

반전은 동료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시작됐다. 한 친구가 “노동요로 추천한다”며 ‘다이너마이트 1시간 연속 듣기’란 영상을 공유했다. 빌보드 1위라는데, 들어나볼까 싶어 클릭! 아니 이 경쾌하고 흥겨운 리듬은 뭐지? 이 무렵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져 있던 내게 디스코풍의 신나는 이 노래는 오랜만에 활력과 에너지를 전해주는 그 ‘무엇’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어떤 그룹인지 묻자 친구들은 멤버별로 유명한 ‘직캠’(팬들이 직접 촬영한 것) 영상을 공유해줬다. “남잔데도 멋있어서 팬이 됐다” “빌보드에 올라도 연습을 그렇게 열심히 한다더라”는 이들의 말에 이끌려 유튜브에서 무대 영상을 하나씩 찾아봤고, 그렇게 헤어나오기 힘든 알고리즘의 늪에 빠졌다.

차고 넘치는 영상을 보던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바로 2019년 멜론뮤직어워드(MMA)의 ‘디오니소스’ 무대다. 화려한 무대장치, ‘최후의 만찬’을 연상하게 하는 퍼포먼스도 매혹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앞서 30여 분간 여러 무대를 하고도 몸이 부서져라 추는 칼군무, 턱끝까지 숨이 찼는데도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는 강렬함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니, 무대를 저렇게까지 한다고?” 놀라웠다. 한편으론, 자신의 무대에 이토록 열정적일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그들이 데뷔한 해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내 열정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를 반추하게도 했다.

흥미를 끈 또 다른 것은 바로 국외 팬들이 무대를 보고 반응하는 모습을 담은 ‘리액션’ 영상이다. 국적, 인종, 젠더를 초월해 BTS 팬임을 자랑스럽게 내비치고 한국어 노래를 따라 하는 모습은 신기했다. 무엇보다 사랑을 가득 담은 얼굴로 누군가를 열렬하게 좋아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의 행복한 에너지가 내게도 전달되는 듯해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곤 했다.

그리고 12월1일, BTS의 신곡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은 한국어 곡으로는 처음 차트 진입과 동시에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했다. 이 곡이 담긴 앨범 《비》(BE)도 앨범차트에서 1위를 기록해, 빌보드 역사상 양대 차트에서 모두 진입과 동시에 1위를 차지한 첫 그룹이 됐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지만 그만큼 보수적이란 평가를 받아온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대중음악 아티스트론 처음 후보에 오르며 BTS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써내려간다. 나는 나대로 이른바 ‘BTS 현상’을 분석한 책을 읽으며 ‘덕질’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음악으로 전해준 힘과 위로가 새해에도 계속되길.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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