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출판] 한국 사회의 불안, 어떻게 해소하나?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이 말하는 한국 사회의 불안 해소법 <풍요중독사회>
등록 2020-11-21 14:46 수정 2020-11-23 01:16

“한국의 부모들은 ‘이런 이유’로 자식들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존중받지 못하는 고통, 무시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를 잘 아는지라, 부모들은 자식들이 힘들어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 돈 못 벌어서 무시당하는 고통에 비하면. 그러니까 참고 공부해’라고 말하면서 강요를 멈추지 못한다.”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이 <풍요중독사회>(한겨레출판 펴냄)에 쓴 한 대목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속마음을 에두르지 않고 들춰낸다. “슬픈 말이지만, 오늘날 한국인의 삶이란 학대를 피해 위계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과정”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위계의 사다리’는 끝이 없어서, 그 몸부림은 끝없는 투쟁이 된다.

2019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0위다. 그러나 지난봄 유엔이 펴낸 <2020 행복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53개국 중 61위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32위, 맨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는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데, 왜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걸까? 지은이는 가장 큰 이유로 ‘불안’을 꼽는다. 한국의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때 ‘불안’은 사회의 위계 구조가 강요하는 총체적 불안이다. 사회적 학대와 추방, 상호 존중 상실, 한 사람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평가 스트레스 등이 대표 원인이다. 불안은 공포와 결이 같은 감정이다. 공포는 사람의 존재 혹은 존엄을 위협하거나 손상을 주는 대상에 대한 몸과 마음의 강렬한 긴장 반응이다. 다만 공포는 지속 시간이 짧고 원인이 사라지면 금세 해소된다. 반면 불안은 오래 지속되고 원인도 복합적이라서 “만성화된 공포” “예기 공포”라 불린다.

지은이는 현대인의 불안을 설명하기 위해 인류 사회를 네 유형으로 분류한다. 가난-불화 사회, 가난-화목 사회, 풍요-불화 사회, 풍요-화목 사회다. 한국을 비롯해 상당수 경제 선진국이 전형적인 ‘풍요-불화’ 사회다. 불화의 최대 원인은 상대적 불평등 심화와 이를 고착화하는 위계 구조다. 특히 한국은 계층 간 위계뿐 아니라 동질 계층 안에서도 차별이 촘촘하게 나뉘는 ‘다층적 위계사회’라는 게 지은이의 진단이다. 거기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 모두를 “학대자인 동시에 피학대자”로 만든다.

지은이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절벽 아래에 구급차를 대기시키거나 절벽 중간에 안전망을 설치하는 데에만 주력해왔다”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절벽으로 몰려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생존을 공동체가 책임지는 ‘불안 해소’, 연대와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둔 ‘기본소득제’, 정치뿐 아니라 일상에서 불공정·불평등을 극복하는 ‘조직 민주주의’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이진우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만8천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쉽게 읽히지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선악·진리·덕성·구원 같은 추상적 주제에 대한 계시와 비유, 잠언으로 가득하다. 니체를 천착해온 철학자 이진우 교수가 ‘문제적 저작’ 읽기의 친절한 길동무가 돼준다. 독일어 원작 번역서도 함께 펴냈다.


사랑은 왜 끝나나

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펴냄, 2만9천원

프랑스 사회학자가 성적 자유는 넘치되 사랑은 없어진 현대사회의 실태와 이유를 분석한다. 1960년대 서구를 시작으로 섹슈얼리티는 속박에서 자유로워졌고, 기존 규범과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역설적으로 그 자유가 남성의 성적 지배를 심화했고 캐주얼 섹스는 소비자본주의에 포섭됐다.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퍼트리샤 포즈너 지음, 김지연 옮김, 북트리거 펴냄, 1만7천원

영국 논픽션 작가가 아우슈비츠에서 실제 있었던 또 하나의 ‘악의 평범성’을 추적했다. 루마니아의 평범한 제약회사 직원 카페시우스가 어느 날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나치 장교(주임 약사)로 변신했다. 그는 어쩌다 친근한 “약사 삼촌”에서 살인가스를 관리하고 생체실험을 서슴지 않는 악마가 됐나.


부동산 대폭로, 누가 집값을 끌어올렸나

김헌동·안진이 지음, 시대의창 펴냄, 1만6천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부동산 문제 전문가와 풀뿌리 시민단체 대표가 한국 사회의 병폐인 아파트값 폭등의 진짜 원인을 폭로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집값 끌어올리기에는 정권, 관료, 재벌이 삼위일체다. 지은이들은 강력한 개혁만 뒷받침되면 서울에서도 30평대 아파트를 2억원에 공급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