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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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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엄마는 임종 사흘 전 “어어어”라고 했다

엄마의 마지막을 돌보며 박희병 교수가 쓴 책 <엄마의 마지막 말들>
등록 2020-11-15 10:52 수정 2020-11-17 23:10
2019년 1월8일 서울 삼각지 집 거실에 함께 있는 박희병 교수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 다른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나지 않아 집으로 잠시 돌아왔던 어머니는 이틀 뒤 국립중앙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 박 교수 아버지가 스케치했다. 창비 제공

2019년 1월8일 서울 삼각지 집 거실에 함께 있는 박희병 교수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 다른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나지 않아 집으로 잠시 돌아왔던 어머니는 이틀 뒤 국립중앙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 박 교수 아버지가 스케치했다. 창비 제공

집에 가자. 버스 타고 집에 가자. 집이 여서 머나? 내 좀 일으키봐라.

2019년 10월 구순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임갑연씨가 생애 마지막 시기 307일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내는 동안 가끔 했던 말이다. 1년간 업을 접고 어머니를 돌본 서울대 국문학과 박희병(64) 교수는 <엄마의 마지막 말들>(창비 펴냄)에서 이 말을 할 때 어머니 모습은 아주 진지하고 심각했으며 너무나 간절했다고 회상한다.

“집에는 익숙한 물건들이 있고, 가족이 있고, 기억들이 있고, 따스함이 있다. 엄마는 이제 그만 그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다.”(35쪽)

하지만 끝내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엄마는 과연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을까?’ 스스로 던진 질문에 아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병실에서 죽지도 못하는 것을 개탄하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길 바란 이는, 그의 어머니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2019년 사망자 77.1%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집에서 임종을 맞이한 경우는 13.8%에 그친다.(통계청 인구동향조사)

어머니를 위한 일, 우리 모두를 위한 기록

2017년 10월 말기암 판정을 받은 박희병 교수의 어머니는 2018년 10월부터 걷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가 동반되면서 인지 기능이 저하됐고 혼돈 상태에 자주 빠졌다. 이러한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향정신성 약물을 강하게 투입할 때면 낮에도 눈에 초점을 잃은 채 누워만 있었다. 이렇게 극한 상황에서 나온 말 한두 마디는 인간의 말과 행동에 관심을 가져온 인문학자 아들에겐 범상치 않은 메시지로 다가왔다. 어머니와 함께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허공에 흩어진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그 뜻을 풀어냈다. 11월10일 박 교수는 <한겨레2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처음엔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고 시작한 기록인데, 하다보니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어머니의 (생애 마지막)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그 속에 내재된 삶과 죽음에 대한 보편적 문제를 읽어봐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던 아들은 예기치 못하게 우리나라 호스피스·완화의료 실상을 마주하게 된다.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하자 의료적 처치 없이 가족과 간병인의 힘만으론 어머니를 돌볼 수 없었다. 그러다 말기암처럼 회복이 불가능한 병을 앓는 환자에게 연명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을 연장하는 것)를 하지 않되 통증을 완화하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접하게 된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에선 암·후천성면역결핍증·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만성간경화 4가지 질환을 앓는 생애 말기 환자만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이 가능하다. 모든 병원이 이런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아니다. 불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건, 병원으로선 돈벌이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0년 6월 기준 전국 87개 의료기관이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으로 지정돼 주로 입원형(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중심으로 가정형(자택 방문), 자문형(일반 병동과 외래 환자 대상)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들은 우선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집에 찾아오는 가정형 서비스를 신청했다. 2018년 당시 시범사업 중이던 가정형 서비스는 2020년 9월 정식 도입됐다. “가정형 서비스를 처음 받게 됐을 땐 너무 기뻤습니다. 집에서 처치를 받다 돌아가시면 한이 없겠다 싶었죠. 그런데 말기암에 인지 저하증이 있는 어머니를 돌보는 건 하루하루 전쟁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간호사 방문, 일주일 혹은 2주마다 의사를 만나는 것만으로는 의료적 처치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11월10일 전화 인터뷰)

길어야 두 달 입원이 가능해서

결국 입원형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2018년 12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 병동을 시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국립중앙의료원→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서울특별시 동부병원→서울특별시 북부병원→여의도성모병원→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여의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차례로 머물렀다. 왜 이렇게 자주 병원을 옮겨야 했을까? 병원마다 짧게는 열흘, 길게는 두 달까지만 입원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었다. 1년가량 삶이 지속되는 말기환자는 집에 머물지 않는 이상 여러 호스피스 병동을 떠돌 수밖에 없다. 퇴원 시기에 맞춰 옮길 병원을 찾는 데도 늘 애를 태웠다.

“병원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대개 한 달쯤 전에 입원 신청을 해 대기해야 한다. 완화의료도우미제도(간병비 건강보험 적용으로 경제적 부담을 덜고 전문성을 높인 간병 서비스)가 시행돼 따로 간병인을 구해야 하는 부담이 없는 병원은 대기시간이 더 길었다.”(104쪽)

특히 이 대목에서 박 교수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쇠약한 어머니가 새로운 병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을 만나면 “왜 병원마다 입원 기한이 다른 건지, 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없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호스피스 병동 입원 기한이 별도로 정해져 있진 않다”며 “지나친 장기 입원이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줄이기 위해 입원 기간이 일정 기준 이상 넘어가면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건강보험 수가(의료서비스에 매겨진 가격)를 깎는 정책이 시행되는데 이러한 제도에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어느 병원에선 의료진한테 ‘스마일 할머니’라고 불리며 사랑받았으나, 어느 병원에선 말기암에 치매까지 겹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환자 상태나 보호자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권위적인 의사가 있는 병원에선 적절한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지는 걸 기대하기 힘들었다. 반대로 호스피스 병동 환자를 ‘나름의 삶을 영위하는 존재’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의료진을 만났을 때 어머니 상태는 상대적으로 좋아졌다.

보호자와 주치의의 협치 필요

“서울시 동부병원 호스피스 병실은 엄마가 계셨던 병실 중 가장 남루했지만 병동 전체에 인간적인 따스함이 감돌았다. 주치의였던 배근주 의사는 여느 의사와 달리 하루에 한 번만 회진을 돌고 마는 것이 아니었다. 늘 친절하고 자상하게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38~39쪽)

이러한 경험을 통해 호스피스·완화의료에선 더더욱 환자 보호자와 주치의 사이에 거버넌스(협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그는 하게 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시간을 통해 아들은 ‘정상’이라는 잣대로 인간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어머니는 죽어가면서도 평생 해왔던 것처럼 세상과 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치매 환자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강조하지 않습니까. 저도 치매인 어머니가 이제 사람이 아니게 됐구나,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꼭 그렇지 않았어요. 인지 저하증 환자는 소통이 어려우니 특수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아요. 어머니의 마지막 말들이 그랬습니다.”(11월10일 전화 인터뷰)

인문학자로서 그는 노인을 비롯해 인지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이 사용하는 특수한 언어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상적인 소통 방식으론 해독되지 않는 이들의 표현을 의미 없는 말과 행동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존중하는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어어.

2019년 10월 임종 사흘 전 “엄마!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요!” 아들의 작별인사에 어머니가 낸 마지막 ‘소리’다. 이 소리를 들은 아들은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엄마 덕분에 이 세상에 태어나 학자가 됐어요. 엄마 감사해요.” 그러자 어머니는 ‘입을 우물우물거리고 눈을 감으신 채 깜짝깜짝’거렸다. 말을 못하시니 신체로 말을 하시는 듯하다고, 아들은 생각했다.

“엄마가 죽음에 임박해 마지막 혼신을 다해 전하고자 한 이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대체로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 희병아, 잘 있거라. 그리고 건강하게 공부 잘해라. 그동안 고맙다. 나도 네 덕에 좋았다.”(395쪽)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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