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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미 대선 누가 되든, 뭐

미국에 대한 냉소적 전망, 사회학자 김광기의 〈아메리칸 엔드 게임〉
등록 2020-11-07 14:43 수정 2020-11-11 05:18

적어도 최근 200년 동안 미국은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었다. 자유와 번영, 기회와 평등, 노력과 성공이 손에 잡히는 ‘약속의 땅’ 같았다. 현재 미국에서 그런 이상향은 빛이 바랬다.

사회학자 김광기는 미국 대선을 눈앞에 두고 낸 <아메리칸 엔드 게임>(현암사 펴냄)에서, 오늘날 미국이 더는 아메리칸드림의 나라가 아니라 파국 직전 ‘아메리칸 나이트메어(악몽)’가 되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특히 2020년 초부터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미국의 감춰졌던 민낯을 드러내고, 비틀거렸던 중산층의 불안정한 삶에 쐐기를 박는 ‘퍼펙트 스톰’(파괴력이 큰 태풍)”이 됐다. 반대로, 극소수 부자에게 코로나19는 “자신들의 무한 탐욕으로 빚어지는 모든 참상을 코로나 탓으로” 돌리고 “코로나로 파괴된 경제의 폐허 속에서 모든 것을 거머쥐는 불사조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가 됐다.

지은이는 대학 입시부터 집값 폭등과 노숙인 대란, 코로나19 대응의 총체적 실패, 자본의 부도덕한 탐욕과 위선, 고질적인 인종차별, 불평등의 종착점인 세습 귀족사회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밀레니얼 세대까지 미국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폭로한다. 다양한 사례와 통계 수치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의 바닥에 깔린 구조적이고 거대한 변화의 본질을 파고든다. 분석은 구체적이고 결론은 서늘하다. 그가 보기에 “미국의 자본주의는 고삐 풀린 망아지”이며 “모두를 이롭게 하는 자본주의는 전혀 동작을 안 하고” 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지은이는 오늘날 자본주의 제국은 “겉으로 보면 흉포한 야만보다는 선량한 모습으로 교묘하게 (…) 빨대를 꽂아” 배를 불린다며, 이런 ‘제국질’로 사익을 극대화하는 극소수 세력을 ‘제국적 엘리트’라고 명명한다. 여기에는 공화-민주당이 따로 없다. ‘제국적 엘리트’의 단적인 예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집안이 만든 자선단체 클린턴재단이다. 2010~2012년 전세계에서 이 재단에 답지한 아이티 원조 기부금 60억4천만달러(약 7조2천억원) 중 아이티 국민을 직접 돕는 데 쓰인 돈은 단 0.6%(약 430억원)였다. 9.6%는 아이티 정부로, 나머지 89.8%(약 6조5천억원)는 클린턴 사단으로 흘러들었다. 월가의 사모펀드는 아무런 규제 없이 정치권의 비호 아래 활개 치며 “미국을 저 모양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진짜 개혁을 주장하는 버니 샌더스는 ‘친정’인 민주당에서조차 외톨이다.

미국은 그렇게 능력주의 신화가 무너지고, 선진국 중 사회이동이 가장 불가능한 나라가 됐다. 지은이는 트럼프(공화)와 바이든(민주)이 맞붙은 이번 미국 대선을 두고 “누가 되든 똑같다, 난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책 제목 ‘아메리칸 엔드 게임’(미국의 최종단계)에 걸맞게 냉소적, 비관적 전망이다. 미래는 알 수 없다. 지은이는 다만 “미국의 이야기로 우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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