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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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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생물학] 왜 임신과 출산은 아파야 할까

급작스럽게 하게 된 자궁내막자극술, 난임치료 아픔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픔보다 더 기억에 남아
등록 2020-10-25 13:22 수정 2020-11-12 06:11
임신부가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태아 초음파 사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병원 제공

임신부가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태아 초음파 사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병원 제공

아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난임 카페를 들어가보면 자주 발견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바로 “수정은 인간의 일이나, 착상은 하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시험관시술로 불리는 보조생식술은 원래 몸속에서 이뤄지는 수정란 형성과 초기 배아 발생 과정을 몸 밖, 즉 실험실 시험관에서 직접 유도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가 필요하지요. 이들의 형성에 별문제가 없다면 채취 과정만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배란유도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난소를 자극해 난자를 배란하거나 부고환에서 직접 정자를 추출하거나 고환 조직을 일부 잘라 정자를 찾아내는 방식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현대의학에서도 착상 뒤 임신 확률 28%

이렇게 채취한 생식세포는 적절한 배양액이 담긴 시험관 내에서 만남을 가집니다. 보통 수정은 난자의 난막을 정자가 뚫고 들어가 두 세포의 핵이 결합하며 이뤄지지만,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으면 난막에 인위적으로 구멍을 내고 정자를 붙잡아 넣어주는 정자직접주입법으로 수정란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정란을 만드는 과정에는 인위적인 개입이나 적극적이고 다양한 의학적 처치를 동원해, 조기 폐경으로 진단받은 여성의 난소를 자극해 난자를 만들어내거나 무정자증으로 진단받은 남성의 고환 조직을 뒤져 미분화된 정자를 찾아내 분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통과해 수정란을 만들었다고 해도 아직 임신은 아닙니다.

의학적으로도 임신은 여성의 자궁내막에 배아가 착상한 순간부터를 의미하기에, 진짜 임신은 이 배아가 자궁내막에 달라붙어야 시작됩니다. 이 과정은 아직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능합니다. 배아 이식은 가는 관으로 여성의 자궁 내부로 배아를 직접 넣어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나머지는 배아 스스로가 가진 힘으로 자궁내막에 달라붙어 어머니의 혈관계에서 자신이 필요한 물질을 추출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궁 내로 주입된 배아가 성공적으로 착상해 임신하는 확률은 고작 28~35%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연구에도 이 확률은 크게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맘 같아서는 절대 떨어지지 않게 배아를 자궁내막에 붙여버리고 싶지만, 세포 덩어리 몇 개에 불과한 배아를 자궁내막에 꿰매거나 붙여놓을 수는 없기에 오늘도 수많은 난임 여성은 이식한 배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무사히 착상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 부작용을 겪으며(난소에 물이 차고 난소과자극증후군으로 복수가 차오르는 등) 그 과정을 모두 거치고 이식을 기다리던 중, 의사가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당시엔 새로운 시술인 자궁내막자극술(Endometrial Scratching)을 해보자고 했죠. 자궁벽 두께는 약 2㎝인데, 가장 바깥쪽 장막 아래 두꺼운 자궁근육층이 있고 가장 안쪽에 부드러운 점막으로 이뤄진 자궁내막이 있습니다. 자궁내막은 수정란이 달라붙어 착상하는 곳으로, 장차 태아가 어느 곳에 달라붙어도 충분히 필요한 물질을 공급할 수 있게, 전체적으로 혈관이 매우 많이 분포한 곳입니다.

가임기 여성은 월경주기에 따라 배란이 되면 호르몬 자극으로 자궁내막이 평소보다 부풀어오릅니다. 월경이란, 임신되지 않은 경우 미리 준비해놓았던 자궁내막 조직을 녹여서 떨어뜨려 몸 밖으로 배출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야 다음 임신을 대비해 새로운 자궁내막을 발달시킬 수 있으니까요. 자궁내막에는 혈관이 아주 많고 혈액 공급량도 많기 때문에 이것이 떨어져 나오는 과정에서 당연히 혈액이 많이 섞입니다. 하지만 월경 분비물에는 혈액이 섞여 나오는 거지 실제 혈액이 전부는 아닙니다. 간혹 자궁내막이 평소보다 더 많이 부풀어오른 경우 조직이 충분히 녹지 못한 채 배출돼 뭉글뭉글한 핏덩어리가 나오기도 하는데, 애초에 월경 분비물 자체가 점막 조직이 녹아서 배출되는 것이라 생각하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다시 자궁내막자극술로 돌아와볼까요. 2000년을 전후로,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던 의사들은 통계 분석을 통해 자궁내막 두께가 임신성공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를 합니다. 자궁내막 두께는 배란 이후 두꺼워져 평균 8~10㎜에 이릅니다. 당시 국내 난임병원의 시술을 분석한 결과, 내막 두께가 6㎜ 이하이면 시험관아기 시술시 임신율은 3%에 불과하지만, 평균치는 24%, 11㎜ 이상으로 두꺼울 때는 40% 정도로, 자궁내막 두께에 따라 임신율이 변화할 수 있음을 보고합니다. 자궁내막이 두꺼울수록 임신율이 높았다는 결과 분석값은 자연스럽게 ‘인위적으로 자궁내막 두께를 늘릴 수 있다면 임신율이 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궁내막자극술입니다.

인위적으로 자궁내막에 상처 내는 시술

자궁내막자극술은 월경이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이전 자궁내막 조직이 모두 탈락하고 새로운 자궁내막이 자라날 시점에 자궁 안에 가느다란 기구를 넣어 자궁내막을 인위적으로 긁어(scratching) 상처를 내는 것입니다. 피부는 자연적으로도 재생과 탈락이 반복되지만, 상처가 나면 이 부위를 메우기 위해 세포 재생이 활발해집니다. 때로 이것이 과다해 상처가 난 곳이 오히려 원래 피부보다 더 불룩하게 부풀기도 하지요. 자궁내막자극술은 이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자궁내막을 긁어 심하지 않은 생채기를 내어 내막이 더 두껍게 자라도록 유도하는 거죠.

급작스러운 제안이라 시술을 망설이던 제게 의사는, 매트리스가 푹신하면 더 쉽게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것처럼 자궁내막이 두꺼우면 임신율이 ‘월등히’ 높아질 수 있다면서 오늘 바로 할 것을 권했습니다. 난임병원에서 시술을 받는 이들에게는 무엇이든 임신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동아줄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아주 쉽고 간단하며 별로 아프지도 않다고 말이죠.

시술에 걸리는 시간은 몇 분 이내로 길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임신 전 자궁은 전체 길이 7㎝, 너비 5㎝ 정도 되는 작은 기관이기에 그 내부를 긁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통증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아팠거든요. 몸 내부에서 순식간에 뭔가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찌나 놀랐는지 그날 밤 몸살을 앓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프다는 사실 고지하지 않은 병원

다음날, 정신을 추스르고 난임 카페에 들어가보니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이가 많았고, 몸 상태에 따라 다르고(제 경우에도 두 번째 시술은 처음만큼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시술하는 의사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론 대개 아프니 시술이 있는 날에는 미리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먹고 가라든가, 미리 진통제를 놔달라고 하든가 하는 조언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에 공감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는 시술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며, 시술하는 이들은 이런 유의 아픔에 대체로 무감했습니다. 다시 말해 시술 전에 충분히 아플 수 있음을 고지하고, 시술이 가져올 부작용(자궁 내 감염 등)을 충분히 알려서 동의를 구하고, 미리 진통제를 처방해주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의료진이 많지 않았다는 거죠. 물론 통증은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누군가는 별로 아프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더 아플 수도 있으며, 부작용이 생길 확률이 낮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술의 기억이 오래 남았던 것은, 아픔 자체보다 아픔을 견뎌야 하는 이들을 무시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난임병원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오래가는 상처는, 실질적인 아픔보다는 아이를 낳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이 정도 고통과 수치심은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도 겪지 않고 어찌 부모가 되길 바라느냐는 주변의 시선과 태도에서 비롯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꼭 아파야 하는 걸까요? 아파야 부모가 된다는 건, 신이 인간의 원죄를 속죄하는 형벌로 출산의 고통을 지우게 되었다는 오랜 체념과 동일선상에 있는 말입니다. 그것도 여성에게만 국한해서요.

현대의학은 질병을 죄의 발현이 아니며 통증을 속죄의 형벌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면서 발전해온 분야가 아니던가요? 그런데 왜 유독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분야에서는 ‘아파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그토록 뿌리 깊게 남아 있을까요.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닐 텐데 말입니다.

저는 자궁내막자극술을 받고 임신하기는 했지만, 애초에 받지 않고 임신을 시도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시술이 제 임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최근 나온 자궁내막자극술과 임신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메타분석 논문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인위적인 내막의 스크래칭이 임신율 상승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다시 말해, 애초에 내막이 얇으면 임신율이 떨어지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내막을 두껍게 했다고 임신율이 높아지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시술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시술받을 때처럼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불확실한 근거에 의지해 시도되고 있습니다.

내 손을 꼭 잡아준 간호사

절박한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대개 현실에서 지푸라기는 그저 손가락 사이로 흩어질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간절한 이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건, 지푸라기를 자꾸 던져주는 게 아니라, 지푸라기를 헤치고 손길을 내밀어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자궁내막자극술이 덜 아팠던 것으로 기억하는 건, 그 시술을 할 때는 곁에서 간호사가 제 눈을 바라보면서 시술이 끝날 때까지 제 손을 지그시 잡아줬던 것이 한몫했습니다. 그 손이 참 따뜻해서, 그 눈이 참 다정해 보여서 위로받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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