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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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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문장] 이이효재 선생님의 사랑 덕분에

96년 인생을 꽉 채우고 떠난 여성운동가 이이효재
등록 2020-10-17 08:40 수정 2020-11-05 04:35

모성뿐만 아니라 부성에도 사랑의 능력은 있어. 이걸 깨치면 전쟁보다는 평화를 부르짖을 수밖에 없지. 생태를 살리자고 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나는 희망이 있다고 봐.박정희 지음, <이이효재>, 다산초당 펴냄, 14쪽, 2019년

이이효재 선생이 돌아가셨다. 1924년 11월 세상에 와서 2020년 10월4일 떠나셨다. 분단사회학의 개척자, 1세대 여성학자, 군사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가, 호주제 폐지와 부모 성 같이 쓰기에 앞장서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내외에 알린 여성운동의 대모…. 짧은 부고 기사가 다 담지 못할 만큼 더없이 꽉 찬 96년의 생애였다. 나는 그를 만난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가시는 길에 인사 한마디 안 하는 건 이 땅에 사는 여성 후배의 도리가 아닌 줄 안다.

부끄럽지만 이이효재란 이름만 알던 내가 그 존재에 눈뜬 건 지난겨울 ‘이이효재를 말하다’라는 토크쇼를 보고서였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원로에게 별 관심이 없다가 최근에야 철이 나서, 부지런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갔더니 지은희, 김금옥, 강인순 등 그에게 배우고 함께 활동한 이들이 자신이 아는 이이효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노동운동의 대모 조화순 목사도 방청객으로 왔다가 두 분의 특별한 기억을 얘기해주셨다. 그 이야기가 어찌나 놀랍고 재미있던지 주인공을 못 만난 아쉬움이 다 잊혔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이효재는 놀라움 자체였다. 사실 행사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놀랐다. 행사장 한쪽에 1960년대부터 그가 쓴 글과 활동을 보도한 신문기사가 전시됐는데, 평화·노동·협동조합·지역 등 주제가 너무도 넓고 다양해서 그를 여성운동가로만 알아온 게 민망했다.(나중엔 그게 바로 페미니즘임을 알고 또 민망했다.) 그가 분노하고 상상하며 제기했던 이슈가 수십 년이 지나 당연한 현실이 되거나, 아직도 오래된 미래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며 놀랍고 감사하고 부끄러웠다.

지인들이 뒷얘기 하듯 들려준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웠다. 아흔다섯 나이에도 매일 대여섯 시간씩 책 읽고 공부하며 제자들에게 왜 공부 안 하느냐 야단친다는 얘기엔 정신이 번쩍 났고, 매일 아침 “남북이 화해하여 평화통일 이루자”라는 기도문을 백 번씩 외라고 제자들을 닦달한다는 말엔 웃음이 나면서도 뭉클했다. 그에게는 삶과 공부, 공부와 실천이 전혀 다르지 않은 하나구나, 실감했다. 분단사회학이라는 학문적 성과, 정대협 같은 사회운동이 모두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의 삶에서 느낀 부채의식에서 비롯했다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삶이 던지는 문제에 답하기 위해 공부하고 실천하는 이가 얼마나 적은지 아는 까닭이다.

돌아오자마자 작가 박정희가 그를 인터뷰하고 쓴 책 <이이효재>를 읽었다. 그의 삶을 더 깊고 자세히 알고 싶은 바람을 다 채울 순 없었지만, 그의 지행합일과 열정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평생 내가 바라고 노력해왔던 모든 것들이 다 사랑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가부장제에 억눌린 여성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여성을 차별하고 폭력을 행했던 역사를 바로잡는 일도, 정치적 독재가 힘없고 가난한 이들, 특히 더 취약한 여성의 희생 위에서 지탱되고 있기에 저항한 것도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296쪽)

그 간절한 사랑 덕분에 배우고 누린 것이 많음을 이제야 깨닫는데 선생이 가셨다. 뒤늦은 감사 인사를 다짐으로 대신한다. 동서남북이 사랑하여 평화통일 이루자!

김이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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